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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경이이청’과 사슴

중앙일보 2011.11.26 00:00 종합 35면 지면보기
마동훈
고려대 교수·미디어학부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사람은 참 많다. 그런데 남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고 남의 글을 사려 깊게 읽어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흔히 국가와 조직의 리더는 말을 잘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는 충분조건이 아니다. 말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은 소통 조건의 하나에 불과하다. 말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하는 것은 국민과 조직 구성원의 말에 담긴 마음과 정서를 잘 알아듣는 일이다. 말 잘하는 사람은 분명히 많은데 우리 정치의 모양새는 영 말이 아닌 이유가 무엇인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한·미 FTA에 대한 국민의 생각과 정서가 무엇인지 정부와 여당은 좀 더 인내하며 들어야 했다. 한·미 FTA가 이 시기에 필요하다는 점에 필자도 개인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법안의 통과는 개인의 논지를 담은 학술논문의 일방적인 제출과는 다르다. 이는 국가의 중요한 정치 행위다. 국민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합의의 장을 늘려 갔어야 했다. 그것이 정치다. 민주주의의 전당인 국회 본회의장에 최루탄을 들고 온 국회의원도 소통 포기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도 국민의 말을 듣지 않는 정당의 일원이었다. 그래도 할 이야기가 있다고 체감온도 영하 10도의 거리에 나온 국민에게 물대포 세례를 퍼부은 공권력에도 인내가 필요했다. 해방 후 산전수전 다 겪은 이 나라가 추운 겨울날 초저녁에 국민 이야기를 조금 더 듣는 여유를 갖는다고 금방 무너질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국가의 리더십은 국민의 이야기에 몸과 귀를 기울여 신중하게 듣는 ‘경청(傾聽)’의 실천에서 나온다. ‘경청’이란 말의 어원은 유가 오경(五經) 중 하나인 『예기(禮記)』에 등장하는 ‘경이이청(傾耳而聽)’에 있다. 말 그대로 몸을 기울이고 귀를 쫑긋 세우는 정성을 담아 타인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는 태도를 말한다. 영어로는 listening보다 attentiveness라는 단어가 더 가깝다. 즉 이야기하고자 하는 국민에게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경의와 존중의 태도를 적극적으로 보이며, 그 의미를 마음속 깊이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들판의 사슴이 귀를 쫑긋 세워 계속 움직이며 주의 깊게 주위의 소리를 경청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자기방어 행위다. 사슴은 풀을 먹거나 이동을 하거나 심지어는 휴식을 취하는 중에도 계속 귀의 움직임을 쉬지 않는다. 늘 귀를 세워 주위의 위협 요소들의 접근을 파악한다. 그리고 기민하게 반응해 스스로를 보호한다. 사슴이 크게 소리를 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인내심과 경계심으로 조용히 잘 듣고 위기에 반응하며 사는 방식으로 자신과 종족을 보호한다. 경청하지 않는 돌연변이 사슴은 들판에서 오래 버티지 못한다.



 우리 정치인들의 경청지수는 매우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들판의 사슴보다 훨씬 떨어지는 수준이다. 선거가 다가오면 표를 의식해 잠시 듣는 척할 뿐 국민에 대한 경의와 존중의 마음이 없다. 인내심과 경계심의 훈련이 전혀 되지 않았다. 기회만 있으면 변명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궤변만 늘어놓는다. 그래서 국민은 제3의 정치 공간을 찾게 된다. 그래서 더 이상 구태의연한 정당정치가 아닌 시민정치의 대안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미 FTA의 비준 강행은 정말 비극이다. 어차피 치러야 할 통과의례였다고 자위하기에는 너무 아프다. 경청 없고 배려 없는 소통 부재의 사회를 다룬 한 편 연극의 클라이맥스다. 여당과 야당 모두 국민의 목소리와 의견을 서로 다른 정략적 목적을 위해 활용했을 뿐 진정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또한 언론은 이 심각한 불통(不通)의 국면에서 과연 어떤 역할을 했는지 묻고 싶다.



 지금은 경청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다. 경청 없는 말의 잔치는 이미 국민에게 큰 상처를 줬다. 그 상처의 아픔이 기존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고스란히 되돌아간다고 놀랄 일이 아니다. 지금은 국민의 상처에 귀를 기울일 때다. 국민의 속마음이 들릴 때까지 무한 대기하며 경청의 연습을 계속해야 한다. 흔히 할 말을 못하면 속병이 난다고 한다. 그러나 정치인이 지금 경청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다니면 더 무서운 불신의 전염병이 돌게 된다. 지금은 극심한 소통 위기의 시대이기에 전염병의 파급 효과는 더욱 클 것이다.



 배 속의 태아에게 가장 먼저 발달하는 감각기관이 바로 청각기관이라고 한다. 그래서 태아 음악과 태아 교육이 중요하다고 한다.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가장 늦게 닫히는 감각기관도 바로 청각기관이다. 신은 이 자연의 이치로 우리에게 경청의 중요성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경청하지 않으려면 소통의 장에 감히 나서지 말아야 한다. 맹수에게 살육당하는 사슴의 비극을 보고 난 후 되돌리기는 너무 늦는 일이다.



마동훈 고려대 교수·미디어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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