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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태초에 ‘빚’이 있었다 … 화폐가 생기면서 반드시 갚아야 했다

중앙일보 2011.11.26 01:08 종합 20면 지면보기
유럽발 금융위기의 여파가 예사롭지 않다. 그 기저에는 국가부채가 놓여있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에 따르면 근대 이전 부채는 아이러니하게도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이후 화폐경제가 도입되면서 부채는 개인과 사회를 구속하는 ‘채무’로 기능했다고 한다. 사진은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촉발된 ‘점령하라(Occupy)’ 시위 중 한 시민이 1달러 지폐로 입가를 막은 모습. [중앙포토]


부채, 그 첫 5000년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700쪽, 2만5000원




“태초에 빚이 있었다.”



 인도 베다 경전에서 말하듯 생명 자체가 신에 대한 부채로 여겨졌다는 의미에서만이 아니다. 인류가 자급자족에서 물물교환을 거쳐 화폐경제로, 이어 신용카드 등 신용경제 시대로 진행됐다는 주류 경제학의 전제가 잘못된 인식이란 의미도 담겼다.



 미국 예일대에서 인류학 교수를 지낸 지은이의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복잡한 물물교환을 대체하기 위해 돈이 발명됐다는 경제학 교과서의 대전제를 뒷받침할 역사적 증거는 없다.



오히려 브라질의 남비콰라 족 등 인류학적 증거를 보면 물물교환은 이방인, 또는 적대적 부족과 거래에서만 이용됐다. 공동체 내에서는 복잡한 물물교환이 없었다. 필요한 물건을 능력 있는 이에게서 빌리는 데는 호의에 바탕을 둔 ‘신용’으로 족했기 때문이다. 인류 초기부터 채권자와 채무자로 나뉘었기에 경제사는 부채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인류학자인 지은이가 부채의 본질, 부채의 파워를 파고든 이유이다.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하는 힘으로 작용했던 부채는 화폐가 도입되면서 달라졌다. BC 7세기 그리스와 인도, 중국에서 거의 동시에 주화 주조가 이뤄졌다. 이렇게 부채가 계량화되면서 상환에 대한 의무감이 부채로, 부채에 대해서 죄로, 복수에 대해서 부채의 회수로 바뀐 것이다. 물론 민중 반란에서 부채 탕감이 주요 이슈로 등장하고, 근동지역에서는 주기적으로 부채 탕감이 이뤄지기도 했다. 또 고대 그리스의 스콜라 철학자들은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 자체가 도둑이란 이론을 펴기도 했고, 중세 유럽에선 종교 권력이 대출 이자를 금지하는 등 채무자를 보호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그러나 화폐경제 활성화로 인간의 모든 행위가 일대일 교환으로 규정되면서, 또 부채가 마무리되지 않은 교환으로 간주되면서 부채 상환은 도덕적 의무 이상으로 인식됐다. 이와 함께 17세기 스위스 신학자 칼뱅이 고리대금에 대한 전면적 금지를 부정하는 등 사회적 인식도 달라졌다. 프로테스탄트는 1650년경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돈을 빌려주는 일이 전업이 아니고, 가난한 자를 착취만 하지 않는다면 합리적인 이율의 이자를 받는 것은 죄가 아니라”란 해석을 내렸다.



 결국 1540년대 프랑스 법학자 프랑수아 라블레가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에서 “항상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빚지도록 하라. 그러면 그 사람은 당신이 멋지고 축복받는 삶을 길게 누리게 해 달라고 하느님에게 영원히 기도를 올리게 될 거야”라고 부채예찬론을 펴던 시대는 지나간 것이다.



 저자는 화폐 역시 일종의 차용증서임을 지적한다, ‘시장’과 자본주의를 구분하는 그는 신용으로 짜인 세계경제 시스템을 꼬집는다.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현대의 자본주의는 상환할 필요가 전혀 없고, 절대 상환할 수 없는 미국 재무부 채권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 재무부 채권의 낮은 이자율과 달러화 가치하락이 함께 작용한 이득이, 전 세계 국가들의 부채보다 많은 부채를 쌓은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공물’이라 표현한다. 그에 따르면 달러의 글로벌 지위는 1971년 이후 석유 수출입 결제에 쓰이는 유일한 통화라는 사실에 기인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2000년 이를 유로화로 바꾸려 했고, 이란이 여기 동참한 직후 미국의 폭격과 군사적 점령이 있었다며 부채의 국제정치 역학관계를 시사하기도 한다.



 이렇게 부채를 정의의 문제로 접근하면서 지은이는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사회적 전제에까지 의문을 제시한다. 정통 경제학이론을 따른다 해도 이는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며, 대출이 언제나 상환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재앙이 발생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예를 들어 장기나 자식을 팔아서라도 원금과 이자를 합한 대출을 회수할 수 있다면 금융기관은 굳이 건전한 대출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지금 IMF가 긴축재정을 통해서라도 국가부채를 상환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지금의 IMF체제가 그와 유사한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 이후 작금의 그리스 사태까지 세계 자본주의의 뿌리를 뒤흔드는 ‘부채경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인류학자인 지은이는 구체적 제안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대신 구약성경에 나오는 희년(禧年)정신을 이야기한다. 50년마다 땅을 쉬게 하고, 노예를 해방하며 채무를 면제해주던 그 정신으로 세계부채와 소비자 부채에 대처하자는 것이다. 그래야만 돈이란 신성한 것이 아니고, 부채를 상환하는 것이 도덕의 핵심이 아니며, 이 모든 것이 인간들의 협상에 따른 것일 뿐이며, 진정한 민주주의는 이런 사태를 다른 방식으로 풀기로 합의하는 능력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울 것이란 결론이다.



 찾아보기나 저자 소개가 빠진 아쉬움이 있지만, 나라 안팎에서 갈수록 급박해지는 부채 문제를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보도록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유익한 책이다.



김성희(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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