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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종의 미술 투자] 달콤한 그림보다 진실한 그림 선택해야 하는 이유

중앙일보 2011.11.03 04:00 주말섹션 6면 지면보기
서연종
하나은행 삼성역 지점장
1905년께의 칸딘스키 그림에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단초가 담겨 있다. 예를 들어 풍경화의 일부가 뭉그러지기 시작한다. 세계 최초의 추상화 탄생을 예감케 하는 부분이다. 미술사가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이것을 작가가 진실과 대면하는 위대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눈을 들어 멀리 보이는 북한산을 바라본다면 하나의 뭉뚱그려진 초록 덩어리로 보일 것이다. 칸딘스키는 그림이 그려지는 관행을 따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실을 향해서 나아갔다.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는 진실을 찾아 구상에서 추상으로 나아갔다. 풍경뿐 아니라 사람의 얼굴도 마찬가지다. 권순철의 ‘넋 시리즈’는 눈에 보이는 얼굴을 넘어 인간적인 진실은 어떻게 묘사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권순철은 인간 내면의 풍경, 넋에 천착한 작가다. 그가 그리는 얼굴은 거칠고 투박하다. 요즘 선망하는 대리석 피부의 얼굴과도 거리가 멀고 피부의 표면에 집착하는 그림과도 거리가 멀다. 권순철은 단순한 얼굴이 아니라 넋을 그린다. 넋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 역사를 살아온 한 공동체의 집단적인 감정이 넋이다. 그가 그린 얼굴은 역사적 격변 속에서 때로는 순응하고, 때로는 저항하며 영혼을 더럽히지 않고 자기를 지키며 살아온 한국 사람들의 얼굴이다. 굴곡이 많은 얼굴은 또한 굴곡이 많은 한국의 지형과도 닮아 있다. 예쁘지는 않지만 진실로 장엄하고 아름답다.



권순철의 ‘넋-십자가’
 작가란 언제나 용감한 자세로 진실과 대면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권순철의 그림이 화가 권순철에 대해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정보다. 1990년 화가 권순철은 예술의 도시 파리로 떠났다. 연좌제 등으로 70~80년대의 정치적인 현실 속에서 그는 꿈을 펼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아직까지 귀향신고를 하지 않고 있다. 이제는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예술적인 이유다.



 2001년 인사동 아트 사이드 갤러리의 ‘중국화가 단체전’에 출품된 웨민쥔·쩡판즈·저우춘야 등 중국 작가들의 그림은 당시 5000만원이 넘지 않았다. 고객들은 그 그림들이 무섭고 험하다고 외면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웨민쥔·쩡판즈 등의 작품은 수십억원을 호가한다. 20배 이상 올랐다는 말이다. 2001년 권순철의 그림 값은 100호짜리 전시 가격이 3000만원 정도였다가 2010년에는 6000만원 선에서 거래됐다.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권순철 작품의 가격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중국 작가와 비교해 보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는 10년 만에 벌어진 한국 작가와 중국 작가의 위상 문제이지 작가의 창작역량 문제가 아니다.



 중국 미술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중국 컬렉터들은 그림이 좀 무섭다거나 우울하다고 해서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컬렉터들의 이런 태도는 작가가 표현하는 감정의 세계가 깊어지고 넓어지고 점점 그림이 좋아지는 든든한 뒷받침이 된다. 자신의 독자적인 세계가 지지 받을 때 작가들은 점점 더 좋은 작품을 그릴 수 있다. 한국 미술시장은 당장 컬렉터들의 눈에 들기 위해 성형하듯, 화장하듯 예쁘게만 그려진 달콤한 그림들로 넘쳐난다. 한국 사회의 스트레스 지수가 높고 해소할 곳이 많지 않기 때문에 달콤한 그림들이 당장은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그런 그림들은 컬렉터들의 자산가치를 증대시켜주지 못하며, 컬렉터들의 사랑도 오래가지 못한다. 유행을 초월해 자신만의 세계를 보여주는 작가가 더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권순철의 작품 가격이 아직 높지 않은 것이 컬렉터들에게는 기회이자 축복이다. 미술시장은 더욱 성숙할 것이며, 성숙한 컬렉터들이 진정으로 즐기는 한 권순철 작품가의 상승 여력은 앞으로도 충분하니까.



서연종 하나은행 삼성역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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