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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이 사람] 택시기사 최문호씨

중앙일보 2011.11.04 03:20 1면
“저로 인해 다른 사람이 행복한 모습을 보면 큰 보람을 느끼죠. 앞으로도 계속 행복을 전하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목적지까지 달리는 동안 희망과 행복 받아가세요”

 지난 1일 현충사에서 만난 최문호(63) 택시기사는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 만으로도 따뜻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씨는 아산에서 개인택시를 43년째 몰고 있다. 그는 1평(3.3㎡)이 채 안되는 비좁은 택시 안에서 하루 평균 15시간 가량을 보낸다. 평일엔 개인 영업시간을 갖고 휴무 날에는 온양 4동 주민센터로 향한다. ‘바르게 살기운동’ 회장이기도 한 그는 월 6회 이상 관내 무의탁 독거노인, 장애인 등 어려운 이웃에게 무료 운행 봉사를 하기도 한다.  



“봉사라는 게 별 거 있나요? 욕심을 버리고 저보다 조금 더 어려운 이웃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것뿐입니다.”



봉사왕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최문호씨는 더 없이 행복하다며 밝게 웃었다. [조영회 기자]


그의 택시에는 특별함이 있다



최씨의 택시 뒤에는 항상 태극기가 달려있다. 차 트렁크 안에는 50여 장의 태극기가 들어있다. 운행 중 태극기가 지저분해지면 곧바로 새 태극기로 교체한다. 그는 “태극기 사랑이 곧 나라사랑이라고 생각해 달고 다닌다”며 “태극기는 나라의 얼굴인데 깨끗한 태극기를 달고 다니는 게 기본”이라고 말한다.



 3년 전부터 최씨는 택시를 타는 승객들에게 버츄카드를 한 장씩 선물하고 있다. 52장으로 구성된 이 카드는 감사, 배려, 봉사, 이해, 존중 등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는 문구가 적혀있는 ‘희망’카드다. 지난해 사업에 실패한 승객이 버츄카드를 뽑은 후 힘을 얻어 재기했다는 일화도 있다.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은 한 승객이 택시에 앉아 ‘어떻게 살아야 하죠’라며 낙담하고 있더군요. 버츄카드를 한 장 뽑으라고 건네주니 우연치 않게 ‘용기’라는 단어가 나왔어요. 카드를 읽고 저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 자신감을 얻은 표정으로 택시에서 내렸죠. 얼마 뒤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가게를 새로 차려 재기에 성공했다는 군요.”



 40년 넘게 택시운전을 하다보니 특별한(?) 추억들도 있다. 지난 1981년 이웃에 사는 임산부를 태우고 천안의 한 병원으로 가던 중 택시 안에서 아기를 받은 경험도 그 중 하나다.



 “영업을 마치고 집에서 쉬는데 옆집에 살던 산모가 진통이 온다고 도움을 청하더군요.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향했지요. 근데 예전에는 넓은 도로가 없다 보니 시간이 꽤 걸렸어요. 그러던 중 양수가 터지고 아기가 나왔죠. 그 아이는 커서 지난해 장가를 갔고 아직까지 서로 친하게 연락을 주고받고 있답니다.”



 남을 위하는 그의 마음은 ‘항상 남을 배려하며 기본에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자’ 라는 좌우명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주변사람들을 보면 자기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르시는 분이 많아요. 두 발로 걸을 수 있고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행복한 건데 말이죠. 또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자기 그릇만큼만 담으면 되는데 요즘은 다들 너무 욕심 많은 세상이 된 것 같아 아쉽죠.”



52가지의 덕담이 들어있는 버츄카드
‘가족사랑’으로 다시 일어서다



최씨는 학창시절 하얀 장갑을 끼고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들을 보고 택시 운전사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차가 별로 없는 시절이었어요. 그래서인지 흰 장갑을 끼고 운전을 하는 기사들이 멋져 보였죠.”



 그는 20살이 되던 해에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그 다음해 택시기사 일에 뛰어 들었다. 13년간 운수회사 택시(영업용)로 돈을 모은 뒤 개인택시도 장만했다. 최씨가 처음 개인택시를 받았을 당시 아산에는 개인택시가 13대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돈도 꽤 모았다.



하지만 1994년 택시를 하며 알고 지내던 선배에게 빚 보증을 서다 2억원이 넘는 돈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렸다. 낙심한 최 씨는 그 날 이후로 술과 담배로 세월을 보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몇 달 뒤에는 갑상선암까지 선고 받았다.



 “암 선고를 받고 재기할 생각조차 안하고 있었죠. ‘이러다 죽겠구나’라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었으니까요.”



 그런 그에게 희망을 얻게 해 준 것은 다름 아닌 ‘가족’이었다. 어느 날 그의 부인 김영득씨가 힘들어하는 최씨에게 다가가 “남을 도와주다가 이렇게 됐으니 아무것도 없었지만 패기 넘쳤던 젊은 시절을 생각하며 다시 일어서자. 우린 또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 큰 힘이 됐다고 한다. 더군다나 최씨의 세 아들도 각자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들의 대학등록금을 손수 버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바로잡는 계기가 됐다. 자신에게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든든한 세 아들이 있고, 다시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되니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부터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에도 변화가 생겨 봉사활동에도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암 수술을 마치고 남을 도와주며 살다 보니 오히려 내가 ‘행복’이라는 선물을 받은 것 같아요. 전 암 후유증 때문에 죽는 날까지 약을 먹어야 합니다. 하지만 더없이 행복합니다.”



 이웃들에게 ‘봉사왕’으로도 불리는 최씨. 그는 “먼 훗날 불우 어린이와 노인들을 함께 돌보는 시설을 운영하고 싶은 소박한 소망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글=조영민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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