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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이야기가 있는 집 ⑧ 건축가 김원의 옥인동 집

중앙일보 2011.11.03 04:00 주말섹션 4면 지면보기
김원 선생이 한옥 사랑채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한국식 전통 정원의 늦가을 정취에 취해버릴 듯하다.

[f BEST] 가꾸지 않아 더 아름답다
쉼 없이 피고지는 온갖 꽃 동서남북으로 둘러싼 산
새 소리 가득한 옥인동 여기가 2011년의 서울일까



봄에 가보고 가을에 다시 갔다. 김원(68·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 선생의 서울 옥인동 집은 역시 뜰이 좋다. 바닥엔 장대석이 무게 있게 깔리고, 그 위로 물든 감나무 이파리가 뒹굴고, 우뚝한 소나무 뒤로 인왕산의 바위벼랑이 환하게 펼쳐져 있다. 시내 중심이지만 충분히 호젓하다. 뜰만 보면 지금이 조선 중기인지, 21세기 초입인지 언뜻 구분되지 않는다. ‘아름답되 화려하진 않고 한옥이 아니되 전통미가 묻어나는 살림집’을 찾는 내게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김한배 교수가 강력 추천한 집이다. 한국식 정원의 원형을 볼 수 있는 집이라 했다.



 “전통 조경의 마지막 대가라고 할 수 있는 김춘옥 선생의 작품이지요. 궁정동 안가와 경주 보문단지 조경을 그분이 하셨습니다. 이 뜰은 게으른 사람을 위한 겁니다. 서양 정원은 안 가꾸면 표가 나지만 한국 정원은 그냥 내버려둬도 괜찮아요. 김춘옥 선생에게 듣기로 한국 정원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고 해요. 봄부터 가을까지 끊이지 않고 꽃을 볼 수 있게 하는 것과 유실수를 많이 심어 아무리 뜰에 관심이 없는 주인이라도 절로 재미를 느끼게 한다는 거지요. 봄에 산수유를 시작으로 살구·앵두·모란·철쭉·라일락·배롱나무 등이 연이어 꽃을 피워요. 앵두와 살구가 하도 많이 달려 이웃이 다 함께 나눠 먹을 만해요. 감과 은행과 대추도 우리 식구가 다 못 먹을 만큼 열립니다. 그리고 앞산을 끌어들여 내 정원으로 삼지요. 그걸 ‘차경(借景)’이라 하는데 한국 정원은 뜰 안에 나무를 심기보다 차경을 합니다.”



 그리고 뜰 여기저기 바윗돌이 적절히 놓였다. 놓이는 방향과 위치에 따라 의자도 되고 탁자도 되는 바위들이다. 용도뿐만 아니라 집에 아연 깊이와 무게를 준다.



 뜰엔 세 칸짜리 기와집이 소슬하게 앉았다. 강남 어디선가 아파트를 짓겠다고 허무는 집을 1500만원에 사서 비슷한 돈을 들여 이리로 옮겨왔다. 우린 별채 마루에 두꺼운 방석을 깔고 앉았다. 눈앞으로 남산이 바짝 다가와 보이고 올려다보는 대들보엔 ‘1990년’이라는 상량날짜가 선명하다.



 “어느 동네 어떤 집에 사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철학의 표현이거든요. 옥인동 한옥에 사는 것과 압구정동 아파트에 사는 것은 철학의 차이를 명료하게 보여주잖습니까?”



 이 한옥 별채는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그의 사랑채다. 책 읽고 낮잠 자고 명상하고 손님을 맞는다. 문을 열면 사방이 트이고 닫으면 호젓하게 고립되고, 한 사람이 앉아도, 스무 명이 앉아도 적당할 만큼 공간에 탄력이 있다. 이 방에는 시계도 TV도 전화도 들이지 않았다. 어설픈 가구들도 모조리 사절이다.



 “여기 앉으면 절로 절제하게 돼요. 시간도 천천히 흘러가지요.”



 새소리가 귓전에 쪼롱쪼롱 들리고 서울 한복판 같지 않게 바람결이 달다.



 “이 동네에 살고 싶어 복덕방을 다녔는데 팔려고 내놓은 집이 마땅한 게 없어요. 그때 발상의 전환을 했지요. 왜 팔려고 내놓은 집만 사야 하는가. 내 맘에 드는 집을 먼저 찍어놓고 주인을 설득하면 될 게 아닌가. 그래서 이 집을 맘에 두고 주인에게 청을 넣었더니 두 달 만에 연락이 왔어요. 팔겠다고!”




