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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안 서는 청와대 … 당에 정책 밀리고 인사 치이고

중앙일보 2011.11.26 02:10 종합 5면 지면보기
백용호(左), 임태희(右)
“수정예산에 버금가게 민생예산을 편성하라.”


국정 현안 주도권 잃고 속수무책

 근래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당 정책위에 지시한 내용이다. 수정예산은 국회에 제출된 정부 예산안을 의결 전 변경시키는 것이다.



 당이 수정예산 얘기를 꺼내는 건 정부가 짜 낸 내년 예산이 불만스럽다는 얘기다. 청와대가 그간 “재정건전성을 염두에 두면서 금년 복지 예산은 전체 예산의 30%(86조원)로 역대 가장 큰 금액을 편성했다”고 설명해 왔는데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홍 대표는 또 ‘부자 증세’에 대해 “정부 일각에서 반대하지만 법은 국회에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소득세 최고구간을 신설, 최고세율(기존 8800만원, 35%)을 매기겠다는 얘기다. “감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청와대의 기조와 정반대다.



 이런 상황인데도 청와대에선 속수무책이다. 부자 증세론은 두 달여 전 당·정·청 회의에서 “추가 감세만 철회키로 한다”는 합의를 넘어선 것이기도 하다. 지난해부터 올 중반까지 감세 논쟁 때마다 백용호 청와대 정책실장은 “세율을 올린다고 세수가 늘지 않는다. 공약대로 감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왔다. 그러나 지금은 묵묵부답이다.



 정책뿐 아니라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인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비서’인 대통령실 인사에서도 한나라당은 공개적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 대통령실장의 경우 하마평이 나오는 단계인데도 한나라당 지도부까지 “누구누구는 안 된다”고 공개적으로 말한다.



 청와대에선 “현재의 상황은 노무현 정부나 김대중 정부 후반기보다도 오히려 심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2007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은 “비서실만큼은 마음에 맞는 사람을 써야 한다”며 ‘왕수석’으로 불렸던 문재인 전 민정수석을 청와대 비서실장(현 대통령실장)으로 불러들였다. 당시 정치권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노 대통령은 최측근을 비서실장으로 쓸 수 있었다. 2002년 4월 김대중 대통령도 ‘소통령’ ‘왕특보’로 불린 박지원 특보를 마지막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기용했다. 당시 민주당 쇄신파는 “박 실장이 ‘DJ의 뜻’을 내세워 전횡할 수 있다”(김성호 당시 의원)고 반발하긴 했으나 지금보다는 정도가 약해 김 대통령이 마음에 둔 사람을 쓰는 데 큰 저항은 없었다.



 정치권에선 최근의 흐름을 두고 “임기 말로 갈수록 여당에 힘이 실리고 반대로 청와대는 힘이 빠지는 현상이 현 정부에서도 재연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청와대에선 “임기가 1년 넘게 남았는데 정책이든 인사든 대통령의 영(令)이 안 선다”고 씁쓸해하는 인사가 늘고 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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