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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 주연 ‘빠담빠담’으로 3년 만에 돌아오는 노희경 작가의 심장 박동 소리

중앙일보 2011.11.06 12:00
여성중앙‘그들이 사는 세상’ 이후 곧바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드라마를 썼다.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아 과감히 삭제 버튼을 눌렀다. 속이 다 후련했다. 아깝다는 마음은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자 작정했다. 스타 작가 노희경의 신작 ‘빠담빠담’은 그렇게 태어났다.



몇 달 전부터 노희경 작가의 신작 ‘빠담빠담-그와 그녀의 심장 박동 소리’(이하 ‘빠담빠담’)가 방영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2008년, 현빈과 송혜교 주연의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이후 오랜만에 작품을 선보이는 터라 벌써부터 대중의 기대가 쏠리고 있었다. 드라마도 궁금하고, 그간 모습을 볼 수 없었던 노희경 작가의 요즘 사는 이야기도 궁금해 거듭 연락을 취했다.



집에서 글만 쓰다가 오랜만에 사람들로 붐비는 명동 거리에 나오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고 말하는 노희경 작가. ‘빠담빠담’ 방영 후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안한 일상을 보낼 예정이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1996), ‘거짓말’(1998), ‘꽃보다 아름다워’(2004), ‘굿바이 솔로’(2006), ‘그들이 사는 세상’(2008) 등 사람 냄새 가득한 작품으로 휴머니즘의 선봉에 선 그녀였기에 새로 내놓을 작품의 장르가 ‘판타지 멜로’라는 말에 갸우뚱, 호기심이 동했다.



노희경 작가는 말이 빨랐다. 너무 빨라서 녹음을 해놓은 파일을 돌리고 또 돌려야 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거침이 없었다. 작고 왜소한 이미지와는 달리 말에 힘이 있었고 간간이 비속어가 튀어나왔으며 위트 있는 멘트로 기자를 웃겼다.



오는 12월 방영 전 탈고를 목표로 90%까지 집필을 완료했다며 다소 지쳤지만 후련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는 그녀에게 ‘빠담빠담’에 관해 속속들이 물었다. 지난 몇 년간 자식처럼 키워온 조카들을 독립시켰다는 얘기 속에서 40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여자 노희경의 모습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강렬한 이야기가 끌렸다”



오는 12월에 새로 시작하는 jTBC의 개국 특집 드라마인 ‘빠담빠담’은 거친 인생을 살아온 양강칠(정우성 분)과 지극히 현실적이고 발랄한 수의사 정지나(한지민 분)의 기적 같은 사랑 이야기를 그릴 예정이다. ‘아이리스’ 김규태 PD의 세련된 연출이 기대되는 작품이다.



한 3년간 작품 활동이 없었다. 그간 뭘 하면서 지냈나? 작년 즈음엔 여자들과 관련된 드라마를 쓰고 있다는 소식을 듣긴 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을 마친 다음 바로 다른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가족 이야기가 쓰고 싶어서 할머니, 엄마, 딸들이 주축이 된 여자들의 삶을 소재로 글을 썼는데 영 마음에 안 들더라. 8부까지 쓰다가 이게 아니다 싶기도 하고 쓰는 나도 재미가 없어서 그냥 접었다.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던가

갈등 구조가 약하더라. 글이 너무 안 써지니까 어느 순간, ‘내가 그동안 드라마를 너무 만만히 보았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드라마를 이렇게밖에 못 쓰나?’라는 자괴감에도 빠졌다. 웬만하면 조금 고쳐서 살려보려고 했는데 아무리 봐도 다시 쓰고 싶을 것 같지 않더라. 그래서 아예 중단했다. 사실 좋은 작품이면 두고두고 기억이 난다. 난 아직도 ‘거짓말’은 대사만 들어도 장면이 하나하나 다 기억이 날 정도다. 그런데 그 작품을 그만두고 나서 내용이 전혀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니, 내가 쓸모없는 작업을 하느라 1년 반을 보낸 것 같다. 이래저래 고생만 했다. 그래도 얻은 게 있다면, 그간 내가 드라마를 너무 만만히 보지 않았나, 혹여 시청자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자만한 건 아니었나, 인생을 너무 만만히 본 건 아닐까, 내 안에 치열함이 없어진 건 아닌가,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나한테 정말 좋은 약이 되었다.