1 한옥 사랑채 내부. TV·시계·전화가 없는 ‘삼무(三無)’ 공간이다. 김원 선생이 어렸을 때 사용했던 고장난 시계는 하나 걸어뒀다. 2 정원에서 바라본 집 본채. 지은 지 50년은 족히 지난 건물이다. 3 본채 1층 응접실. 오른쪽 기둥은 1987년 이사오면서 구조 진단을 하고 보강해 넣은 것이다. 또 오른쪽 빨간색 문은 화장실 문이다. 김원 선생이 자신이 건축한 건물에 “나만 아는 사인”으로 집어넣는, 일종의 표시다. 4 집 대문. 태극을 그려넣은 이유는 “찾기 쉬우라고”란다. 취재진에게도 실제 큰 도움이 됐다.




 대지면적 660㎡(200평), 연면적 230㎡(70평)인 2층 슬래브집. 건축가 김원이 이 집을 낙점했던 이유는 열 손가락으로 꼽기에도 모자란다.



 “우선이 집터지요. 내가 겸재의 인왕제색도를 특별히 좋아합니다. 여기서 보는 아침·저녁의 인왕산이 바로 ‘인왕제색’이죠. 겸재가 자기 집을 그린 ‘인곡정사’라는 그림이 있어요. 여기가 바로 그곳입니다. 집자리는 아니고 뒷마당쯤 되지요. 또 인왕산 줄기가 내려오다 이 집터에서 딱 멈췄어요. 산줄기가 마무리되는 부분에 땅 기운이 몰리거든요. 지기가 세고 맑은 곳입니다. 그리고 동향 대문에 남향집이지요. 겉으로 보면 높지 않은데 안에서 보면 사방이 확 트였지요. 남쪽엔 남산, 북쪽엔 북악산, 요새는 앞 집 때문에 막혀버렸지만 동쪽엔 원래 낙산이 보였고 서쪽에 저렇게 인왕산 봉우리가 담장인 듯 둘러 있지요. 집 안에서 서울의 내사산을 다 내다볼 수 있는 집이 어디 흔한가요.”



 그래서 시세보다 더 주겠다고 주문을 넣어 기어이 손에 넣었다. 물론 시세차익을 노린 것은 전혀 아니다.



 “살림집은 정 붙이고 사는 곳이지,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대한민국이 토건국가가 돼버리면서 온 국민이 투기꾼이 되고, 전 국토가 투기장이 돼버렸어요. 그게 사람들의 삶의 내용과 가치관을 심각하게 왜곡합니다.”



 그 여파로 지금 이 아름답고 오래된 동네도 위기에 처했다. 옥인동 일대를 재개발해 아파트를 지으려는 건설계획이 속속 진행 중이라 한다. 그는 요즘 옥인동과 서촌을 개발로부터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데 워낙 큰 힘 앞이라 점점 기운이 빠져가고 있다.



 “집에 과도한 투자를 하는 것은 어리석어요. 집 때문에 많은 것을 잃어버려요. 나는 면앙정 송순을 좋아합니다. 그의 시 중에 한국인의 건축철학을 고스란히 담은 내용이 있지요.”



 그가 말한 시는 ‘면앙정잡가’다. ‘십 년을 경영하여 초려 삼 칸 지어내니/ 한 칸은 청풍이요 한 칸은 명월이라 / 강산은 들일 데 없느니 둘러두고 보리라’로 이어진다.



 “십 년을 경영해 세 칸 집을 지었다는 건 십 년 동안 고민 끝에 결국 미니멀리즘에 당도했다는 소립니다. 집이란 결국 세 칸이면 족하다는 결론이 났다는 거지요.”



 청풍은 바람과 기운이 잘 통하는 것이고 명월은 맑은 정신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강산을 둘러둔다는 게 바로 차경이니 이것은 면앙정의 생각이지만 21세기를 사는 건축가 김원의 철학이기도 하다.



 본채는 꽤 낡았다. 87년 이사올 때 이미 지은 지 30년 가까이 된 집이었다.



 “한때 유행했던 2층 슬래브 벽돌집입니다. 물론 확 허물고 새로 지을까 싶은 유혹도 있었지요. 하지만 엄청난 건축폐기물이 나올 걸 생각하니 끔찍했어요. 말로는 환경을 생각한다 하면서 그런 쓰레기를 만들 수는 없겠더라고요. 약간만 수리해 살고 있는데 아주 쓸 만합니다.”



 이런 집은 수명이 얼마나 될까를 물었더니 노건축가는 웃음을 물고 “물리적으로 200년은 거뜬하다”고 대답한다. 200년은 거뜬할 집을 자꾸 부숴버리는 것은 죄악이다. 낡고 헌 집을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삶에 곡조가 실린다. 청풍과 명월이 들락거리는 그의 집이 그 증거다.



 글=김서령 칼럼니스트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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