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댁의 자녀는 지금 괜찮습니까

중앙일보 2011.11.26 00:02 종합 34면 지면보기
“전국 1등을 해라.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라”는 극단적인 성적 지상주의가 빚은 비극인가. 고3 학생 지모(18)군이 1등을 강요하고 성적이 좋지 않으면 체벌을 가한 친어머니를 살해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한 것은 충격이다. 범행 후 시신을 8개월간 안방에 방치하고, 공업용 본드로 문틈을 밀폐해 냄새가 새어나오지 않게 막은 채 수능시험을 준비하는 등 평소와 다름 없이 행동을 했다고 한다. 어떻게 어린 학생에게 이런 소름끼치는 행동이 가능했을까. 내 아이는 괜찮은 것일까.



 이번 범행이 어머니의 과도한 성적 강요를 못이긴 우발적 행동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가정 불화나 아동 학대 등 다른 요인이 개입돼 있었는지 확실치 않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 좀 더 분명한 동기가 드러날 것이다. 다만 이런 극단적인 패륜의 원인을 핵가족 등 가정 해체 현상이나 입시 위주, 경쟁 위주 교육체제로 돌리는 것은 책임 있는 문제 해결의 자세가 아니다. 갈수록 일반화하고 있는 한 부모 가정에서도 가족 구성원이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이룬다. 입시 위주 학교에서도 자신의 적성과 소질을 활용해 대학에 가는 학생들도 많다. 오히려 이 일을 계기로 우리는 지금 가족 내에서 정상적인 관계 설정을 맺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사실 이번 사건은 2000년 명문대 컴퓨터공학과 재학생인 이은석씨의 존속살인 사건의 범행 동기와 비교할 때 유사한 점이 있다. 이씨 사건을 연구한 이훈구 연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이씨 어머니 역시 지속적으로 공부와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아들에게 가했고, 이런 스트레스가 분노의 형태로 축적돼 있다가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이 폭발했다”고 설명했다. 극단적인 행동의 배후엔 분노감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분노는 누가 쌓았는가. 지군과 이씨의 어머니에게서 부모 자신의 꿈을 자식에게 투사(投射)하고, 여기에 어긋나는 행동엔 가차 없이 보복하는 일그러진 모정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관계를 두고 부모와 자식 간의 정상적인 관계라고는 할 수 없다. 자식은 부모의 전유물이 아닌 독립된 인격체다. 『아이를 망치는 부모』란 책을 쓴 미국 미들베리대 바버라 호퍼 교수는 “부모의 적극적인 간섭이 오히려 아이를 망친다”며 “자녀가 때로는 실수도 하면서 스스로 경험할 수 있도록 부모가 오히려 거리를 둬야 한다”고 권고했다.



 학교가 맡아야 할 역할도 있을 것이다. 영국의 공립학교에서는 분노 관리(anger management)를 전공한 학부모들이 파트타임으로 학생들의 상담을 맡기도 한다. 학생들의 분노를 평소부터 누그러뜨려 극단적인 상황을 피하는 효과를 거둔다고 한다. 분노를 먹고사는 괴물이 주변에서 똬리를 틀지 못하게 하도록 가정과 학교가 손을 잡아야 한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