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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티베트 승려 분신

중앙일보 2011.11.04 00:20 종합 37면 지면보기
중국은 티베트인들을 장족(藏族), 티베트를 서장(西藏)이라고 부른다. 『당서(唐書)』에는 토번(吐蕃)으로 나오는데, 당 태종은 티베트 황제 송짼감포(松贊干布)에게 문성공주(文成公主·?~680)를 제2황후로 보내 평화를 구걸해야 했을 정도의 강국이었다. 당나라는 백제 유민 흑치상지(黑齒常之), 고구려 유민 고선지(高仙芝) 등 이민족 출신 유장(遺將)들을 보내 토번과 싸우게 했다.



 티베트는 청나라 때에야 중국에 예속되는데, 13세 달라이 라마가 대청 강경노선을 걷자 청나라는 1910년 사천군(四川軍)을 보내 침공했다. 13세 달라이 라마는 지금의 달라이 라마처럼 인도로 망명해 저항하다가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이 멸망하자 귀국해 중국인들을 축출하고 독립국가를 수립했다. 이후 중국과는 어떤 형식적인 외교관계도 거부했다.



 1949년 정권을 장악한 중국공산당은 중화(中華) 민족주의에 사회주의의 외피를 입은 정권이었다. 중국 정부는 1950년 1월 “서장(티베트) 인민은 중화인민공화국 민주 대가정의 일원이 되기를 요구한다”는 대변인 담화로 티베트에 대한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대한제국 시절 일제가 일진회의 이용구·송병준 등을 이용해 ‘2천만 민중의 대표’ 명의로 『합방청원서』를 올리게 한 것처럼 중국도 티베트의 판첸 라마를 이용해 모택동(毛澤東)에게 “서장 인민을 대표해 신속히 정의로운 군대를 파견해서 서장(西藏)을 해방시키고 반동분자를 숙청해……서장 인민을 해방시키기를 삼가 청한다.(『인민일보』 1950년 2월 7일)”고 요청하게 했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6·25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1950년 10월 중국군은 전격적으로 티베트를 점령했다. 1950년 10월 30일 중국은 인도에 “서장은 중국 영토의 불가분의 일부분이고, 서장 문제는 완전히 중국의 일개 내정문제”라고 주장하는 『서장 문제에 관한 비망록과 조회에 대한 답변서』를 보냈다. 우리 민족이 강점 10년 후인 1919년 3·1운동을 일으킨 것처럼 티베트인들도 강점 10년 후인 1959년 3월 독립운동을 전개했다가 무자비한 학살을 당했다.



 티베트 승려들이 올해 열 번째로 분신했다는 소식이다. 한국 정부는 민간 출판사 발행 고교 교과서의 티베트 관련 기술을 ‘(중국의)강제 점령’ 대신 ‘중국의 일부’라고 고치게 했다는 소식이 겹쳐진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헌법 전문을 언급하기도 구차할 정도로 역사의식이 전무한 개념 없는 정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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