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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김종록 연재소설 - 붓다의 십자가 3.칼을 베어버린 꽃잎 (2)

중앙일보 2011.11.26 01:30 주말섹션 10면 지면보기
일러스트=이용규 buc0244@naver.com



몇 가닥의 선으로 남은 비구니가 거기 있었다
바랑에 담긴 꽃바구니 하나가 공방 문 앞에 놓였다
꽃바구니 속에서 백일쯤 지난 갓난아이가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얼굴선이 목판 속 여인과 빼닮은 아이였다

“밤공기가 찹니다.”



 예인은 자신의 방한모를 비구니의 민머리에 씌워 주었다. 방한모는 비구니의 작은 머리를 폭 감쌌다. 그래서 우아한 옆 얼굴선이 지워졌지만 이미 뇌리에 박혀 있었다.



 “일이 많이 밀렸던데 그만 들어가셔요.”



 비구니의 목소리가 겨울바람 속 마른나무 가지처럼 떨렸다.



 “밤길을 혼자 가시게 할 수는 없지요.”



 예인은 싸리문을 나서서 각사마을 고샅을 빠져나왔다.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뒤에서 울렸다. 그림자 둘이서 달빛이 얼어붙은 밤길을 탔다. 시오 리가 넘는 초저녁 산길은 멀었지만 멀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가풀막에서는 넘어지기도 했다. 들메끈이 닳아 없어져서 미끄러졌던 것이다. 그래도 투덜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예인의 마음은 오직 옆에 서서 걷거나 뒤따라 걷는 비구니에게 가 닿아 있었다. 달빛에 반사된 얼굴선과 손가락선이 점점 더 선명하고 깊게 새겨져 갔고 숨결소리는 따뜻했다.



 “다 왔네요. 돌아가실 일이 걱정이에요.”



 절집에서 새어나오는 하얀 불빛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비구니의 가지런한 치아에 그 불빛과 달빛이 비쳐서 만들어낸 영상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달콤한 치자꽃 향기 같은 게 났다. 아까 내린 늦겨울비가 만다라꽃비이기라도 했다는 것인가. 향기는 사방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예인은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소리 나지 않게 그 향기를 들이마셨다.



 “그 선…, 이 향…. 제겐 모두 축복입니다.”



 예인은 합장해 보인 다음, 저벅저벅 산길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비구니는 예인이 부려놓고 간 뜻 모를 말을 되뇌며 한참 동안 눈으로 길바라기를 했다. 달빛이 휘황해도 저녁 어스름은 이내 예인의 뒤태를 가무렸다. 예인이 산모퉁이를 돌아 망각처럼 지워지고 나서야 비구니는 자신의 머리에 쓰고 있던 예인의 방한모를 생각해 냈다. 방한모를 벗어들었다. 하지만 뒤쫓아 가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비구니는 방한모를 개어 가슴에 품고서 절집 안으로 스며들었다.



 날개도 없는 사람이 새보다 더 빠르다고 예인은 생각했다. 그 먼 길을 다녀왔건만 달빛은 여전히 공방 뜰 앞에서 서성거렸고 비구니의 옆 얼굴선과 손가락선, 만다라꽃비 향은 첫 느낌 그대로였다.



 만다라꽃비 향에 휩싸인 예인은 춥지도 않고 배도 고프지 않았다. 예인은 창고에서 오래전부터 갈무리해 둔 돌배나무 판자들을 꺼냈다. 작업대 앞에 앉은 그는 등잔불 아래서 조각칼을 쥐었다. 천상의 선들이 판자 위에 어렸다. 예인은 조각칼로 그 선들을 날렵하게 파나갔다. 얼굴빛이 드러나고 숨결이 살아났다. 문밖 달빛이 그 선에 다가와 부서졌다. 그 옆에 부르지도 않았는데 손가락이 따라왔다. 그 또한 천상의 선이었다. 단 한 장의 목판에 한 번의 작업으로 완성한 선이었다.



 예인은 그 목판을 작업대 벽에 세로로 세웠다. 몇 개의 선을 새겼건만 고맙게도 비구니가 그 속에 들어와 있었다. 달빛은 볼록한 이마와 오뚝한 코끝에 와 박혔다.



 비밀스럽고도 고혹적인 선이야.



