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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반한 한국 (39) 미국인 호텔리어 크로포드의 보양식 사랑

중앙일보 2011.11.18 03:10 Week& 7면 지면보기
한국 생활이 14년째인 지금은 삼계탕이며 갈비찜을 집에서 손수 만들어 먹는다. 가슴속까지 은근하게 파고드는 깊은 맛이야말로 한국 보양식의 정수가 아닐까.
이열치열이 뭐예요?


삼계탕 국물 한 방울까지 싹 비웠다, 시원~하다

나는 서울시내 특급호텔의 호텔리어다. 직무 성격상 외국인 손님을 많이 접하는데, 외국인 손님이 한국 음식을 물어올 때가 나는 가장 신이 난다. 나는 늘 삼계탕이나 갈비탕 같은 한국의 보양식을 추천한다.



 일단 내가 “한국에는 초복·중복·말복이란 게 있다”고 운을 떼면 외국인 손님 열에 아홉은 호기심을 보인다. 복날의 개념을 쉽게 설명한 다음에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을 반드시 경험해 보라”고 귀띔한다. 삼계탕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땀을 흘리며 돌아온 손님은 으레 나와 눈이 마주치면 씩 웃는다. 이열치열의 감정이 통했음을 확인한 순간의 기분은 그야말로 날아갈 듯 유쾌하다.



 눈치채셨겠지만 나는 한국 보양식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삼계탕과의 첫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운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이었다. 한여름의 긴 수업에 지친 친구들이 점심 메뉴로 원기를 보충할 만한 것을 고르자고 제안했다. 메뉴를 정하면서 한국인 친구들은 종종 ‘이열치열’이라는 단어를 썼다. 나에게 그 뜻을 열심히 설명해주던 친구가 아예 한국의 진정한 이열치열을 보여주겠다며 나를 삼계탕 집으로 데려갔다.



 삼계탕 집에서 나는 두 번 놀랐다. 땡볕 아래에서 땀투성이가 되어 하염없이 차례를 기다리는 긴 행렬에 한 번, 여전히 펄펄 끓는 국물이 찰랑대는 삼계탕 뚝배기를 서빙하는 묘기에 가까운 모습에 또 한번 놀랐다.



 충격은 계속됐다. 이윽고 내 앞에 놓인 뚝배기 속에는 닭 한 마리가 통째로 하얀 속살을 드러낸 채 담겨 있었고, 친구들의 접시 위에는 무서운 속도로 뼈가 쌓여갔다. 삼계탕 국물이 내뿜는 더운 김이 얼굴에 와 닿는 순간 한숨이 나왔다. 뜨거운 음식으로 어떻게 무더위를 이긴다는 걸까.



 용기를 내어 국물을 조금 떠 먹었다. 의외로 낯설지 않은 맛이었다. 쫄깃쫄깃한 닭고기 살을 한 입 베어 문 다음, 닭의 배 속에서 보물처럼 쏟아져 나온 대추와 밤을 과감하게 맛봤다. 어느덧 친구들은 뚝배기를 들고 국물을 마시고 있었다. 덩달아 뚝배기를 감싸 들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입안에 털어넣었다. 진한 육수가 뜨끈하게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아, 이게 바로 이열치열이구나. 비로소 나는 한국을 이해한 느낌이었다.



뚝배기 같은 한국, 사랑해요



한국 생활 14년이 되는 지금은 복날마다 삼계탕을 챙겨 먹는다. 하지만 여름 한낮 삼계탕 집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은 아직도 힘들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아예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한국인 친구들이 삼계탕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며 말렸지만, 인터넷에 올라온 몇 가지 비법을 참고해 마침내 나만의 조리법을 완성했다.



 요즘은 삼계탕이 당기면 집 근처 재래시장에 간다. 여기에서는 작은 크기의 삼계탕용 닭뿐 아니라 황기·인삼·산뽕나무·은행·대추 등의 갖은 전통 재료도 한꺼번에 포장해서 판매한다. 닭에 찹쌀과 인삼을 넉넉히 채워넣은 다음 이 모든 재료와 함께 끓이면 삼계탕이 완성된다. 마늘·간장·부추·참기름을 적당한 비율로 넣으면 한층 진한 국물을 맛볼 수 있다. 이 모든 재료가 완벽한 조화를 이뤄야 비로소 깊은 맛과 영양, 그리고 한국 음식만의 향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몇 차례 시행착오 끝에 깨달았다. 남은 닭고기로 다음 날 만드는 고소한 닭죽도 나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별미다.



 삼계탕을 마스터한 나는 조리법이 더 어렵다는 갈비찜에 도전해봤다. 준비할 재료도 많고 조리 시간도 더 길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음식이다. 인터넷에서 발견한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윤숙자 소장의 조리법은 영어로 돼 있어 따라 하기가 편했다. 읽는 것만으로 배가 부를 정도로 설명도 세세하고 맛깔스러웠다.



 종종 친구들에게 갈비찜을 대접하곤 하는데, 한국인과 외국인의 반응이 서로 다르다. 한국인 친구들은 달착지근한 양념 소스에 입맛을 다시는 반면 외국인 친구들은 깊은 맛에 놀라곤 한다.



 음식은 그 나라 사람을 닮는다. 한식도 마찬가지다. 호텔에서 일하며 다양한 국적의 사람을 만났지만, 한국인의 온정은 유난히 오래 이어졌다. 음식을 다 먹은 뒤에도 한동안 온기가 남아있는 뚝배기처럼 말이다. 나는 뚝배기에 담긴 한식을 사랑한다. 그리고 정이 깊어 ‘진국’이라 불리는 한국인도 많이 사랑한다.



정리=나원정 기자

중앙일보·한국방문의해위원회 공동 기획





수잔 크로포드(Susan Crawford)



1975년 미국 뉴욕 출생. 97년 1년만 머물고자 했던 한국 생활이 어느덧 14년째를 맞았다. 연세대에서 한국어를 공부해 의사소통에 능통하며 한식뿐 아니라 한국의 모든 문화를 사랑한다. 한국관광공사에서 근무하며 제주도, 부산, 경남 거제, 경북 경주, 강원도 평창 등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2006년 임피리얼 팰리스 서울 호텔에 입사했고 현재 고객관리부 데스크에서 내외국인 고객을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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