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3억 당뇨환자의 희망 박성회 교수 "아내부터"

중앙일보 2011.11.04 00:36 종합 8면 지면보기
돼지 췌도 세포를 인간과 가장 가까운 원숭이에게 이식한 박성회 교수가 서울대 의대 병리학교실에서 당뇨병 치료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박성회 교수를 잘 지켜봐 달라. 큰일을 할 것이다.” 1994년 2월 서울대 의대 병리과 이상국 교수가 정년퇴임하면서 서울대병원 사보(社報)팀에 한 말이다. 당시 40대 중반이던 박 교수의 잠재능력을 평가한 것일 게다. 이 교수의 예측이 17년 만에 현실로 나타났다. 서울대 의대 박성회(64·병리학과) 교수가 ‘큰일’을 냈다. 돼지 췌도(膵島·랑게르한스섬)를 이용해 당뇨병 정복의 길을 연 것이다. 당뇨병에 걸린 원숭이에게 돼지 췌도를 이식해 7개월 이상 정상 혈당을 유지하고 있다. 350만 명의 당뇨병 환자(세계 3억 명)에게는 복음(福音)과 다름없다. 세계이종이식학회 에마누엘레 코지 회장은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유럽연합(EU)·미국과 함께 세계 이종이식 분야를 이끌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J 스페셜 - 금요헬스실버] “당뇨 앓는 아내부터 돼지 췌도 이식”

당뇨병 정복 다가선 박성회 교수
돼지 췌도 이식, 남은 건 임상시험

혹시 연구 논문의 데이터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몇 년 전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이 떠올라 2일 경주의 한 호텔에서 박 교수를 만나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논문이 과장된 면은 없는가.



 “‘연구 데이터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살리려 애쓰지 말고 찢어버리라’고 늘 후배와 제자들에게 얘기해 왔다. 연구 데이터에 애정이 가겠지만 오류가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폐기하는 것이 학자의 본분이다.”



 -전문가 검증을 받았나.



 “4일 서울대 의대에서 전문가 토론회가 열린다. 이 자리에서 국내외 면역학·내분비학 전문가와 언론들이 나의 연구 결과를 토의하고 검증한다. 신랄한 비판과 지적을 기대한다.”



 박 교수는 거짓말을 매우 싫어한다고 한다. 그래서 몇 년 전에는 거짓말한 후배를 병리학교실에서 내보낸 적이 있다. 대신 한 번 인연을 맺으면 끝까지 책임진다.



돼지 췌도를 이식받은 당뇨병 원숭이가 자신을 돌봐주는 이재일 연구조교수와 포즈를 취한 모습이다. [김성룡 기자]
박 교수가 당뇨병 완치 연구에 도전한 것은 7~8년 전쯤 전이다. 자신을 키운 할머니(어머니는 초등학생 때 작고)와 아버지가 당뇨병으로 숨진 게 계기가 됐다. 그의 부인도 당뇨병을 앓고 있고 본인도 당뇨병 전 단계에 와 있다. 집안 내력이 오늘의 결과를 낸 거나 마찬가지다.



 박 교수는 내년 말까지 동물(원숭이) 실험을 끝내고 2013년에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시작해 2015년까지 최종 결과물을 내놓을 계획이다. 그는 “아내부터 먼저 돼지 췌도 이식을 받도록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돼지 장기(臟器)인데…’라는 의문이 들었다.



 -돼지 췌도가 사람 몸에서 기능을 할 수 있을까.



 “원숭이는 사람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다. 돼지 췌도를 이식받은 당뇨병 환자도 같은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믿는다.”



 -돼지 췌도를 이식하면 더 이상 혈당약이나 인슐린을 복용하지 않아도 되나.



 “아무리 나빠도 이식 후 1∼2년은 효과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 연구해 봐야 알겠지만 평생 효과가 계속될 수도 있다.”



 -돼지 세균이 사람에게 감염될 수 있다고 걱정하는데.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 췌도를 추출한 돼지는 미국 시카고대학 김윤범 명예교수가 기증한 무균 돼지의 후손들이다. 이 돼지들은 병원균에 감염되지 않도록 40여 년간 개량한 것이다. 미생물 검사에서 병원균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식에 사용한 돼지는 어떻게 되나.



 “한 마리당 가격이 700만원가량인데 췌장을 내주면 생존하지 못한다. 외국에선 이식에 사용한 돼지를 고기로 먹기도 한다. 무공해 청정돼지여서 먹어도 문제가 없다.”



 박 교수는 고교 시절 귀에서 소리가 나는 이명(耳鳴)을 앓았고 의대생 때는 바제도병(갑상샘 기능 항진증) 진단을 받았다. 지금도 갑상샘 호르몬 약을 복용한다. 그래서 면역학을 독학했다. 이식 거부반응 등을 연구하는 면역유전학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박 교수는 평소 공상과 몽상을 즐긴다. 이런 습관이 반짝이는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학문이든 뭐든 한번 빠지면 올인(All-In)한다. 서울대병원 노재요 병리과 기사장은 “교수님은 한동안 조용히 지내는 듯하다가도 큰 것 한 방을 터뜨린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98년 악성 림프종의 일종인 호지킨병의 원인을 160년 만에 밝힌 바 있다. 그는 연구를 중시해서인지 학교 보직을 맡은 적이 없다.



 서울대 의대 민혜숙(병리학) 교수는 10여 년간 옆에서 지켜본 박 교수를 스티브 잡스와 닮은 면이 많은 학자라고 평가한다. 안목이 넓으면서 포기할 줄 모르고 추진력이 강하며 선택과 집중을 실천한 점이 그렇다는 것이다. 민 교수는 “박 교수님은 연구원들의 지난 밤 연구 결과가 궁금하면 새벽에도 전화를 걸 정도로 ‘연구가 인생의 모든 것’인 양 보인다”고 말했다.



박 교수가 주재하는 오전 7시 미팅은 ‘악명’이 높다. 1분만 지각해도 문을 잠근다고 한다.



글=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박성회 교수=서울대 의대를 나온 병리학자로 갑상샘암 전문가다. 2000년대 중반 사람의 면역체계를 갖고 있는 ‘인간화 생쥐’에 대한 연구로 명성을 얻었다. 1980년대 미국 하버드대 의대에서 면역학을 연구한 뒤 이종(異種) 이식과 인연을 맺었다. 면역학 연구로 2001년 대한민국 학술원상을 받았다.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박성회
(朴聖會)
[現]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병리학교실 교수
1947년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