 예인은 눈을 지그리며 감탄한다. 지금껏 수도 없는 글자와 문양, 선들을 새겨왔지만 이렇게 몇 가닥 되지 않는 선으로 온전한 대상을 표현하기는 처음이었다. 더구나 이것은 지상이 아닌 천상의 선이었다. 그의 조각 솜씨가 빼어나서 얻은 작품이 아니었다. 대상이 빼어난 선을 감추고 있다가 때맞춰 드러내 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인은 그 선들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손끝에서 미세한 떨림이 일어난다. 그 떨림은 척추를 타고 온몸으로 퍼진다.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주체할 수 없는 묘한 흥분이다. 예인은 그 흥분을 은근히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조각칼을 잡은 지 십수 년 만에 처음 느껴보는 황홀함이다. 부처나 공자가 설파한 진리의 말씀을 새길 때는 이런 느낌이 없었다. 단 몇 글자로 된 진리의 말씀이 사람의 의식을 지배하기도 하지만 이런 황홀감에는 못 미쳤다. 지금 이 목판에는 진리의 말씀보다 더 본질적인 뭔가가 들어 있었다. 먹지 않아도 배부르게 하고 추워도 춥지 않게 하는 원형질이었다. 그것은 영혼의 양식이자 꺼지지 않는 불씨 같은 것이었다.



 예인은 목판에 먹물을 발랐다. 목판 속에도 까만 밤이 찾아왔다. 밤이 깊은 목판 위로 세필을 날려 백색 달빛을 흘려 넣었다. 달의 정기와도 같은 가녀린 선들이 흰 안료를 받아냈다. 그 목판을 벽에 세워놓고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보았다. 비밀스러운 선과 색이 빚어낸 예술품이었다. 벽에 걸어둔 많은 경판들, 화엄경 변상도, 금강경 변상도와 비교해 보았다. 글씨를 새긴 경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변상도의 빽빽하고 복잡한 선들이 너저분하고 거추장스럽게 여겨졌다. 진리는 단순하다. 그 진리가 드러난 형상을 그림으로 표현하자면 다채로울 수밖에 없을 터이다. 변상도가 복잡한 이유다. 그런데 그 복잡함이 도리어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면 문제가 된다. 그림으로 드러난 건 모두 색(色)일 뿐이며 본질은 공(空)이니까 말이다. 빼곡한 글씨로 채워진 경판들도 마찬가지다.



 그에 비해 방금 새긴 목판은 절제미와 응축미가 단연코 돋보였다. 단 몇 가닥의 선이 그리운 이를 온전히 대신한다. 맨가슴끼리 맞대고 있는 것처럼 따사로운 숨결을 느끼게 한다. 목판을 바라보고 누워 있으면 꿈을 꾸는 것만 같다.



 이 공방에 불이 났다고 치자. 시간이 없어서 저 많은 경판들과 목판 가운데 단 한 장만을 구해서 뛰쳐나갈 수 있다. 어떤 것을 가지고 나갈까. 나라면 주저 없이 방금 새긴 저 목판을 가지고 나가리라.



 변상도는 한쪽 면을 새기는 데 자그마치 열흘이 걸렸다. 경전을 새긴 경판은 앞뒤로 새기는 데 열흘이 더 걸렸다. 셀 수 없는 조각칼과 망치질을 받아낸 변상도와 경판들이다. 칼질을 많이 받았다는 건 그만큼 많은 정성을 쏟았다는 걸 뜻한다. 그런데 비구니가 지닌 몇 가닥의 선을 옮기는 데는 한 식경도 채 걸리지 않았다. 칼끝이 날렵하게 스쳐 지나간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저 목판을 선택한다면 숱한 시간과 많은 정력을 쏟아낸 공력이란 참으로 허망한 것이 아닌가.



 예술은 기능의 경계를 뛰어넘는다. 신앙의 영역과도 다르다. 예인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세계로 발을 내딛고 있었다. 혼을 불어넣지 않은 조각품은 그것이 불상이건 변상도건 경판이건 껍데기다. 심령이 살지 않는 물상은 죽은 것이다. 천상의 선을 새겨 넣어 비구니와 달빛을 깃들게 한 목판에는 저렇듯 혼이 담겼고 심령이 살아있지 않은가. 살아있는 존재를 담은 선, 생동감 있는 선을 표현하지 않으면 공력은 없다. 아무리 훌륭한 성인의 말씀이 담긴 그림이나 글씨라 하더라도 단순한 기능으로 새긴 경판들은 공허할 뿐이다. 이제 보니 이 세상은 온통 공허함으로 채워져 있구나.