그렇다면 ‘빠담빠담’을 쓰게 된 게, 그 반성의 시간과도 연관이 있겠다

전에 쓰던 작품을 완전히 그만두면서 철저하게 반성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내 속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기 시작했다. 보다 강렬한 이야기가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가장 잘 그릴 수 있는 인물들을 하나둘씩 떠올리게 되었다. 밤을 새고도 그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캐릭터를 연구했다. 그 인물의 가치관에 동조를 해야만 나도 신이 나서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찾다 보니 삶에 굴곡이 많은 양강칠이라는 캐릭터가 나오게 되고, 또 그와 사랑을 하게 되는 정지나가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정우성이 맡은 강칠은 어린 시절 살인죄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한 밑바닥 인생이다. 이런 인물 설정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나

강칠이는 무고하게 16년 형을 받고 감옥살이를 했고, 첫사랑과도 헤어졌고, 끊임없이 자기를 죽이려 하거나 감방으로 돌려보내려 하는 적들에게 시달린다. 자기 형도 자신을 대신해서 죽었고, 심지어 암까지 걸리게 된다. 강칠이는 정말로 극단적인 아픔 속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보는 눈이 정말 신선하다. 그래서 강칠이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강칠이 덕분에, 세상에 선보이지도 못한 채 죽은 내 전작에서부터 빨리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내가 만든 이 처절한 한 인간에 대해 탐구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탐구를 해보니 재밌어서 글을 계속 쓰게 되더라.



신선한 시선이란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강칠이는 감방에서 16년을 살았다. 아마도 자기가 감방에서 몇 년을 살아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했다면 시간이 주는 답답함에 짓눌려서 제대로 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있다. 오늘 하루를 그저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이다. 최대한 재미있게. 그게 강칠이의 철칙이 되었다. ‘지금 이 순간’이 사실 이 드라마의 테마이기도 하다. 이건 강칠이가 감방에서 얻은 지혜다. 뭘 하더라도 치열하게 사는 것이다. 일을 해도 죽기 살기로 하고 항상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자가 앞에 있으면 내일까지 이 여자의 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오늘에 최선을 다해야 하니까 좋으면 빨리 그녀에게 고백하고 그 마음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자기한테 처한 현실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자책할 시간이 없다.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양아치인 내가 작가가 될 거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노희경 작가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 했다. 또한 강한 믿음이 있으면 정말 기적이 일어날 거라고도 했다. 어릴 때부터 담배나 피우고 나쁜 짓이나 하던 자신이 드라마 작가가 된 것 또한 어찌 보면 기적이었다. 삶의 순간들은 다 판타지가 될 수 있음을 그는 ‘빠담빠담’을 통해 보여주려 한다.



판타지 멜로란 무엇인가? 자신을 천사라고 믿는다는 이국수의 설정과도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

이국수(김범 분)는 자동차 뺑소니 사고로 입원한 엄마의 병원비를 마련하려고 도끼로 은행의 현금 인출기를 부쉈다가 은행 강도 및 살인 미수로 4년 형을 받아서 감방에 들어온 아이다. 은행에서 사고를 쳤더니 은행 강도가 됐고, 경찰이 온 걸 보고 놀라서 쳐다봤는데 손에 도끼를 든 채로 있었으니 졸지에 살인 미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국수가 사람에게 도끼를 든 순간, “국수야 왜 그래, 하지 마”라는 환청이 들린다. 엄마가 죽기 전에 “넌 천사 같은 애다. 넌 왜 그걸 모르니?”라고 말했는데 국수는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천사가 되어간다. 이게 바로 판타지다. 국수는 착하게 살면 자기가 정말 천사가 될 줄로 믿고 착한 행동만 골라서 한다. 아주 골치 아픈 캐릭터다. 상당히 코믹하기도 하고. 그래도 판타지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 말이 안 되게 그려져서는 안 되니까.



