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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끄적거린 것 대충 모아도 책이 되는 작가, 하루키

중앙일보 2011.11.19 01:01 종합 20면 지면보기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비채

1만4800원




“편파적인 사랑이야말로 내가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가장 편파적으로 사랑하는 것들 중 하나입니다.”(260쪽)



 이 책을 선택한 독자라면 하루키의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스스로 ‘잡문’이라고 이름 붙인, 형식도 연관성도 없는 산문모음집을 ‘하루키’라는 이름만으로 기꺼이 집어 드는 이들. 그들은 하루키를 편파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각종 문학상 수상소감과 시시콜콜한 평문에 빠져들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론 ‘하루키 월드’에서 채집할 수 있는 마지막 한 톨까지 추려 담았다는 인상이다. 스스로 서문에서 밝히듯 “옛날에 게재했던 글을 실은 신문이나 잡지들이 종이상자로 몇 상자나 쌓여 있”으니 오죽하겠는가. 그 가운데 여태 단행본으로 엮지 않은 69편을 추렸다. 주관적 느낌에 따라 범주화하고 각각에 소개글을 붙였다. 그러면서 “내 안에 있는 ‘잡다한 심경’의 전체상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이 중 눈에 띄는 것이 ‘『언더그라운드』에 관하여’라는 장이다. 『언더그라운드』는 1995년 일본 도쿄 지하철에서 벌어진 옴진리교 사린가스 사건을 계기로 하루키가 1년 여에 걸쳐 취재한 르포르타주다. 그가 주목한 것은 5명의 범인들이 이공계에서 수학한 30대 엘리트라는 점. 정치적 무관심이 특징인 ‘시라케 세대’가 교조적인 이상에 빠져들어 반사회 테러에까지 이르게 된 연유를 되새긴다.



 하루키는 “사회의 메인 시스템에 ‘노’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받아들일 만한 활력 있는 서브시스템이 일본 사회에는 선택지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일갈한다. 양극화가 심화되는 우리 사회는 어떨지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통찰이다. 번역가로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하루키는 레이먼드 카버·스콧 피츠제럴드·J D 샐린저에 대한 ‘편파적 사랑’도 공공연히 드러냈다. 소설을 쓴다는 것, 각 나라의 언어를 다룬다는 것에 대한 예민한 자의식도 구석구석 깃들여 있다. 그러나 잡문을 읽은 즐거움은 무엇보다 탁월한 문장가·이야기꾼이기에 앞서 그다지 색다를 게 없는 ‘인간 하루키’를 만나는 데 있다.



 그걸 예시하는 게 도입부의 ‘굴튀김론’이다. ‘자기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굴튀김에 빗대 풀어간 이 4매짜리 글에선 별다를 바 없는 인간 하루키와 별다른 소설가 하루키가 동시에 읽힌다. 이러니 그를 편파적으로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나. 국내 독자들의 열혈 ‘팬덤’을 증명하듯, 출간과 동시에 주요서점 베스트셀러 20위 안에 올랐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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