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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동상이 크다? 클수록 좋아”

중앙일보 2011.11.19 01:35 종합 8면 지면보기
지난 14일 경북 구미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만든 이는 김영원(64) 홍익대 미대 학장. 박 전 대통령 동상뿐만이 아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 세종대왕 등 우리나라 굵직한 지도자의 동상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 국새도 만들었다. 그만큼 말도 많다. 국새에 금이 가자 “그래서 국운이 나빠졌다”고, 박 전 대통령 동상 시안은 “평양 만수대 김일성 동상과 닮았다”고 논란이 일었다. 이 전 대통령 동상 제막식 날엔 4·19 단체 회원들이 반대 시위를 벌였다. ‘기념 인물상의 정치학’을 극명히 보여주는 사건이다. 광화문 세종대왕상에 대해선 “너무 커서 권위적이다” “금색이 야하다” 등 비판도 나왔다. 15일 오후, 홍익대 학장실을 찾아갔다.


세종대왕·이승만·박정희 동상 만든 김영원 홍익대 학장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부터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까지, 굵직한 인물상을 모두 만들었다.



 “나도 그게 참 묘하다. 무슨 인연으로 됐나 싶다. 평생 인체작업을 해서 해부학적 구조에 밝 다. 그래서 맡게 된 것 같다.”



 -박 전 대통령 동상에서 강조하고자 한 것은.



김영원 학장
 “500년 넘게 내려왔던 가난의 고리를 끊은 인물. 그리고 한 시대를 끌어갔던 강력한 카리스마의 정치인. 그래서 왜소한 체구를 가릴 코트를 입혔고,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선진 조국 저기다’고 손 들어 방향을 제시하는 모습으로 만들었다. 그게 첫 시안이다.”



 -김일성 동상을 닮았다는 논란이 일었다.



 “욕을 잔뜩 얻어먹었다. 카리스마 대신 서민적 풍모를 강조키로 했다. 새마을운동을 연상시키는 노타이에 양복 차림으로 바꿨다. ‘조국을 근대화해 선진국처럼 잘살아보자’는 취지의 국방대학원 졸업식 연설문을 새긴 두루마리를 들고 있도록 했다.”



 -1968년 홍익대 조소과에 입학해 한때 유신 반대 시위에도 참여했고, 저항적 인간 군상을 전시하기도 했다.



 “3선 개헌 반대, 경부고속도로 건설 반대 시위에도 참여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걸 안 뚫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포항제철 할 때도, 소양강댐 만들 때도 그랬다. 한 번도 저항에 안 부딪힌 게 없었다. 공은 공대로 인정하자. 심판은 먼 훗날,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다 죽고 난 뒤에 될 거다.”



 -재료비도 상당하겠다. 이번에 12억원이 들었다던데.



 “최상의 청동을 쓰면 일반 재료의 세 배 정도 든다. 나는 재료비 포함해 5억5000만원을 받았다. 나머지는 조경 등에 들어갔다. 12억원이라고 보도되니 마치 내가 큰돈을 받은 것처럼 얘기들 한다. 사실 큰돈은 세종대왕상 만들며 벌었다. 재료비 포함해 19억원을 받았다.”



 -재료비를 빼면 얼마나 남나.



 “만족할 만큼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일하다 보면.”



 -세종대왕상에서 드러내려 한 것은.



 “애민정신이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분의 대표적 캐릭터다. 전 생애가 어버이 같은 분이었다.”



 -결과가 뜻하던 대로 잘 나왔나.



 “예, 뭐. 100% 만족하는 법이 없잖나. 그것도 5개월이란 짧은 기간 안에…. 혼신을 다해 5㎏이나 빠졌다.”



  -일이 급하게 진행됐던 모양이다.



  “실은 이승만상도 3년 전 이미 석고모형을 완성했다. 의뢰자인 자유총연맹 측에서 지지부진하다가 이번 8월에 갑자기 제막식을 하자고 했다. 세종대왕상도 그렇고, 공공조형물 의뢰자들이 장기적 비전을 갖고 일했으면 좋겠다.”



  -기념 인물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뭔가.



 “대중성이다. 공개된 장소에 놓기 때문이다. 만드는 이의 개성이 지나치게 부각되는 것은 좋지 않다.”



 -대중성을 말하지만, 세종대왕상에 대해선 비판이 거셌다.



 “처음에는 별소리 없더니,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재선에 나간다고 발표하면서 동상에도 흠집을 내기 시작했다. 선거 끝나고 오씨가 떠나니까 또 조용해졌다. ”



 -금색이 거슬린다고도 한다.



 “금색은 최상의 청동 배합에서 나오는 색이다. 세월이 지나면 검푸르게 녹슬 거다.”



 -너무 커서 권위적으로 보이지 않나.



 “위대한 인물이니 크면 클수록 더 좋다. 위정자들이 세종대왕의 정신을 좀 본받았으면 좋겠다. ‘크다’ ‘금색이다’ 하는 거 다 주관적 편견일 뿐이다.”



 -1968년 조성한 이순신 장군상과 41년 뒤 만든 세종대왕상이 조형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좀 더 21세기적인 뭔가가 나와야 하지 않았을까.



 “개성적으로 말인가. 동상의 속성을 모르는 얘기다. 우리나라 수도의 심장부에 내 개성, 내 색깔을 덮어씌울 수 있나.”



 -좌대에 ‘ㄱㅋㅇㄷㅌㄴ…’라고 새겼다. 핵심 업적이 한글 창제라는 얘기인데, 그럼 인물상보다 차라리 한글 관련 타이포그래픽 조형물 같은 것도 생각해볼 만하지 않았을까.



 “그것 또한 개성적이다. 그쪽 업계, 디자인 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얘기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건 서울 심장부의 상징 조형물이다. 세종대왕은 500년 전 인물이지만 현재에도, 미래에도 계승시켜야 할 인물이다.”



 - 인물상 조성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



 “표정이다. 표정에 모든 게 다 드러나니까. ”



 -기념 인물상도 예술인가.



 “나는 예술가로서 최선을 다해 임했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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