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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과 액자의 틀 사이… 창의 요구되는 나만의 공간”

중앙일보 2011.11.03 04:00 주말섹션 6면 지면보기
특이한 이력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서울대 기악과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뒤 1985년 프랑스 파리 에콜 노르말 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났던 재프랑스 아티스트 차재경(51·사진)씨. 2일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시작된 ‘램프와 액자전’을 위해 잠깐 귀국했다. 그의 전공은 이제 공예다.


파리로 피아노 유학 가서 액자공예가 된 차재경씨

 “타고난 음악인은 아니었나 봐요. 부모님이 시키시는 걸 성실하게 따랐을 뿐, 피아노 치는 게 즐겁진 않았죠. 그러다 프랑스에서 ‘액자 공예’를 접했는데 제 성향과 딱 맞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손으로 만드는 활동을 즐겼다고 했다. 뜨개질과 칠보공예·한지공예 등이 취미였다. 87년 유학생이었던 남편(전인수 아모레퍼시픽 유럽 본부장)을 만나 결혼했고, 93년 남편이 첫 직장을 파리 남부 도시 샤르트르에서 얻으면서 파리를 떠났다. 피아노와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부모님은 ‘아깝다’며 서운해하셨다”지만, 차씨는 별 미련이 없었다. 도리어 전공이었을 땐 피곤하게만 여겨졌던 음악 감상 시간이 가슴 떨리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액자 인생이 시작됐다.



 “아무것도 없는 벽을 보면 갇힌 느낌이 들어요. 액자가 걸려 있으면 액자 속 공간도 누릴 수 있으니 ‘내 공간’이 한결 넓어지는 셈이죠.”



 
파리 방브 벼룩시장에서 산 단추 네 개를 활용해 액자를 만들었다. 단추는 18세기 사용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보라색 판지 위에 천을 ‘X’자 모양으로 잘라 붙인 뒤 원형 금박을 둘렀다. 단추의 중후한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시도다.
그래서 그는 벽에 꼭 액자를 걸고 살았다. 액자 공예에 관심이 생긴 건 당연했다. 처음엔 샤르트르의 한 문화센터에서 취미로 배웠다. 그가 배운 액자 공예는 액자에 끼워 넣는 작품과 액자의 틀 사이를 꾸미는 작업이다. 작품 가장자리에 곧바로 액자 틀이 놓이는 것에 비해 한결 작품의 맛이 산다. ‘액자 공예가’의 창의성이 더해져 ‘제3의 작품’이 되기도 한다. 판지에 수채화 물감으로 도안을 그려 넣고 담채화 기법으로 색칠하는 ‘라비 기술’을 주로 활용한다. 그는 “‘라비 기술’은 18세기 프랑스 그래픽 아티스트 라비 마리에트가 개발한 기술로, 이 기술 덕에 프랑스에서 액자 제작자란 독립적인 직업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재미있었고, 잘한다는 칭찬도 많이 들었단다. 취미로 끝내긴 아쉬웠다. 97년 파리의 전문학교 베지네 응용예술 아틀리에에 들어가 3년 동안 본격적으로 액자 공예를 배웠고, 2000년엔 국가공인 자격증까지 땄다.



 그는 앤티크 가게나 벼룩시장을 뒤져 찾아낸 그림이나 카메오(조개껍데기·돌 등에 조각을 한 것)·단추 등을 활용해 액자를 만든다. “옛것에 새것을 더해 또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게 바로 역사 아닌가”란 생각에서다. 이번 전시회 주제도 ‘Present du passe(Present from past)’다. ‘옛것이 주는 선물’ ‘과거와 이어져 있는 현재’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옛것을 보존하고 아끼고 버리지 않는 프랑스 문화의 가치를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도 크다.



 생활 공간을 꾸미기 위해 시작한 그의 액자 작업은 이제 그 범위를 램프로까지 넓히고 있다. “집안 분위기를 좌우하는 중요한 소품”이기 때문이다. 램프 작업 역시 ‘옛것’과 연결돼 있다.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옛날 램프에 새로운 디자인의 갓을 만들어 입힌다. 8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회에선 그가 파리 16구의 집 작업실에서 만든 액자 22점, 램프 16점을 선보인다.



글=이지영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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