사람인 국수가 천사라는 설정, 아무래도 공감하기엔 좀 힘들 것 같은데

국수는 자기가 양아치인 줄 알았는데 엄마가 자기를 천사로 믿는 순간 기적을 일으킬 만한 능력을 갖게 된다. 나만 해도 그렇다. 솔직히 나도 어릴 때 완전히 양아치였다. 가출 같은 건 일상이었다. 엄마 말을 죽어라 안 들었고, 도둑질에 온갖 나쁜 짓은 다 했다. 그랬던 내가 처음에 글을 쓴다고 했을 때 정말 아무도 안 믿었다.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하니까 다들 “지랄하네”라고 하더라(웃음). 주변 사람들이나 가족들도. 근데 유일하게 우리 엄마는, “네가 하고 싶으면 되지 않겠니?”라고 했다. 우리 엄마가 날 믿어준 게 중요했다. 그 한마디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한 것이다. 요즘도 일 안 하고 싶을 때, 함부로 행동하고 싶을 때, 비록 암으로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생전에 우리 엄마가 나를 그렇게 사랑해 주고 믿어줬는데 너는 무슨 짓을 하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것 때문에 자다가도 일을 하게 되더라.



대사 중에 “너는 왜 천사라면서 하늘에 안 살고 여기 살아?”라고 강칠이가 물으면, 국수가 “천사가 하늘에만 사는 게 어디 있냐? 사람들도 부산, 서울에 살듯이 천사도 땅 밑에 살거나 땅 위에 살 수도 있는 거야”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나도 정말 천사가 있다고 믿는다. 내가 이렇게 쓴 걸 시청자들이 안 믿으면 자기 손해지 뭐(웃음).



프랑스어로 ‘두근두근’을 뜻하는 ‘빠담빠담’으로 제목을 정한 이유는

이 작품에서 말하고 싶은 게, ‘지금 이 순간’이다. 그래서 ‘온리 나우’(only now)로 하려고도 했다. 강칠이가 지나를 본 순간, 처음으로 자신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걸 느끼게 된다. 사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의 심장은 다 힘차게 뛰지 않나? 그러니까 ‘두근두근’은 우리가 숨을 쉬는 모든 순간, 삶 자체를 뜻하는 것이다.



전과자와 수의사, 강칠과 지나의 러브 스토리에 초점을 맞춘다고 들었다. 어떤 사랑을 그리고 싶은 것인가

우리는 사랑이 고마운 줄 알아야 한다. 요즘 부쩍, 사랑처럼 귀한 감정을 왜 장난으로 여기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연애를 하다 보면 다 상처가 있기 마련인데 그 아픔을 돌아보지 않고 그냥 넘기려 한다. 사랑은 ‘쿨’하기보단 굉장히 ‘핫’한 것이다. 난 이렇게 뜨겁고 열정적인 사랑을 그려내고 싶었다. 사실 강칠이와 지나가 사랑을 하기엔 현실적으로 신분의 벽이 있다. 한 명은 전과자이고, 여자는 동물병원 원장이니까. 그런데 이게 강칠이에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가 그런다. “강칠이 네가 정지나를 좋아하는 건 뻔뻔하지 않냐?”라고. 그러면 강칠이가 “그럼 내가 꼭 뭘 가져야 사랑할 수 있니? 주렁주렁 가져야만 사랑을 하니?”라고 되묻는다. 나는 이 말에 공감한다. 이 작품을 보면서 사랑의 본질에 대해 계속 질문하게 되더라. 시청자들도 이런 고민을 같이했으면 좋겠다.



