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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 기념수 대신 유골함 … 코스를 사랑했던 사람을 영혼까지 모시는 골프장 …

중앙일보 2011.11.19 00:31 종합 28면 지면보기
스코틀랜드 애버딘 인근의 스톤헤이븐 골프장. 인생이라는 라운드를 마친 클럽의 회원들은 코스 바로 옆 에서 영원한 안식처를 찾는다. [성호준 기자]


‘이글 기념 나무 대신 조그마한 유골함이 자리 잡고 있다. 가장 볕이 잘 들고 아름다운 시그너처 홀 옆이다. 살아생전 이 코스를 사랑했던 골퍼들이 모여 있는 따뜻한 안식처다. 홈코스에 묻힌 행복한 영혼은 자신의 기일에 코스를 찾아온 두 아들 내외를 반갑게 맞이한다. 유골함에 헌화한 후 코스로 돌아가 멋진 티샷을 날린 자식들에게 영혼은 소리 없는 박수를 보낸다. 그린에 살랑이는 미풍은 “나이스 샷,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아”라고 말한다’. 골프를 사랑한다면 이런 상상도 가능할 것이다.

황영훈 GMG대표의 도발 구상



 서양에선 실제로 골프 코스에 영혼을 묻는 사람들이 있다. 마스터스를 최고의 골프 대회로 만든 ‘오거스타의 제왕’ 클리퍼드 로버츠는 코스 15번 홀 호수에 유골을 뿌렸다. 1965년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미국의 프로골퍼 데이브 마는 B급 레슨 프로였던 아버지가 살아생전 다녔던 골프장을 찾아다니며 유골을 뿌렸다. 달에서 골프를 쳤던 우주 항공사 앨런 셰퍼드의 유골 일부는 페블비치에 묻혔다. 스코틀랜드에는 코스 주위에 공동 묘지가 있는 링크스가 더러 있다. 골프는 그들에게는 일상이었고 영원한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20년간 골프 관련 유통업을 한 GMG그룹 황영훈(48·사진) 대표도 그런 꿈을 꾸고 있다. 그는 “골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은퇴 후 골프장에서 소일하면서 골프를 즐기고 종국엔 골프 코스에 묻힐 수 있는 골프장을 만들고 싶다. 자식들이 찾아와 골프를 사랑했던 고인을 기리고, 은퇴하면 아버지를 따라 회원이 되고, 그렇게 윤회하는 골프장을 꿈꾼다”고 했다. GMG는 한 대학 재단과 함께 그런 골프장 건립을 계획 중이다.



 그는 은퇴를 앞두고 미래를 고민하는 베이비붐 세대를 보면서 그런 골프장을 구상했다고 한다. “현재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까지 중년층이 은퇴 이후를 걱정하고 있다. 나이가 들고 직업이 없으면 자아실현은커녕 특별히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없어 상실감만 커진다. 이런 분들이 직업도 가지고 골프라는 운동까지 하면서 건강관리를 할 수 있는 클럽을 기획했다”고 한다.



 회원은 마샬이나 코스 관리, 프로숍, 레스토랑 서빙, 혹은 캐디까지 능력에 맞게 적당한 시간 일을 할 수 있다. 외부 손님도 받기 때문에 많지는 않지만 일한 만큼의 급여도 받는다. 업무 외 시간에는 최소한의 비용만 내고 골프를 즐길 수 있다. 코스 주위에 화려하지는 않지만 안락한 집들도 짓는다. 회원들은 이곳에 살게 된다. 병원도 만든다. 그러다 세상을 떠나면 이 골프장에 묻히는 것이다.



 그가 꿈꾸는 골프장은 매우 이상적이다. 황혼 골퍼의 유토피아 같다.



 황 대표는 “현재 골프장들이 젊은 사람들을 쓰고 있는데 곧 노령화사회가 되면 젊은이가 단순 업무를 맡지 않으려 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명문 클럽에서도 노년층이 나비 넥타이를 매고 서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영국이나 미국 골프장에서는 경험 많은 코스의 회원이 소일거리로 캐디를 한다. 각 회원들이 은퇴 이전 경력을 살려서 충분히 적당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에는 잘못된 골프 문화가 더러 있는데 한번 바뀌기 시작하면 확 바꿀 수 있다”면서 “서로에 대해 배려할 수 있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회원은 적정 수준 이상 되는 양심이 있는 분들로 채우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36홀 골프장 인력이 약 300명 선인데 잡셰어링을 통해 600명 선으로 늘릴 수 있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짜놨다. 코스 주위에 만들 회원 타운은 역모기지를 도입할 계획이다.



 그래도 걸림돌은 남는다. 각종 규제와 법령 개정 등의 문제다. 황 대표는 “스티브 잡스처럼 몽상가가 세상을 바꾼다”고 말했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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