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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소프트파워] 우리 동네 빵집 이야기

중앙일보 2011.11.26 00:00 종합 34면 지면보기
정진홍
논설위원
# 아침 산보 후 간혹 들르는 우리 동네의 작은 빵집이 있다. 주택가 골목길에 위치한 평범한 일반주택의 반지하층을 개조해 빵집으로 만든 것인데 매장이라고 해봐야 한 평 반 남짓 될까 싶다. 거기 작은 테이블 하나와 의자 셋이 있고 가게 문밖 길가와 접한 곳에 둘이 무릎을 맞대야 간신히 앉을 만큼 작은 공간이 있는 그야말로 초미니 노변(路邊) 빵집이다. 변변한 간판도 보이지 않는 이곳이 빵가게인지를 알려주는 것은 아침에 갓 구운 빵냄새뿐이다.



 # 그런데 그 작디작은 빵집에서 갓 나온 빵에 모닝커피 한 잔을 곁들여 마시며 가만히 살펴보니 겉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빵 만드는 주방만큼은 크고 널찍했다. 주방에 포진한 제빵기계들도 빵집 규모와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육중하고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메이커 제품이었다. 제빵기계들이 워낙 커서 어떻게 이 낮고 작은 출입문을 통과했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아예 먼저 벽을 터서 기계를 들여놓은 후 다시 벽을 세우고 문을 달았다고 한다. 자기 집도 아닌 곳에 그렇게 해놓은 것이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결국 나중에라도 그 제빵기계들을 가지고 다른 곳으로 이사하려면 다시 벽을 헐고 빼내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것은 비록 골목길 모퉁이의 작은 빵집일지라도 “여기서 승부를 내겠다”는 빵집 주인의 단호한 결기가 느껴지는 결정적 대목이기도 했다.



 # 그 빵집 주인은 30대의 젊은 여성이다. 하지만 늘 화장기 없는 얼굴에 잔 체크무늬 머릿수건을 단단히 동여매고 빵을 만든다. 그런 그녀를 보노라면 작지만 단단한 장인의 풍모를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도 빵 사러 온 손님을 잔잔한 웃음으로 맞는 것은 물론 때로 정성 들여 내린 커피 한 잔도 서빙하길 마다하지 않는다. 당당한 자신감이 마음 바탕에 깔려 있어 가능한 일이다. 간혹 손님이 어제 팔다 남은 빵에 손이라도 댈라치면 그녀는 그것을 얼른 뺏어 뒤로 숨기며 “이 빵은 팔지 않는다”고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한다. 빵에 관한 한 자기 고집과 진정성이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하는 장면이다.



 # 그녀는 이미 10년 이상 빵을 만들었고 일본에 유학해 제빵기술을 배워 오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빵이 자기 맘처럼 나온 적이 없다고 고백할 만큼 완벽을 지향하는 자세가 예사롭지 않다. 매일 오전 4시면 일어나 서둘러 가게로 나와 반죽을 빚고 빵을 만들기 시작해야 오전 8시 전후에 갓 구운 빵을 내놓을 수 있다고 한다. 크루아상은 3시간, 식빵은 4시간 남짓 걸린다. 잠깐 게으름 피우는 바람에 아침 일찍 찾아온 손님을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일도 간혹 있다며 수줍게 웃는 그녀는 빵만 파는 것이 아니라 아침의 활력도 팔고 있었다.



 #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3분기의 청년실업률은 7.6%지만 취업 준비생, 구직 포기자 등을 감안하면 실제 청년실업률은 16.7%에 달해 정부 발표 수치의 두 배가 넘는다는 분석이 최근 나왔다. 청년 여섯 명 중 한 명꼴로 놀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다. 또 다른 시각에서는 청년실업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젊은이들이 힘든 일에는 눈도 두지 않고 ‘가늘고 길게’라는 모토 아래 도전이나 모험 없이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어 더 그런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오전 5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하루 14시간 이상을 거의 대부분 서서 움직이며 쉬지 않고 일하면서도 힘들다고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 우리 동네의 작은 빵집 주인을 보면서 그런 통계와 시선마저 몽땅 뛰어넘는 젊은이도 있음을 본다. 그래서 그녀를 볼 때마다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빵을 만드는 사람이 참 단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오늘도 서둘러 빵집 문을 열 것이다. 그리고 골목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빵 굽는 냄새로 아침인사를 건넬 것이다. 그녀가 갓 구워낸 빵엔 왠지 모를 꿈이 담겼다. 오늘도 산보 후에 그 작은 빵집에서 ‘꿈 한 봉지’를 사야겠다.



정진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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