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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미국에선 … 칼만 슬쩍 보여주고 시장 잠재운 버냉키

중앙일보 2011.11.04 00:15 경제 2면 지면보기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2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실업률이 너무 높고 경제가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보이지 못해 현 경제 상황에 만족하지 못한다”며 추가 부양책 가능성을 시사했다. [워싱턴 로이터=뉴시스]
벤 버냉키(Ben Bernanke)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시장 다루는 솜씨가 일취월장하고 있다. 2일(현지시간) Fed의 금리정책 결정기구인 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후 기자회견에 응한 그의 입에 시장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갑작스러운 그리스 국민투표란 돌발변수에 놀란 시장이 그에게서 묘책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버냉키는 이날 아무것도 똑 부러지게 밝히지 않았다. 그런데 시장은 그의 그런 태도에 안도했다. 칼을 빼지 않고도 기싸움에서 이긴 셈이다.


경제전망치 줄줄이 낮췄지만
“필요하면 모기지증권 매입”
경기부양 위한 3차 양적완화 시사

 버냉키는 이날 미국 경제전망치부터 줄줄이 수정했다. 성장률은 애초 예상보다 낮춰 잡고 실업률은 높게 고쳤다. 그는 “실업률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성장은 생각보다 더디다”며 “현 경제상황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정쟁에 발이 묶여 아무 대책도 못 내놓고 있는 정부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그동안 우리는 많은 조치를 취했다”며 시장이 기대한 묘책은 끝까지 내놓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언제든 행동할 준비가 돼있고 대비책도 있다”는 원론적 답변만 되풀이했을 뿐이다.



 그러면서 그는 Fed 병기고에 어떤 무기를 갖춰놓고 있는지만 슬쩍 내비쳤다. “경기회복 부진은 주택시장 침체에 기인하고 있는데 필요하다면 Fed가 시중에서 모기지(주택담보대출)증권 매입에 나설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이다. Fed는 2008년 금융위기가 불거지자 1차 양적 완화 정책을 통해 모기지증권 매입에 나선 적이 있다. 바꿔 말하면 언제든 3차 양적 완화 정책을 쓸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여기다 “초저금리 정책을 2013년 여름 이후까지 연장할 수도 있다”고 첨언했다. Fed는 9월 FOMC 후 경기부양책의 하나로 초저금리를 2년 동안 유지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를 더 연장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날 회의에서 ‘비둘기파’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찰스 에번스 시카고 연준은행 총재가 버냉키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사실도 시장엔 희소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에번스는 “Fed가 좀 더 적극적으로 경기부양에 나서야 한다”며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이날 FOMC 결정에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이는 Fed 내 비둘기파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신호인 셈이다.



 버냉키는 인플레이션을 우려해온 매파에 대한 단속도 분명하게 했다. “인플레이션이 큰 변동성을 보여왔지만 평균적으로 2%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일부 정치권에서 인플레 우려에 근거해 Fed를 비판한 건 옳지 않았다”고 반박한 것이다. 이 역시 앞으로 경기부양 조치를 취할 때를 대비해 Fed의 입지를 넓혀 놓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버냉키의 이 같은 여유에 시장은 일단 한숨을 돌렸다. 적어도 Fed가 시장의 뒤통수를 치지는 않을 거란 안도에서다. 시장의 시선은 이제 온통 유럽으로 향하고 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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