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백남운 월북 권유에 “난 남쪽에서 할 일 있다” 거절

중앙일보 2011.11.14 02:02 종합 14면 지면보기


유민이 평생에 걸쳐 교분을 쌓은 국내외 인사는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그중 적지 않은 이가 식민지·분단·전쟁을 거치면서 유민과 인연이 엇갈리게 된다. 유민의 모친(이문익)은 아들이 1934년 경성제대 예과에 입학하자 서울 청량리로 집을 옮기고 생활의 방편으로 하숙을 친다. 이때 하숙생들이 경성제대 예과생 황산덕(전 법무·문교부 장관)·문홍주(전 문교부 장관)·김봉관(전 농림부 차관)·선우종원(전 국회사무총장)·계창업(전 대법원 판사) 등이다. 유민은 문학청년 기질에서 의기투합했던 이항녕(전 홍익대 총장)과 함께 자하문 밖 홍지동의 춘원 이광수(1892~1950) 집을 자주 찾았다. 훗날 춘원의 부인이자 의사인 허영숙은 유민의 차녀 출생 때 직접 아기를 받는다. 1939년에는 평북 선천의 계창업 본가에 갔다가 계창업의 외사촌 처남인 작가 정비석(1911~1991)을 만나 평생 우의를 다지게 된다.

좌·우 넘나든 폭넓은 교분



 유민은 대학시절 사회주의 사상에도 관심을 가졌다. 당대 조선 최고의 경제학자이던 백남운(1894~1979·전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의 『조선사회경제사』 『조선봉건사회경제사』를 탐독하고 친구들과 토론했다. 백남운은 194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한 연석회의에 참가한 길에 북에 눌러앉았다. 유민은 54년 스위스 제네바 평화회담에 갔다가 북한 대표단 차석 백남운(당시 교육상)과 다시 마주친다. 이때 백남운은 “북에 가서 민족을 위해 보람된 일을 하자”며 월북을 권유했고, 유민은 “나는 남에서 할 일이 있다”며 거절한다. 월북 후 처형당한 이강국(1906~55)은 경성제대 선배, 북한 사학계의 거두 김석형(1915~96)은 동기생이다. 조봉암(1898~1959)의 불행한 죽음을 평생 가슴 아파했던 유민은 74년 5월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난에 ‘진보당 사건’편 연재를 시작했지만 유신 치하 서슬 퍼런 정권에 의해 딱 첫 회분만 실리고 연재가 중단되는 필화사건을 겪고 만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