작품은 어느 정도 완성이 된 건가

거의 90% 정도는 끝냈다. 드라마를 방영하기 전에 대본을 다 완성해서 넘긴 게 ‘거짓말’ 이후로 두 번째다. 이번에 작품을 쓰면서 내 모토가 ‘초심으로 돌아가자’였다. 나는 드라마를 처음 쓸 때 세상에서 글쓰기가 제일 재밌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오만했다. 누군가 글쓰기가 두렵다고 하면, “너는 애인 만나는 게 두렵고 지겨울 수도 있니? 그럼 넌 헤어져야겠다!”라는 말을 했을 정도였다. 그만큼 정말 즐겁게 ‘거짓말’을 썼는데 ‘빠담빠담’이 꼭 그렇다. 배우도 감독도 정해지지 않은 1년 전부터 혼자서 대본을 쓰면서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았고.







“정우성씨한테 그동안 폼 잡느라 고생했다고 한마디 했다”



불우한 밑바닥 인생을 살아온 강칠은 정우성이, 당차고 이기적인 여자 지나는 한지민이 맡았다. 기존의 이미지와는 다른 나름의 ‘파격’ 캐스팅이라 할 수 있다. ‘버터’ 냄새 나는 정우성이 보여준 의외의 열정, 한지민의 똑똑하고 야무진 연기력에 감동한 노희경 작가는 인터뷰 내내 배우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우성은 최근에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일도 있고 해서 그의 복귀에 관심이 많이 쏠리는 게 사실이다. 캐스팅에 얽힌 비화는 없나

개인적으로는 전혀 모르던 배우였다. 강칠이 역할에 어울릴 것 같아서 대본을 보냈는데, 1주일 만에 하겠다는 대답이 왔다. 이건 아주 드문 경우다. 솔직히 처음에는 걱정이 되더라. 정우성 하면 늘 로맨틱하고 신사다운 역할만 떠오르니까. 솔직히 상당히 ‘빠다(버터)’ 냄새가 나는 사람 아니었나(웃음)? 혼자 멋을 부리려고 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첫 만남에서 모든 선입견을 다 털어냈다. 작품을 보내놓고 열흘 만에 만났는데 이미 캐릭터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농담 삼아 “정우성씨, 그동안 폼 잡느라 고생했다”라고 했더니 깔깔대고 웃더라. 그동안 사람들이 자기한테 이런 역할은 제안한 적도 없었다면서 무척 해보고 싶은 역이라고 하더라. 정우성의 연기에 아마도 깜짝 놀랄 것이다.



한지민과는 잘 알던 사이라 추천을 한 것인가? 한지민의 평소 이미지와는 달리 당돌하고 이기적인 역할이라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지민이는 원래 독종이다. 그동안 작품을 같이한 적은 없지만 개인적으로 알아온 시간은 꽤 된다. 지민이와는 구호 단체인 정토회(JTS)에서 6~7년이 넘게 봉사 활동을 함께 다녔던 사이다. 같이 해외에 가서 봉사를 한 적도 있었는데, 해발 2000m 가까이 올랐을 때 그 산속에서 보여준 한지민의 야생성이 정말 대단했다(웃음).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인간적인 믿음이 있었고 그래서 지민이를 추천했다. 지민이가 독해서 뭐든지 열심히 할 거라는 믿음은 있었지만 솔직히 연기력에 대해서 반신반의했는데, 잘 하고 있어서 대견하다. 이번 작품에서 한지민의 변신을 기대해 봐도 좋을 것이다. 초반에는 통화도 자주 하면서 캐릭터를 잡았는데 아주 똑똑한 배우라, 요즘은 알아서 하라고 맡긴다.



이번에도 역시 노 작가가 엄마처럼 따르는 배우 나문희를 캐스팅했더라. 극 중 김미자는 겉으로는 쌀쌀맞고 투박한 아줌마지만 속정 깊은 어머니다. 이번에도 많은 대화를 나눴을 것 같은데

우리는 서로 연락 안 한다(웃음). 친한 사람일수록 안 만난다. 서로 바쁘니 안 만나는 게 배려다. 1년에 몇 번 정도 만나는데 그것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보는 정도다. 선생님께도 전화로 연락을 드려서 캐스팅을 했고, 첫 연습 때야 만났다. 말을 많이 안 해도 서로 잘 안다.



