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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은…] ‘나는 링크한다, 고로 존재한다’

중앙일보 2011.11.26 00:00 종합 33면 지면보기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Social Network Service)라고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정보 생산·가공·유통 서비스가 국경·민족·언어· 문화를 초월해 세상을 압도하고 있다. 지난 10월 26일 무소속 후보의 서울특별시장 당선도 SNS를 따라 변화하는 세상의 체감으로 얘기된다. 분석이 분분하지만 한국사회가 SNS의 태풍권에 진입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양적 실체로서 SNS 제국은 가공할 정도다. 전 세계 페이스북 가입자 수는 2011년 11월 2일 현재 7억7377만 명을 넘었다. 대한민국의 스마트폰 사용자는 단기간에 이미 2000만 명을 돌파했고, 작가 이외수의 트위터 팔로어는 2011년 11월 2일로 99만7343명이다. (페이스북보다 2년 반 늦은) 2006년 10월에 출범한 트위터의 국내 가입자는 11월 2일 현재로 480만 명이다.



 질적 실체 또한 정보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매력에서 월등하다. SNS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과 타인 및 세상과 대화하고 동시 공존감(co-presence)을 느낀다. 자신과의 대화는 자신에 대한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자기표현(self-presentation)을 한다는 의미다. SNS는 적절한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자아(self)에 대한 표현을 특별한 기술이나 훈련 없이 텍스트·사진·그래픽 등을 활용해 알릴 수 있는 도구가 돼 준다. 외부의 메시지를 수용하는 대상으로 머물던 위치에서 벗어나 자신을 표현하는 즐거움을 통해 잃어버렸던 정보주권을 회복하면서 사람들은 ‘나는 링크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충족감을 얻는다.



 SNS는 사적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자기표현 콘텐트를 공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전환한다. 자신의 정보를 타인 및 세상에 공시하고 공유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과 이집트·예멘·리비아·시리아 등으로 확산된 중동 시민혁명은 트위터·페이스북 같은 SNS의 공적 기능으로 가능했다. 개인의 의사표현이 타인과의 공감을 이루고 급기야 한 사회 구성원과 세계의 동참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부정한 독재체제를 붕괴시키는 혁명을 성취한 것이다.



 SNS가 긍정적 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용하고 남용하면 사회적 혼란이 극심할 수 있다. 지난 7월 영국 사회를 폭력·방화·약탈로 몰아간 폭동에서 페이스북을 통해 동참을 부추긴 청년 두 명이 4년형을 선고받았다.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한 왜곡 정보들도 마찬가지다.



 SNS가 전달하는 정보의 사실성을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 주요 논쟁 대상이 될 것이다. 긍정적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자기표현의 속성, 특정 목적을 위한 거짓 왜곡 정보의 유통, 무분별한 추종에 따른 혼란은 인간 커뮤니케이션 행위에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SNS의 개방적인 커뮤니케이션 구조에서 정보는 진위에 관계없이 광범위하게 확산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어떻게 SNS를 합리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활용할 것인가다. 인간이 발명해 온 테크놀로지가 그랬듯 SNS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병존한다.



 SNS가 특정 정파나 선거에 더 유리하거나 더 불리할 것이라는 근시안적 계산으로 접근하는 대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리 삶의 터전이 행복한 민주적 공동체로 발전해 가는 데 도움을 주도록 SNS의 이해와 활용에 전심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연령·학력·지연·혈연·소득·세대·계층·인맥 등 우리 사회를 정체시키고 있는 요인들 간의 상호이해와 공동체감을 높이는 합리적 소통을 위해 SNS의 바람이 세차게 불도록 해야 한다.



 전문직업정신으로 FTA를 협상한 관료를 (찬성이나 반대는 당연히 주장할 수 있지만) 이완용이라고 부르는 후안무치한 선정성이나, SNS를 고작 다음 총선·대선을 위한 정치공학용 작전도구로만 여기는 정치인들의 단견이 발붙일 곳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SNS를 제대로 읽고 쓰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해야 한다. ‘나는 링크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까닭이다.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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