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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생명 있는 건 소멸 … 그에 맞서는 방식은 언어

중앙일보 2011.11.26 01:05 종합 22면 지면보기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을 낸 소설가 한강.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해 내가 내놓고 싶은 가장 밝은 답이 이번 소설에 담겼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희랍어 시간

저자에게 듣는다 - 『희랍어 시간』 펴낸 소설가 한강

한강 지음, 문학동네

193쪽, 1만원




소설가 한강(41)에게 구구절절, 읽는 이의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이야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한씨는 어쩌면 감칠맛 나고 짜릿한 서사(敍事)의 대척점에 서 있다. 모름지기 이야기란 일정한 흐름 속에 기승전결을 갖춘 것. 반면 한씨는 인물이 처한 참혹스러운 고통, 여전히 쓰리고 아픈 과거의 상처를 부각시킨다. 때문에 이야기만 따라가다 보면 그의 소설에 담긴 매력을 상당 부분 놓치게 된다. 당연히 속독은 금물. 소설가보다 시인으로 먼저 데뷔한 이 스타일리스트의 응축된 문장은 시간을 들여 음미해야 한다. 소설 속 인물의 고통과 환멸을 나의 것으로 상상하면서.



 200자 원고지로 600쪽 남짓한, 장편 치고는 짧은 편인 이번 소설도 마찬가지다. 물론 표면적인 이야기는 있다. 서른일곱 동갑내기 남녀가 있다. 둘은 고대 희랍어를 가르치는 학원에서 만난다. 남자는 선생이고 여자는 학생이다. 한데 여자는 심리적인 이유 때문에 말을 못한다. 정신과 치료도 그를 구제하지 못한다. ‘자가 요법’으로 택한 게 희랍어 공부. 외국어 공부가 말하는 법을 되찾아 줄 거라는 기대에서다. 반대로 남자는 시력을 잃게 되는 불치병에 걸려 있다. 그는 첫사랑에 실패했다. 두 남녀는 남자가 학원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우발적’ 사건을 통해 가까워진다. 둘은 입맞춤하고 여자는 말을 한다. 희망적인 결말이다.



 요약해 놓으니 통속 드라마를 닮았다. 하지만 소설의 초점은, 여자는 왜 말하는 법을 잃게 됐는지, 남녀가 각각 겪는 고통의 무게감은 어떤 것에 맞춰진다.



 -여자가 말을 잃은 이유가 단순하지 않다.



 “여자는 반 년 전에 어머니를 잃었고 몇 해 전 이혼했으며 최근 소송에서 져 아홉 살 아들의 양육권을 잃었다. 하지만 이런 자명한 원인으로 말하는 법을 잃은 것은 아니다. 간단히 말하면 세계와의 불화 때문이랄까. 생명 있는 것은 소멸하게 마련이다. 소멸에 맞서는 방식이 언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자는 언어와 현실 사이의 긴장, 불화 등을 견디지 못한다. 언어 자체가 주는 고통으로 괴로워한다. 그래서 말 하는 법을 잃은 거라고 할 수 있다.”



 -남자가 시력을 잃는 설정은 어떤 의도인가.



 “죽음 앞둔 인간의 보편적 정황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이 흘러 죽음을 맞닥뜨리면 아무 것도 볼 수 없게 되지 않나.”



 - 언어에 대한 자의식이 강하다.



 “이 소설을 쓸 때 내 언어가 상투적이라는 느낌이 들어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언어 자체가 진실하지 않다고 느꼈다. 때문에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소설을 쓰고 나니까 좀 괜찮아졌다.”



 -어찌 보면 소설보다 시에 더 가깝다.



 “시는 어떤 문장에서 시작해서 쓰고 소설은 하나의 장면에서 시작한다. 문장이 어떻게 이어지나 생각하면 시가 되고, 소설은 노동, 시간, 감각적인 것, 이미지 등 투자하고 생각해야 할 것이 많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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