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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의 현장] 안전모 쓴 김석동 “난 완투형 투수, 자진 사퇴는 없다”

중앙일보 2011.11.24 00:33 경제 4면 지면보기
“그 양반 연말께 물러날 생각을 한다는 소리가 들리던데…. 하긴 청와대든 여당이든 힘을 실어 주는 것 같지도 않고, 지치기도 했을거야.”


1박2일 중소기업 버스투어 동행

 요즘 금융계 사람들을 만나면 자주 듣는 얘기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자진 사퇴설이다. 론스타에 대한 외환은행 주식 매각 명령 이후 야당·시민단체는 물론 일부 여당 의원까지 그의 사퇴를 요구하는 상황이고 보니 더욱 그럴듯하게 들린다.



중소기업 현장투어에 나선 김석동 금융위원장(왼쪽 앞)이 21일 전주 과학산업단지 내 ㈜케이엠을 방문해 로봇핸드 제작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김 위원장의 본심이 궁금했다. 그의 말을 직접 듣고 싶었다. 금융정책 수장인 그의 거취는 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변수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기획한 ‘창업·중소기업 금융환경 혁신을 위한 현장 방문’을 기자가 따라나선 이유 중 하나다. 21일 아침 7시 버스에 올라 22일 밤 11시까지 청주·전주·광주·부산·대구를 도는 1004㎞의 강행군이었다. 도시락으로 식사를 하며 그가 중소기업인 및 창업동아리 학생들과 나누는 얘기를 들었고, 짬짬이 직접 대화할 기회도 가졌다.



 결론은 ‘아니다’ 쪽이다. 김 위원장은 “꼭 이루고 싶은 꿈이 남아있다”고 했다. 바로 중소기업이 마음껏 사업을 꾸리고 젊은이들이 창업에 도전할 수 있는 금융환경을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금융 시스템은 물론 관행까지 바꿔놓아야 하는 만큼 시간이 꽤 걸릴 게 분명하다.



 -물러날 궁리를 하신다는데.



 “나도 그런 얘기가 돈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를 모르는 소리다. 나는 완투형이다. 강속구가 특기다. 10여 차례 대책반장을 맡았지만 어영부영 그만둔 적이 없다.”



 -1년간 저축은행과 가계부채 대책, 외환 건전성 확보와 론스타 매듭까지 하고 싶은 일은 대충 다한 것 아닌가.



 “아니다. 그런 일들은 위기에 맞서 뇌관을 뽑는 방어책들이었다. 이제 공격할 일이 남았다. 앞으로 여기에 전념할 생각이다.”



 -뭘 공격하겠다는 건가.



 “중소기업들을 힘들게 만드는 금융환경이다. 글로벌 경제위기는 오래 계속될 것이다. 내년엔 중소기업들이 특히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창업·중소기업들이 활발히 사업을 펼치고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환경을 서둘러 만들어줘야 한다. 한국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예비 기업가가 많다.”



 -중소기업 육성책이란 게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지 않나.



 “경제 관료로서 나의 오랜 꿈이었다. 대기업은 성장해봐야 더 이상 일자리를 만들기 힘든 구조다. 마지막이란 각오로 중소기업 관련 금융 시스템과 관행을 뜯어고치겠다. 외환위기 이후 사회에 나온 2040세대에게 창업 기회를 통해 빚을 갚는 일이기도 하다. 내년 1분기 안에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겠다.”



 그의 행보는 주도면밀해 보였다. 정책금융공사와 신용보증기금·기업은행 등 정부 산하 금융기관의 최고경영자(CEO)들은 물론 시중은행의 기업금융 담당 부행장들을 현장 방문에 참여시켜 직접 쓴소리를 듣도록 했다. 중소기업인들이 애로 사항을 얘기하면 “거래 은행이 어디냐”고 물어 해당 은행 관계자들에게 직접 답변하도록 했다. 정부 대책이 필요한 부분은 꼼꼼히 기록하며 실행을 약속했다.



 김 위원장은 “역시 현장에 오길 잘했다”며 몇 가지 아이디어를 관계자들에게 지시하기도 했다. ▶보증·융자·출자를 결합한 금융서비스와 ▶원스톱으로 중소기업 금융의 모든 궁금증을 풀어주는 웹사이트 개설 ▶정당한 대출의 경우 부실이 나도 은행 담당자를 문책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 마련 등이 대표적이다.



 광주의 한 중소기업인은 “전시성으로 현장을 찾아 사진 몇 장 찍고 가는 관료가 많았는데, 이번엔 터놓고 얘기하다 보니 느낌이 달랐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에게 마지막 질문 하나를 던졌다.



 -제도는 물론 관행까지 고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텐데, 다음 정부에서까지 대책반장을 맡게 되는 것 아닌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번이 끝이고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새 시대를 끌고 갈 젊고 유능한 후배가 많다. 그들이 마음껏 기량을 발휘하도록 시스템을 정비해 놓겠다.”



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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