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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외교 초인’ 안 나오나

중앙일보 2011.11.26 00:00 종합 34면 지면보기
박승희
워싱턴 특파원
지난주 한반도 상공으로는 ‘외교 핵폭탄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호주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6일 호주 북부 다윈 해군기지에 미 해병대 2500명을 주둔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베트남전 종전 이후 미국이 해외 주둔 병력을 늘리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같은 날 필리핀을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동맹 60주년을 기념하며 군사협력 강화를 언급했다. 이어 클린턴 장관은 미얀마의 민주화를 지지하는 성명을 냈고, 미 국무장관으론 50년 만에 처음으로 12월 1~2일 미얀마를 방문한다. 리언 패네타 미 국방장관은 10월 말 일본·인도네시아를 방문해 연방 재정적자로 국방비가 쪼그라들어도 아시아의 미군만큼은 감축보다 오히려 강화하겠다고 선포했다. 지난 8월 클린턴 장관은 미국을 찾은 베트남 국방장관을 만나 군사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빅 3’인 대통령·국무장관·국방장관이 역할 분담이나 한 듯 동시다발적으로 아시아를 누빈 셈이다. 미국의 노림수는 분명하다. 호주 다윈기지는 중국의 남중국해에서 2500㎞ 떨어진 곳이다. 필리핀은 중국에 맞서 남태평양 지역에서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다. 베트남은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미얀마는 중국과 가깝지만 클린턴 장관은 지난해부터 지극정성을 들이고 있다. 호주·필리핀·베트남·인도네시아 등으로 이어지는 미국의 ‘신 애치슨 라인’은 중국을 단단히 에워싸고 있다.



 가만히 있기엔 너무 노골적이어서일까. 오바마 대통령이 호주에 2500명의 해병을 주둔시키겠다고 발표한 날 중국 외교부 류웨이민 대변인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긴장을 조성하는 정책이며, 외부 세력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호주를 향해선 “남중국해에서 분쟁이 일어나면 호주가 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도 협박했다.



 호주의 케빈 러드 외교장관이 당차게 맞받았다. “중국 때문에 정책을 변경하지는 않을 것이다. 호주의 국가 안보에 다른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 호주도 중국의 국가 안보 정책에 간섭하지 않는다….”



 허를 찔린 중국이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느낀 듯 한발 물러섰다. “미국은 경제 이익을 원하는 것이지, 중국과 전쟁을 원하는 게 아니다. 평상심으로 미국이 추는 ‘아시아 춤’을 감상하자.”(인민일보)



 거둘 만한 효과를 다 거둔 미국도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생각은 없다. 태평양 국가로서 미국의 관심을 표현할 뿐이다”(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라고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G2 시대는 이제 한반도에 현실로 다가온 기회이자 위기다. 미국과 중국이 이처럼 총성 없는 외교 전쟁을 하는 동안 한국 국회가 한 일이라곤 시곗바늘을 1980년대로 돌려 최루탄을 등장시킨 것뿐이다. 내년 대선에선 제발 여당이든 야당이든 ‘외교 초인(超人)’들이 나타나 형이상학적인 경쟁을 펼쳤으면 싶다.



박승희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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