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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청춘 콘서트 vs 개그 콘서트

중앙일보 2011.11.03 00:53 종합 38면 지면보기
이철호
논설위원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내년 대선에 나올지 말이 많다. 지금 그의 입은 자물쇠다. 주변 인물을 통해 짚어보는 수밖에 없다. 최측근 중의 한 명이 시골의사 박경철씨다. 그는 처음 ‘서울시장 출마설’을 꺼내 핵폭풍의 뇌관을 당긴 인물이다. 지난 8월 10일, 서울 서소문의 강서면옥에서 중앙일보 논설실 간부 3명과 박씨가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그는 새로 영입된 필자였다.



 -당신을 좌파로 보는 사람이 많다.



 “그렇지 않다. 그래도 빈부격차는 문제다. 88만원 세대를 이대로 둘 수 없다.”



 -대안이 있는가.



 “한나라당이건 민주당이건 국민의 불신이 심각하다. 안 교수처럼 국민적 신뢰를 받는 사람이 정치에 나서야 한다.”



 -실현 가능하다고 보는가.



 “그를 설득하는 중이다. 처음보다 많이 넘어오고 있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시점이다. 안 교수 신드롬이 시작된 9월 1일보다 무려 3주 전에 그의 정치 참여 카드가 등장한 것이다. ‘대통령’이란 표현은 없었지만 베테랑 논설위원들은 한결같이 “안 교수가 대선에 나올 모양”이란 느낌을 받았다. 서울시장 선거라는 돌출변수가 불거지기 훨씬 전부터 대선 밑그림이 그려졌다는 게 사실에 근접한 추론일 듯싶다. 여기에다 역대 대선에서 여론조사 선두를 다투던 인물이 스스로 꿈을 접은 적은 없다.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거나 신당을 만들었다. 안 교수는 이제 정치판의 변수(變數)가 아니라 상수(常數)라고 보는 게 온당하다.



 안 교수가 신비주의를 버리고 기존 정치판을 기웃거릴 이유는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부터 재래식 정치 좌판이 다시 벌어졌다. 곡괭이가 난무하고 공중부양이 재연되면 그의 ‘탈(脫)정치’가 한층 돋보이기 마련이다. 때마침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까지 알아서 무너져 주고 있다. 그는 ‘사실상의 승리’ ‘이번 선거는 무승부’라는 유행어를 양산했다. 말만 하면 빵~빵~ 터진다. ‘보온 상수’에 이어 ‘빵~ 준표’가 보통명사로 굳어질 판이다.



 홍 대표의 “안 교수는 한 달 안에 푹 꺼진다”는 장담은 잠꼬대일지 모른다. 이번에도 박원순 후보가 아니라 나경원 후보가 ‘1억원 피부숍’ 한 방에 갔다. 88만원 비정규직 세대의 역린(逆鱗)을 건드린 것이다. ‘정치 초년병’ 대신 수많은 선거를 통해 검증된 나 후보가 푹 꺼졌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때문에 망했다는 분석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꼭 보면 공부 못하는 친구가 책가방 탓을 하고, 대패질 못하는 목수가 연장을 탓한다. SNS는 한갓 도구일 뿐이다. 거기에 담는 상상력과 콘텐트에서 운명이 갈렸다. 한나라당의 어떤 선거구호도 옷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김제동씨의 투표 인증샷을 당할 수 없었다.



 2030세대는 지금 그들의 아픔에 공감해 주길 바란다. 돈보다 꿈을 원한다. 맞춤식 복지조차 ‘돈으로 마음을 사겠다는 것이냐’는 반감을 부를 수 있다. 그들의 언어부터 배우는 게 우선일 듯싶다. 참고로, 지난 추석 때 혼기(婚期)를 넘기거나 빈둥대는 조카들에게 한마디 했다 식겁했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삼촌, 정 꼴보기 싫으면 한번 시집갔다 이혼한 셈 쳐주세요.” “삼촌, 이 험한 세상에 자살 안 하고 군대·대학까지 마친 것만 해도 엄청 효도한 거예요.”



 화성에서 온 필자가 금성에서 온 조카들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요즘은 쌍둥이 사이에도 세대차를 느낀다는 세상이다. 그날 밤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을 들으며 소태 씹은 마음을 다스렸다. 작곡가 말러는 그의 제자인 아널드 쇤베르크가 난해한 표현주의 음악을 들고 나오자 이런 명언(名言)을 남겼다. “그래… 젊으니까, 자네가 옳다.” 쇤베르크는 실제로 현대음악의 아버지가 됐다. 2030의 반란에 기겁한 한나라당이 당명(黨名)까지 바꾼다고 야단이다. 하지만 말러의 교훈부터 되새겼으면 한다. 한쪽에선 ‘청춘 콘서트’가 한창인데, 당 대표가 대학생 앞에서 ‘개그 콘서트’를 한다면 게임이 될 수 없다. 당 간판만 빼고 다 바꾸겠다는 역발상이 아니라면 그들에게 다가갈 길은 보이지 않는다.



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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