나문희는 역시 잘하던가

아니다. 못하셨다. 이제야 밝히지만 선생님은 지난 17년 동안 첫 연습 땐 늘 못하셨다(웃음). 선생님은 첫 대본 연습 때는 늘 연구하러 오신다. 그 자세가 좋다. 연기를 그렇게 오래 해왔지만 늘 학생 같은 태도로 임한다. 이번에도 “나 연습 더 하면 이것보다 잘하는 거 알지?”라고 하기에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다른 배우들한테도 절대 미리 설정을 해오지 말라고 당부한다. 연기라는 건 이렇게 주변 배우들과의 호흡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이게 다 나문희 선생님에게 배운 것이다.



첫 연습 때 분위기는 좋았나

정우성, 한지민, 김범에게 절대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오지 말라고 했는데 다들 내 말 뜻을 이해하고 잘 따라주더라. 그래서 첫 연습을 할 때 큰 소리 한 번 안 냈다. 사실 정우성씨한테는 무척 고맙더라. 나이도 있고 연기 경력도 20년이 넘은 친구인데 신인처럼 하라고 하는데도 그 말을 다 듣더라. 농담이 아니라, 난 그런 남자 배우는 처음 봤다. 거만할까 봐 사실 그 앞에선 칭찬도 안 했지만, 자세며 진정성이며 정말 대단하더라. 이런 배우를 만난 것이 참 감사하다.



‘지금 이 순간’이 사실 이 드라마의 테마이기도 하다. 이건 강칠이가 감방에서 얻은 지혜다. 뭘 하더라도 치열하게 사는 것이다. 일을 해도 죽기 살기로 하고 항상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개국 특집 방송이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은 없나

글쎄, 부담은 별로 없다. 개국하면서 설마 시청률 40%를 바라겠나(웃음)? 그런 점에선 오히려 더 편한 것 같다. 다만 시청자가 재미있게 봐줬으면 하는 부담은 있지만.



작품을 할 때마다 링거를 맞는다고 들었다. 이번에도 링거 신세를 졌나

이번에는 다행히 링거를 안 맞았다. ‘그들이 사는 세상’ 때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1년 2개월여 동안 작품을 써왔는데 그동안 체력 관리를 잘해 왔다. 산에도 다니고 운동도 자주 하면서 컨디션 조절을 했다.



“조카들은 독립, 고통스럽지만 매일 108배를 한다”/



아직 미혼인 노희경은 몇 해 전부터 여동생, 넷째 언니네 가족, 오빠가 이혼 후 맡긴 두 조카까지 총 8명의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다. 스무 살이 되면 모두 독립을 시킨다는 철칙 하에 데리고 있던 네 명의 조카들은 지난 2~3년 사이에 정말로 집을 떠났고, 현재는 어른 넷만 살고 있다. 혼자 살던 그녀가 대가족을 이루며 산 지 벌써 10년, 그 사이 그녀의 작품도 가족들의 영향으로 참 많이 변했다고 한다.



조카들은 혼자서도 잘 살고 있나

남자 조카들은 3년 전에 독립을 했고, 여자 조카들도 스무 살이 되면서 다 내보냈다. 이건 우리 집안의 교육 철칙이다. 지금 한 녀석이 춤추다가 다리를 다쳐서 잠시 집에 들어와 있다(웃음).



아이들을 다 내보내고 허전하진 않나

보고 싶은 티를 덜 내려고 한다. 솔직히 정말로 같이 살고 싶다. 그런데 지금 독립을 안 하면 계속 어른들에게 의존할까 봐 그냥 내보냈다. 그래도 전세방은 얻어줬다. 월세 아닌 게 어딘가. 이제부터 사는 건 자기들 책임이다.