 갑자기 허기가 졌다. 예인은 부엌으로 나와 주섬주섬 상을 차려 늦은 저녁을 먹었다. 작업대를 정리하고 목판을 쓰다듬어본 다음 건넌방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다. 겨울바람에 달빛이 출렁거렸다. 공중에 바람 건너가는 소리가 마음을 흔들었다. 오늘따라 좀처럼 잠이 와줄 것 같지가 않다. 밀린 일을 하느라 지친 몸을 뉘면 곧바로 코를 골며 떨어지곤 했다. 나무토막같이 빠져드는 깊은 잠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싱숭생숭하기만 하다. 잠자리가 허전하고 마음이 떠 있다. 뭔가 아주 절실히 필요한 것이 없다.



 아, 만다라꽃비 향! 그렇다. 그 향이 없다. 그 향이 빠졌다.



 예인은 불을 켰다. 공방으로 건너온 그는 인두로 화로를 뒤적거려 종이에 불을 붙였다. 등잔 심지로 옮겨진 불이 목판을 비췄다. 몇 가닥의 선으로 남은 비구니가 거기 있었다. 달빛에 드러난 가녀린 선들은 여전히 고혹적이었다. 하지만 만다라꽃비 향은 거기에 담겨있지 않았다.



 새 목판 하나를 작업대에 고정시켰다. 혼을 담아서 조각칼을 날렸다. 만다라꽃비 향까지 묻혀 새기려고 심령을 다잡았다. 이마와 콧날이 날렵하게 떨어졌다. 다음에는 손가락을 새길 차례다. 향기를 살포시 잡은 손가락을 표현하면 된다. 엄지와 검지로 연꽃송이를 쥔 손을 새기면 어떨까. 얼굴선 옆에 다섯 개의 손가락 형상이 나타난다. 꽃은 보이지 않지만 향기는 느껴진다. 검지를 엄지에 붙인 것밖에 없는데 전에 없던 향기가 뿜어 나온다. 아까 맡았던 만다라꽃비 향은 아닐지라도 그윽한 연꽃향이 피어나온다. 만족스럽다. 예인은 다시 먹물을 입혀 목판 속으로 밤을 불러들인다. 달빛에 드러난 옆 얼굴선과 손가락 선들을 흰 안료로 살려내니 마음이 흡족해졌다.



 예인은 오랫동안 목판의 여인이 뿜어내는 향기를 쐬고 앉았다가 불을 끄고 잠자리로 돌아왔다. 피로가 몰려오면서 곧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새벽녘에 만다라꽃비 향이 진동했다. 예인은 몽롱한 의식 상태에서 그 향에 빠져들었다. 목판에 새겨넣었던 천상의 선들이 손끝에 만져졌다. 여인의 얼굴선과 꽃을 쥔 손가락선이 생기로 넘쳤다. 급기야 드높은 예술의 경계를 넘어간 거라고 생각했다. 예인은 이제 여인의 숨결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두 호흡이 한 호흡이었고 두 몸짓이 한 몸짓이었다. 그것은 좀처럼 끝날 줄 모르는 말 없는 대화였다. 저녁 내내 문밖에서 서성이던 달빛이 창호 밝아지는 기미가 보이자 서녘으로 줄행랑치듯 물러났다.



 예인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비구니는 떠나고 없었다. 목판 속의 여인이 되어 벽에 기대고 있을 뿐이었다. 깔고 잤던 요에 때 이른 붉은 찔레꽃이 피어났다. 예인은 그 찔레꽃 핀 이불 홑청을 뜯어 갠 다음 반닫이 깊숙이 넣어두었다.



 계절이 바뀌고 봄이 왔다. 비구니는 다시 나타날 줄 몰랐다. 절집에 갈 일이 있어 애닯게 기웃거려봤지만 비구니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공방에 돌아오면 비구니는 목판 속에서 달빛을 받으며 만다라꽃비 향을 뿜어내고 있었다.



