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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알파벳도 몰랐던 그녀가

중앙일보 2011.11.23 00:23 종합 38면 지면보기
예영준
중앙SUNDAY 차장
처음엔 동명이인이려니 했다. 14억 인구 중에 같은 이름인 사람들로 줄을 세워도 끝이 안 보일 테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나의 손은 모바일 기기를 꺼내 키보드를 누르고 있었다. 미처 검색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사회자는 단상에 선 연사를 “검색엔진 기업 지커(卽刻)닷컴의 CEO이자 중국의 올림픽 영웅”이라고 소개했다. 바로 그녀, 올림픽과 세계 대회에서 무려 18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탁구 마녀 덩야핑(鄧亞萍)이었다. 얼마 전 중국 인민일보 주최로 열린 ‘아시아 미디어 협력 포럼’에서 덩야핑은 주최 측을 대표해 기조연설을 했다.



 옆에 앉았던 그의 부하직원이 혀를 내두르며 인생 스토리를 들려줬다. “대학 입학 때만 해도 영어 알파벳을 몰랐대요. 그런 그가 영국의 최고 명문대학에 유학을 가 박사학위를 따왔으니….” 탁구선수로서 더 이상 오를 나무가 없던 1997년, 그는 라켓을 내려놓고 영어 사전을 잡았다. 스물넷 나이에 칭화대(淸華)대 영문과에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것이다. 당시 덩야핑은 알파벳의 A부터 Z까지, 대문자와 소문자를 온전하게 알지 못했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다섯 살 때 라켓을 쥐었고 열세 살에 국가 대표가 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것도 설렁설렁한 게 아니라 남들 1년 신는 운동화를 한 달 만에 갈아치울 정도였다.



 그런 그가 4년 뒤 베이징 올림픽 유치 대사로 나서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어연설을 했다. 평창 올림픽을 딸 때의 김연아처럼 말이다. 그는 하루 14시간 학업에 매달렸다. ‘빨래집게 옆에 놓고 A자도 몰랐던’ 그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박사가 된 것은 선수 시절 몸에 밴 집념과 노력과 도전정신의 결과일 것이다.



 회의 일정 마지막 날 그의 사무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인민일보의 뉴스 검색 사이트를 중국에서 속도가 가장 빠른 범용 검색 엔진으로 탈바꿈시켰다. 엔지니어가 대다수인 직원 190여 명을 이끄는 CEO가 된 지 일 년 만이다. 네티즌의 눈동자 움직임을 감지해 사이트의 어떤 항목을 보고 있는지를 자동으로 집계하는 기술을 그는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만하면 덩야핑의 변신에 합격점을 줄 수 있을 듯했다.



 불현듯 한국의 젊은이들이 떠올랐다. 청춘의 꿈과 희망과 도전이 사라지고 ‘아픔’만이 남았다고들 걱정하는 세대다. 덩야핑이야말로 그런 젊은이들의 롤 모델로 적합하지 않을까. 그를 불러 청춘콘서트라도 여는 셈치고 물어보았다. 당신과 겨뤘던 한국의 젊은이들은 어땠느냐고. “그때 한국 선수들은 기술보다는 정신력과 투지가 대단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그런 게 어찌 탁구뿐이랴. 다시 물었다. “탁구와 박사학위, 그리고 비즈니스 가운데 무엇이 당신에게 가장 쉽고, 무엇이 가장 어려운 일인가.” 그랬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평범한 대답이었지만 나는 감동했다.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안 되는 일도 없다.”



예영준 중앙SUNDAY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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