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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 목소리 계속 외면 … 한국 금융은 ‘벌거벗은 임금님’

중앙일보 2011.11.16 00:10 경제 8면 지면보기


‘은행 ATM 수수료 평균 38% 인하, 보험 해지환급금 10% 이상 인상, 중소가맹점 범위 2억원까지 확대’. 최근 금융권이 소비자를 위해 내놓은 조치다. 이런 변화 뒤에는 지난 3월 보험소비자연맹에서 확대 개편한 금융소비자연맹(금소연)의 역할이 있었다.

이성구 금융소비자연맹회장이 말하는 “금융 왜 문제인가”



금소연은 한발 앞서 ‘은행수수료 소비자 부담’ ‘보험료 선지급금 구조 개선’을 주장했다. 이 단체를 이끄는 사람은 다소 뜻밖의 인물이다. 이성구(54·사진) 금소연 회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부 고위 관료였다.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정책국장을 맡다가 지난 4월 금소연 회장으로 변신했다. 소비자와 금융회사 간의 불균형을 누군가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가 관(官)의 전문성보다 민(民)의 비판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금융은 ‘벌거벗은 임금님’ 신세다. ‘벌거벗었다’는 진실을 말하는 소비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왜 한국 금융이 ‘벌거벗은 임금님’인가.



 “그만큼 폐쇄적이란 뜻이다. 전문적인 영역이라는 이유로 관료들은 쓴소리하기를 겁내고, 소비자의 말은 듣지 않는다. 다른 어떤 산업도 이렇게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경우는 없다.”



 -금융 실패의 위험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 아닌가.



 “금융회사는 망하는 순간 소비자도 같이 쪽박을 찰 수 있다는 점에서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한 건 맞다. 그렇다고 금융당국이 완벽한 감독 능력을 갖고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지 않나. 감독기관은 ‘사고만 나지 않게 하자’는 방향으로 안고 간다.”



 그는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를 예로 들었다.



 “사건이 터졌을 때 금융당국은 ‘저축은행 상황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고객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렇게 말하려면 금융당국이 독점하고 있던 정보를 소비자들에게도 내줬어야 했다.”



 -금융권은 각종 경영공시를 하고 있는데.



 “담보대출이 어떻고 하는 식의 사업보고서는 경제학 박사인 내가 봐도 이해하기 어렵다. 쓸 만한 정보를 제공해 고객이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느냐가 핵심인데 그 일을 안 하고 있다는 뜻이다.”



 -소비자의 목소리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소비자가 자신이 선택한 상품에 대해 알고 비판할 수 있는 시장이라야 제대로 된 경쟁이 일어난다. 삼성이나 LG가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합리적인 소비자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1994년 공정위 시절부터 줄곧 소비자 정책과 규제개혁 업무를 봐 왔다. 관(官)으로서의 업무성과에 대해 스스로는 아쉬운 점이 많다고 털어놨다.



 -소비자 입장에 서보니 어떤가.



 “관료로서 업무를 추진할 때는 협조가 잘 됐다. 이쪽에선 내가 힘을 갖고 하는 일이 거의 없다. 소비자들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지금 금융위가 금융소비자원을 만든다고 하는데 기관을 하나 더 세우는 건 의미가 없다. 소비자의 힘을 키워줄 의지가 있는가가 중요하다.”



 -금융권 수수료 인하 등 성과에 대해서는.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이번엔 미국의 반(反)월가 시위나 언론이 만들어 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얹은 정도에 불과했다. 소비자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결할 수 있도록 조직에 전문 인력을 확보해 가겠다.”



글=김혜미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이성구 금융소비자연맹 회장=행정고시 24회로 1994년 공직생활에 입문한 뒤 줄곧 규제개혁과 소비자정책 분야를 담당했다. 지난 4월 정부 고위 관료(1급)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민간소비자단체(금융소비자연맹) 회장으로 자리를 옮겨 주목을 받았다.



이성구 회장이 말하는 ‘한국 금융’의 문제



① 폐쇄적 관리 감독 체계



② 전문성 과시하며 소비자 목소리 무시하는 태도



③ 투명하고 효율적인 정보 공개 소홀



④ 소비자 권한 강화에 대한 의지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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