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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의 ‘마음아 아프지마’] 슬픈 드라마 ‘천일의 약속’ … 치매가 걱정 된다면

중앙일보 2011.11.26 01:30 주말섹션 15면 지면보기
의학적으로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최근 TV드라마 ‘천일의 약속’에 등장하는 치매에 걸린 젊은 여성의 이야기는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치매는 정신세계가 신체보다 먼저 소멸된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암보다 더 걸리고 싶지 않은 병이다. 그래서일까. 진료를 하다 보면 실제 치매 환자 못지않게 치매에 대한 불안·공포 때문에 찾아오는 분이 많다.



 건망증이 심해진 70대 환자가 혹시 치매 아니냐며 찾아왔다. 어머니가 치매로 고생하는 것을 지켜봤기에 더 겁에 질린 듯했다. 퇴행성 관절염은 나이가 들면서 뼈가 닳아 없어지는 병이다. 퇴행성 뇌질환인 치매도 비슷하다. 뇌세포 숫자가 줄어드는, 즉 뇌가 닳아버리는 병이다. 그런데 자기공명영상 촬영을 해봤더니 이 어르신의 뇌는 퇴행성 변화가 거의 없는 20대 젊은이의 뇌였다. 알고 보니 30년간 꾸준히 수영을 하셨단다. 뇌 건강에 운동만큼 좋은 것은 없다. 임상 현장에서 보면 중풍·치매 등의 가족력이 있는 ‘유전적 부담’을 규칙적 운동과 같은 좋은 생활습관으로 극복한 분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좋은 생활습관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뇌 보약이란 얘기다.



 물론 운동 안 하고, 평생 술·담배를 달고 산 70대 중에 젊은이처럼 건강한 뇌를 가진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분들의 집안 내력을 물어보면 가족 중에 병에 걸렸던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 많게 잡아도 1%쯤? 유전적 우월성에 의지해 생활습관을 엉망으로 가져가는 것은 권총에 총알 한 발을 넣고 생사를 건 게임을 하는 ‘러시안 룰렛’만큼이나 위험한 도박이다. 반대로 집안이 중풍·치매 환자로 넘쳐나는 사람이라도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좋은 생활습관을 가지면 건강한 뇌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과학적 진실이다.



 ‘라이프스타일 의학’이라는 것이 있다. 약이 아닌 비(非)약물적 요법으로 건강을 지키는 방법을 연구하는 분야다. 약을 쓰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약물 치료를 보완하고, 가능하면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다. 내 전문 분야이기도 하다. 운동과 균형 잡힌 영양, 스트레스 이완 등 비약물적 요법의 임상 효과에 대해선 이미 충분한 연구 증거가 쌓여 있다.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 우울증이 소화기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심한 스트레스가 위산을 분비시켜 위궤양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거꾸로 몸이 건강하면 마음의 아픔도 치유될 수 있다는 게 라이프스타일 의학의 연구 결과다. 실제로 규칙적 운동은 우울 스트레스를 치료·예방한다. 문제는 스트레스가 쌓인 뇌는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운동을 더 멀리하게 되는 이유다. 부익부 빈익빈이 사회·경제적 문제만이 아니라 정신의학적으로도 골칫거리란 뜻이다.



 우리 몸과 마음은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돼 있다. 튼튼한 몸, 건강한 마음, 좋은 생활습관은 서로 유기적으로 이어져 한곳에 문제가 생기면 전체로 전염된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보면 한 가지를 교정하면 전체가 다 좋아질 수 있다는 뜻도 된다. 규칙적 운동 등을 통해 생활습관을 개선하면 우울 스트레스 등 마음의 문제와 고혈압·당뇨 같은 몸의 문제가 함께 좋아진다. 마찬가지로 마음의 아픔을 달래주면 건강을 위한 행동이 늘어나고, 신체 질환도 호전될 수 있다. 요즘 나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스피닝’이라는 실내 자전거 트레이너 역할을 하고 있다. 명상과 유산소 운동을 결합한 프로그램이다. 이런 것이 바로 라이프스타일 의학이다.



 미국의 한 내과학회가 의미심장한 운동 권유 지침서를 낸 적이 있다. 의사가 열심히 떠들어도 환자들이 운동하지 않는 이유는 ‘의사 본인이 운동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자기는 안 하면서 남에게만 권하면 동기부여가 되겠느냐는 것이다. 의사들은 종종 ‘협박 요법’을 사용한다. “당신 폐가 엉망이야. 담배 더 피우면 죽어” 같은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일시적 행동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도 장기적으론 담배를 더 피우게 만든다. 우리에겐 ‘청개구리 저항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환자가 당장 내일부터 매일 운동하겠다고 하면 나는 뜯어말린다. 일단 일주일간 ‘이 정도 운동량은 하늘이 두 쪽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은 양부터 정해보라고 권한다. 동기부여엔 첫 성공의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운동을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사색하며 걷기’를 권하고 싶다. 걷기는 100살 먹어서도 할 수 있는 좋은 운동이다. 그래서 젊었을 때부터 미리 친해져야 한다. ‘오늘 하늘이 참 파랗구나’ 같은 이완적 사고를 하면서 걸으면 금상첨화다. 니체는 말년에 산책로가 있는 산 중턱 옆에 집을 지어 살았다. 산책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완성해갔다. 라이프스타일 의학은 철학과 통하는 면이 있다. 둘 다 어떻게 살 것이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번 주말엔 ‘사색하며 걷기’를 통해 이완의 쾌감을 느껴보면 어떨까.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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