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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인민군의 신발 … 가슴 먹먹한 7개 이야기 쓰지 않을 수 없어

중앙일보 2011.11.23 00:50 종합 29면 지면보기
단편 일곱 편을 묶은 『모르는 여인들』을 내놓은 소설가 신경숙씨. 신씨는 단편을 쓸 때 “우물에 비치는 빛을 들여다 보듯 차분히 써내려 간다”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신경숙(48)씨가 새 소설집 『모르는 여인들』(문학동네)을 냈다. 소설집으로는 여섯 번째, 직전 소설집 『종소리』(2003년)를 낸 후 8년 만이다.


8년 만에 새 소설집 『모르는 여인들』 펴낸 신경숙

 오랜만이기도 하지만 신씨에게 소설집은 의미가 각별하다. 다른 작가들처럼 신씨도 출발은 단편이었다. 특히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무장한 1980년대 소설이 동력을 소진한 채 겉돌았던 90년대 초반, 신씨는 개성 있는 문체 안에 둔중한 감동을 내장한 단편으로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이른바 거대 담론이나 거창한 개혁을 거론하는 대신 내면적이면서도 사소한 이야기에 집중하는 신씨의 스타일을 가리켜 ‘내향적 미학주의’라 평하는 이도 있었다. 그 당시의 대표작인 93년 소설집 『풍금이 있던 자리』는 쇄를 거듭하며 지금까지 30만 부 가량 팔렸다. 이 정도면 문학사를 정리할 때 짚고 넘어가야 할지 모른다.



 때문에 또 하나의 소설집을 막 내놓은 신씨의 변(辯)이 궁금했다. 22일 오후 서울 시내 한 호텔의 비즈니스센터. 신씨는 “소설집을 내지 못한 기간 동안 『리진』 『엄마를 부탁해』 같은 장편에 집중했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단편 일곱 편은 장편 집필을 끝냈거나 시작하기 전에 쓴 것”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소설집이 오랜만에 나왔다는 얘기다. 또 “이전 단편들처럼 문예지의 청탁을 받고 쓴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쓰고 싶을 때 쓴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안주를 거부하는 부지런한 작가의 문학세계는 연륜을 거듭하며 완만하게, 그러나 뚜렷하게 변해가는 것일 게다. 『풍금이 있던 자리』와 비교할 때 이번 소설집은 여러모로 다르다. 덜 수선스러우면서도(그 많던 쉼표가 사라졌다!) 품고 있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절절하고 다채롭다. 서사가 전달하는 감동이 한층 강렬해진 느낌이다.



 첫 머리에 실린 ‘세상 끝의 신발’은 강렬한 에피소드로 문을 연다.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에 차출됐던 소년 병사 둘에게 생판 타향인 북으로 끌려가지 않고 고향 땅에 남아도 좋다는 탈출 기회가 주어진다. 다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한 열다섯 살 낙천, 한 살 많은 동네 형에게 자신의 상태 좋은 신발을 벗어준다. 혼자라도 살라는 것이다.



 신씨는 말한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닥쳤을 때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지 누가 알겠느냐”라고. 신발을 내준 낙천의 행위가 누구에게라도 쉽지 않은 결정이리라는 것이다.



 소설의 화자는 열여섯 소년의 훗날 딸이다. ‘나’의 눈에 비친 낙천 아저씨의 딸, 순옥 언니의 기구한 인생 유전이 30쪽 남짓한 단편 안에 압축 저장돼 있다. 어려서 순옥 언니를 동경했던 나는 그를 오래 집에 붙잡아 두려고 신발을 숨긴 적이 있다. 대를 잇는 ‘신발 교환’ 사연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가슴이 먹먹해진다.



 변화는 집필 동기에서도 확인된다. 신씨는 “동시대 혹은 나의 주변 관계들로부터 상처 입을 때마다 묵묵히 책상 앞으로 달려가 쓴 작품들”이라고 했다. ‘시대 운운’도 신씨 소설에서 새롭다면 새로운 점이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소재로 한 ‘어두워진 후에’가 그런 경우다. 작가의 관심이 사회 쪽으로 방향을 튼 걸까.



 신씨는 “불완전한 세계의 균형을 잡는다고나 할까, 읽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썼다”고 대답했다. 스스로 위안받기 위해 쓴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쓰여진 소설은 이제 세상 사람들을 위로할 것이다.



글=신준봉·위문희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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