 다시 해가 바뀌고 꽃향기 숨막히도록 짙은 봄날 밤, 바랑에 담긴 꽃바구니 하나가 공방 문 앞에 놓였다. 꽃바구니 속에서 백일쯤 지난 갓난아이가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볼록한 이마와 코로 흘러내린 얼굴선이 목판 속 여인과 빼닮은 아이였다.



 예인은 아이를 공방 안으로 들여놓고 마을 고샅을 벗어나 절집 가는 산길로 달렸다. 비구니는 종적이 묘연했다. 공방으로 돌아오니 비구니는 목판 속에도 있었고 꽃바구니 속에도 있었다.



 



 “아버지는 젖동냥을 하며 저를 키워내셨어요. 그러다 제가 다섯 살 나던 해, 부인사 장경각 경판 수리를 위해 떠났지요. 해인사 김승이라는 판각승과 함께요. 저는 비구니 암자에 맡겨졌고요. 아버지는 부인사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했답니다. 몽골군들이 들이닥쳐 부인사 장경각을 불질렀고 그때 경판들과 함께 불에 타 죽은 거랍니다. 치명적인 화상을 입었으나 가까스로 살아난 해인사 판각승이 돌아와 저를 수양딸로 삼고 환속했답니다.”



 지양의 출생담과 아버지를 잃은 사연을 듣고 있던 흑련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나무 관세음보살! 그래서 더 깊은 절간으로 숨어들어간 생모를 찾으려고 너도 머리를 깎은 거여?”



 “어디요. 생모는 찾아서 뭐해요. 전 다만 원수를 갚을 생각이었답니다.”



 “원수라니? 원수를 갚으려는 사람이 머리는 왜 깎아?”



 흑련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시지요? 지금으로부터 열여섯 해 전인 임진년, 부인사 장경각을 불태운 건 몽골군이 아니었다는 거.”



 지양이 입술을 깨물며 흑련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지금 무슨 헛소릴 지껄이누!”



 “최이 집정이 일을 꾸미기 전에 보살님과 깊이 상의한 걸로 아는데요.”



 “니가 뭘 안다고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느냐! 썩 물러가라!”



 무당 흑련이 신기 가득한 눈에 불을 켰다. 흰자위가 붉게 돌변했다.



 “저더러 천상에서 유배온 선녀라면서요. 저를 거둬줄 사람이 지상에 아무도 없다면서요. 제 기구한 팔자를 그리 잘 아시니까 제가 가야 할 길도 알려주셔야 옳지요. 으흐흐흑-.”



 지양이 다시 눈물을 뿌렸다. 소매로 눈물을 훔쳐내면서 부러 큰 동작으로 펄럭거린다. 씁쓰름한 향기가 풍겨 나온다. 사람의 의식을 이완시키고 감상적으로 만드는 대식국 향료였다. 향 다루는 재주를 타고난 지양이었다. 얼마든지 사람을 흥분시키기도 하고 우울하게 만들기도 했다.



 “무섭도다, 부처님법이여. 내 언제고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느니.”



 흑련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더니 지양을 따라 흐느끼는 것이었다. 지양으로서도 예기치 않은 동요였다. 지양이 방바닥에 얼굴을 묻고 대성통곡을 한다.



 “아가, 그만 울거라. 실은 간밤에 내가 꿈을 꾸었느니라. 이 흑련의 품에 뛰어든 백련 한 송이가 있어서 기이하다 했더니 바로 너였던 게로구나.”



 지양은 맺힌 한을 풀듯 흑련에게 안겨서 서럽게 운다.



 “내가 어찌 해주련? 어떻게 해줘야 너의 한이 풀리겠느냐 말이다.”



 흑련이 지양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묻는다.



 “무슨 수를 쓰든 지주사 최항의 첩으로 들어갈 테니 제 뒷배 좀 봐주셔요.”



 “이렇게 고운 니가 너무 아깝고 가엾다.”



 “아까울 것도 가여울 것도 없답니다. 그 집에 들어가서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비뚤어진 세상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만 있다면 그만이에요.”



 “실은 최이 집정의 세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년을 못 넘길 게야. 최항은 제 아비 따라가려면 어림도 없고. 저들 세상이 끝나더라도 여전히 몽골천하이거늘 세상이 바로 서겠느냐? 저절로 곯아빠지도록 내버려 두는 게 옳지.”



 흑련이 그렇게 지양을 말렸지만 그 말을 들을 지양이 아니었다.



글=김종록 소설가

일러스트=이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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