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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매일 부인께 “충성!” 외치는 YS … 중년 이상 남성에겐 역시 ‘그녀가 옳다’가 특효약

중앙일보 2011.11.26 00:00 종합 35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얼마 전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서울 상도동 자택을 인사차 방문했던 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함께 환담을 나누고 나서 YS는 안방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방문객이 현관문을 나서려 할 즈음 갑자기 2층에서 “충~성~!” 하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온 동네가 떠나갈 듯한 커다란 구령 소리였다. 놀란 방문객이 비서관에게 “이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비서관은 자기도 쑥스럽다는 듯 웃음 지으며 “요즘 각하(YS)께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여사님께 경례를 붙이십니다. 즐거우시라고요”라고 말했다. 비서관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2층에서 또다시 “충성!”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인의 아내는 고달프다. 몸 고생,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대통령 비서실장·여당 대표를 지낸 한광옥씨는 재작년 폐암 판정을 받은 부인(정영자씨)의 병구완에 요즘도 지극정성이다. 평생 밖에서 돌던 남편이 곁을 지키며 같이 산책도 해주자 어느 날 부인 정씨가 “암에 걸려 행복하다”고 말해 가슴이 미어지게 미안했다고 한다. 그러니 거목(巨木) 김영삼 전 대통령 아내의 길은 오죽했을까. 때로 생명의 위협까지 느껴야 하는 고난의 세월이었다.



 그렇더라도 “충성!” 하며 경례를 붙이는 동작에서는 왠지 소년 같은 순진함이 느껴진다. YS 냄새가 풀풀 풍긴다. 고도의 정치감각·수완을 발휘하는 와중에 “제주 강간(관광) 특구” “요구르트(리쿠르트 뇌물) 사건”처럼 발음·말 실수도 잦았던 YS 말이다. 그와 부인 손명순 여사는 83세 동갑내기다. 손 여사는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아서 올해 3월 열린 부부 회혼례(回婚禮·혼인 60돌 잔치)에서도 부축을 받으며 거동했다. 그런 부인을 즐겁게 해주려고 “충성!”을 외치는 것이다. 손 여사도 남편의 재롱(?)을 반기는 것 같다. 어제 YS의 차남 김현철(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씨에게 물어보니 “어머니도 웃으며 손으로 경례를 붙여 답하신다”고 했다. 김 부소장에 따르면 그 무뚝뚝하던 YS가 최근엔 하루에도 몇 차례씩 부인을 안아준단다. “두 분 애정 표현이 무척 과감해지셨다”는 것이다.



 어찌 정치인뿐이랴. 중년 이상 이 땅의 남편들은 부인에게 미안한 것 투성이다. 더구나 평균수명이 늘었으니 노(老)부부 간 갈등도 골이 깊어지기 십상이다. 지난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노후 부부 갈등에 대해 여성(71.8%)이 남성(66.4%)보다 더 걱정이 많았다. ‘늙은 남편’이 ‘늙은 부인’보다 더 골칫거리라는 뜻이다. 이럴 때 대책은? 남자 쪽에서 먼저 ‘그녀가 옳다’며 숙이고 들어가는 길뿐이다(로저 로젠블라트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YS도 그걸 잘 알기에 오늘도 동네가 떠나가도록 “충성!”을 외치는 것일 게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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