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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희사

중앙일보 2011.11.18 00:25 종합 37면 지면보기
희사(喜捨)는 원래 불교 용어다. 기쁘게 재보(財寶)를 보시(布施)한다는 뜻이다. 부자가 재산을 나누어 주는 것을 권분(勸分)이라고 한다. 『속자치통감(續資治通鑑)』 남송(南宋) 효종(孝宗) 순희(淳熙) 10년(1183)조에 “지금 흉년을 구하는 계책에 권분 같이 급한 것이 없다”는 말처럼 권분은 흉년에 부자들이 곳간을 여는 것을 뜻한다.



 권분이란 말은 공자가 지은 역사서 『춘추(春秋)』에 좌구명(左丘明)이 전(傳)을 지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도 등장하니 최소한 서기전 5세기부터는 있던 일이다. 『춘추좌씨전』은 노(魯)나라 희공(僖公) 21년조에 큰 가뭄이 들자 희공이 앉은뱅이 무당을 불에 태워 죽이려 했는데, 장문중(臧文仲)이 그것은 가뭄에 대한 대비가 아니라며 비용을 절약하고 권분을 장려하라고 권했다고 나온다.



 조선 숙종이 재위 21년(1695) 비망기(備忘記)를 내려 권분을 권유한 것처럼 국왕이 직접 권유하기도 했다. 그러자 부작용이 생겼다. 지방관들이 권분을 핑계로 관내의 부호들에게 강제로 재산을 내게 해서 착복하는 경우가 생겨났다. 그래서 정조는 재위 22년(1798) ‘전라도 암행어사 김이영(金履永)에게 내리는 봉서’에서 암행어사가 해야 할 일을 세세하게 지시하면서, 그중에 “금령을 범해 가면서 권분하는 것도 적발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국조보감(國朝寶鑑)』 순종(純宗·순조) 29년(1829)조에는 부왕(父王)을 대신해 대리청정하던 효명세자가 “근래 수령이 위협하고 공갈해서 권분을 하도록 하니 이것은 사실 백성의 재물을 늑탈(勒奪·강탈)하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다”면서 엄금하도록 하고 자원자에 한해서만 권분을 받게 했다고 전해진다. 『만기요람(萬機要覽)』 ‘황정(荒政)’ 진휼총론(賑恤總論)에서도 “곡식을 비축한다고 칭탁해서 민간에 권분하는 것을 엄금한다”는 금지 조항이 명기되어 있다. 그러나 권분의 본뜻은 송(宋)나라 황진(黃震)이 『재유상호방(再諭上戶榜)』에서 “부자가 남는 재산을 털어서 가난한 사람의 부족한 것을 보충해 주는 것은 천도(天道)”라고 주장한 것처럼 소수에게 집중된 재물을 다수와 나누는 것이 하늘의 이치에 맞는다는 애인(愛人) 사상의 발로였다.



 안철수 교수의 1500억원대 주식 희사가 화제다. 순수하게 보지 않는 시각도 있지만 그간 우리 사회의 지도층에 부족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이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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