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론] 미국도 ‘잃어버린 10년’인가

중앙일보 2011.11.16 00:03 종합 37면 지면보기
하태형
수원대 금융공학대학원 교수
최근 미국 월가에서는 ‘잃어버린 10년(lost decade)’이란 말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이 말은 1990년대 일본의 주식·부동산 가격 폭락으로 시작된 복합 불황을 뜻한다. 미국의 경우 2008년 과잉유동성 공급에 의한 자산가격의 거품이 꺼지는 와중에서 촉발되었다는 점과 경기후퇴를 막기 위해 제로금리로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는 점이 일본과 닮았다. 일본은 이런 정책에 힘입어 90년대 초반 성장률이 3.15%까지 회복됐으나 다시 0%대로 가라앉고 물가도 디플레이션 기조를 20년 가까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도 이런 일본의 전철을 밟기 시작한 것인가. 먼저 90년대 일본과 2008년 이후 미국 경기침체의 원인을 보자. 일본의 경기침체 원인으로 ‘과잉유동성에 의한 거품경제의 붕괴’가 지목되지만, 이는 피상적인 분석이다. 그 이면에는 85년 플라자합의 후 국제 사회에서 반강제적으로 요구한 엔고가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은 수출의존도가 최근 15%까지 하락했지만 주요 수출품목이 모두 산업연관효과가 큰 자동차·전자·중화학공업 제품으로 구성돼 있어 수출이 막히면 경제 전체가 타격받는 구조로 돼 있다. 플라자합의 이전 달러당 250엔이 넘던 엔화 환율은 88년 초 120엔까지 하락하고, 다음해 부동산 버블까지 터지자 일본 수출기업들은 일제히 감축경영으로 돌아섰다. 국민들은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다들 저축에 몰두하면서 기업투자와 소비가 동시에 줄면서 경기침체가 시작됐다. 일본 기업들은 이후 지속된 엔화강세 트렌드를 생산기지 해외이전과 비정규직 채용이라는 소극적 방법으로 대처한 결과 고용불안 문제가 지금껏 이어져 오고 있다.



 미국은 일본과 정반대로 세계 각국에서 제품을 수입해 소비를 일으키는 나라다. 달러화가 강할수록 국익에 보탬이 된다. 수출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 수준으로 아주 낮다. 수출품목도 무기·항공기·소프트웨어 등 가격탄력성이 낮은 품목이 대부분이어서 달러화 가치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또 미국 기업들은 이미 달러강세에 적응해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로의 구조재편을 마친 상태다. 그러나 10년 만기 미국 국채수익률을 보면 심상찮다. 80년도 15% 수준에서 90년도 8%로, 2002년 정보기술(IT) 버블 붕괴 때는 3%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 최근엔 역사상 처음으로 1%대로 하락했다. 국가 경제의 활력도를 보여주는 장기국채 수익률은 미래 경기전망을 잘 반영한다고 할 수 있는 수치다. 이것이 1%대로 낮아졌다는 것은 미래 미국 경기가 결코 밝지 않으며 미국의 주력분야인 인터넷·금융·바이오 등에서도 사업기회가 소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0%에 가까운 낮은 금리도 유럽 재정위기 등 대외적 불확실성 때문에 기업의 투자 의욕을 자극하지는 못할 것이다. 유럽 경제는 그리스에 이어 이탈리아 재정위기까지 두드러지면서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 독일은 그동안 유로존 통합으로 수출시장이 확대되고 마르크화에 비해 약세인 유로화를 사용함으로써 수출경쟁력 증진 등으로 최대 수혜를 봤다. 그래서 남유럽 재정위기 해결을 위해 당연히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하지만 그 한도에 대해서는 자국 내에서도 이견이 많다. 이런 점을 종합하면 10년은 아니다 해도 미국 경제는 앞으로 상당기간 2008년 이전의 활력을 되찾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하태형 수원대 금융공학대학원 교수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