잘 살고 있는 것 같나

아니다. 개판으로 산다(웃음). 근데 그게 다 과정이다.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다. 언니네 딸들을 내보내는 데 한 2년을 설득했다. 우리 어머니가 다른 형제들한테는 안 그랬는데 나만 유독 스물다섯 살에 독립을 시켰다. 집을 나올 땐 두려웠는데 막상 혼자 살아보니 좋더라. 일단 내 마음대로 야식 먹고 담배 피우고 늦게 자도 아무도 뭐라고 말할 사람이 없으니까 편하더라. 우리 아이들도 맨 처음엔 나가기 싫어했다. 근데 나가서 한 달 동안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개판으로 살다 보니 편한 걸 느꼈는지 이제는 안 들어오려고 하더라. 사실 다 큰 애들이랑 계속 같이 살면 어른들이 할 이야기는 ‘지적’밖에 없다.



아이들 키운 것, 작품에 도움이 됐나/

엄청나게 도움이 됐다. 사실 ‘빠담빠담’에 제일 많이 영향을 끼친 것 같다. 극 중 강칠이에게 열아홉 살 때 사고를 쳐서 낳은 열일곱 살 난 아들이 갑자기 나타난다. 강칠이가 그 아들을 이해하고, 친해지는 과정이 내가 우리 조카들을 키우면서 겪었던 감정이랑 비슷하다. 처음에 우리는 서로를 재수 없어 했다. 난 도대체 이 녀석들이 이해가 안 되고, 애들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참 대단한 게, 내가 이 아이들 때문에 처음으로 화를 참게 되더라.



아이들이 말썽을 많이 피웠나 보다

아유, 속 안 썩이고 자란 애들은 없다. 우리 집은 네 명이 돌아가면서 속을 썩여서, 학교에 가서 다른 학부형한테 무릎도 꿇어봤다. 우리 애들이 친구들을 패가지고. 학교 가서 내가 노희경인지 아닌지 알아보든 말든, 일단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다. 그래도 이제는 커서 “고모 사랑하고 감사해요”라는 말도 하더라. 애들 때문에 나도 많이 컸다.



애들에게 늘 믿는다는 말을 해주나

그놈들이 못 믿을 짓 하면 못 믿겠다고 이야기한다(웃음). 어떻게 맨날 칭찬만 해주겠나. 나는 애들한테 무서운 고모, 이모다. 그래도 내가 싫으냐고 하면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



아이들을 다 내보내고 집 안이 한적하겠다. 작품을 쓰면서도 108배는 매일 하나

가끔 놀러 오니까 괜찮다. 108배는 1년 중에 하루 이틀은 빼놓고 꼭 한다. 솔직히 할 때마다 너무 힘들고 하기 싫다. 하지만 하고 나면 좋다. 108배를 하는 게 너무 힘드니까 웬만하게 힘든 일은 다 참고 넘어가지더라. 그리고 명상도 매일 하는데, 스스로 무념무상이 안 되는 것을 아는 게 중요하다. 명상을 하다 보면 ‘내가 잡생각이 참 많구나’라는 걸 알게 된다.



이번 드라마를 통해서 전하고 싶은 가치관이 있나

강칠이가 가진 가치관이 이 작품을 쓰는 내내 나한테 위안이 됐다.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삶 자체가 기적이라는 것을 모르고 지나치지 않나? 사는 게 참 고단하지만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참 감사한 일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현재 노 작가가 가장 감사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 조카들. 사실 처음에 걔들이 나한테 왔을 땐 ‘이게 무슨 형벌인가’ 생각했다. 처녀인 내가 육아라는 짐을 진 거니까. 예전에는 살면서 뭐가 제일 힘드냐고 물으면, 애들 키우는 거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내게 준 건 엄청나다. 내 인생과도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녀석들이다. 그리고 이번에 좋은 동료들을 만난 것, 또 17년 전 처음 드라마를 쓸 때의 초심을 기억해 내고 지키려 한 것, 그 치열함을 회복하려고 노력했던 모든 게 다 감사하다. 이 정도면 정말 행복한 인생인 것 같다. 시청률이 잘 나와주면 더할 나위 없고.



취재_김민주 기자 사진_문덕관(studio lamp), 엠아이 제공(드라마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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