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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는 의사다 인류 위해 일하니까 잘못하면 세상 망치니까

중앙일보 2011.11.16 00:24 종합 31면 지면보기
파올라 안토넬리는 “디자이너는 정치·과학에 대해서도 어떤 관점을 갖고 있어야 한다. 디자인 작업은 우리 세계·현실과 동떨어진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디자이너여, 제너럴리스트가 되라.” 도시·건축·가전품 등등, 이른바 디자인의 시대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건축·디자인 수석 큐레이터 파올라 안토넬리(48)는 “좋은 디자인은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의 별명은 ‘디자인 대사’. 밀라노 폴리테크닉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디자인 전문기자로 일한 뒤 1994년부터 모마에서 일하고 있다. 2004년 영국 ‘아트 리뷰’의 세계 미술계 ‘파워 100’에도 꼽혔었다.


뉴욕 현대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파올라 안토넬리



15일 오전 만난 안토넬리는 “디자이너는 의사와 같다. 의사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듯 디자이너는 다른 사람들을 책임져야 한다. 인류를 위해 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현대카드 본사 오디토리움에서 목진요·송호준·양수인·최우람·양민하·랜덤웍스·스티키몬스터랩·에브리웨어 등 한국의 디자이너 8팀과 디자인에 대한 생각도 나눴다.



 -누구나 디자인을 말한다.



 “새롭고도, 사람들이 원하는 기능을 제공하는 거다.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라 향수처럼 오감을 움직이는 것, 혹은 형이상학적인 것도 포함된다.”



 -디자인과 예술은 어떻게 다른가.



 “예술가는 다른 사람을 책임질 필요가 없다.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 그러나 디자이너는 그래선 안 된다. 의사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니 그들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나쁜 디자인은 세상을 망친다.”



 -디자인의 영역이 넓고 넓은데….



 “미국의 경우, 많은 사람이 예쁘고 비싼 게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비싼 의자, 비싼 차, 명품 같은 것 말이다. 주변의 모든 것이 디자인 영역에 들어간다고 말해주기 전엔 잘 모른다.”



 -무엇이 좋은 디자인인가.



 “일단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것. 우리가 갖고 있는 에너지,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거다.”



 안토넬리는 2004년 모마에서 ‘일상의 경의-험블 마스터피스(Humble Masterpiece)’ 전시를 기획해 호응을 얻었다. 하잘것없는 일상용품 100여 점을 디자인이란 관점에서 다시 보게 한 이 전시는 한국(2008년)을 포함해 세계를 돌며 소개됐다.



 -좋아하는 디자인이라면.



 “(자기 앞의 종이 커피잔을 들어 보이며) 커피잔과 그 홀더, 포스트잇, 젤리빈, 중국의 포춘 쿠키, 아이스크림 콘, 젓가락 등 일상의 수많은 물건. 가령 추파춥스는 생필품은 아니지만, 있으면 즐거운 물건, 그래서 필요한 물건이다.”



 -디자이너의 요건은.



 “스폰지나 낙지처럼 여러 군데 촉을 세우고 있어야 한다. 중심은 잡아야겠지만 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가 돼야 한다. 필요에 따라 여러 분야 사람을 불러 신선하고도 완전한 협업을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은 네 번째 왔는데, 서울은 모던한 도시임에도 잘 찾아보면 오래된 부분이 있고, 그게 서로 대비된다는 게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준용·양민하·양수인·최우람 등 젊은 디자이너, 타이포그래픽 디자이너인 안상수 등에 관심이 크다”고 밝혔다.



글=권근영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뉴욕 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1929년 설립된 뉴욕의 대표적 미술관. 모마(MoMA)라는 약칭으로 더 유명하다. 모네의 ‘수련’, 마티스의 ‘춤’, 피카소의 ‘게르니카’ 등 서구 근대 미술의 대표작을 포함, 소장품은 15만 점이 넘는다. 디자인 관련 기획전을 격년으로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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