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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아의 여론女論] 폭력은 사랑이 될 수 없다

중앙일보 2011.11.03 00:12 종합 37면 지면보기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우리에게 김유정(金裕貞·1908~37)은 보통 향토적인 서정과 해학이 넘치는 소설을 쓴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의 대표작 ‘봄봄’이나 ‘동백꽃’의 남자 주인공들은 여성에게 애정 표현도 잘 못하는 소극적이고 유약한 존재로 그려져 있다. 그래서 실제의 김유정이 여성에게 ‘스토커’ 같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쉽게 상상하기 힘들다.



 1928년 갓 스무 살을 넘긴 연희전문학교 학생 김유정은 당대 명창으로 알려졌던 박록주(朴綠珠·1905~79)에게 연모의 감정을 품는다. 그는 편지를 통해 박록주에게 열렬히 구애했다. 박록주는 자신보다 3살 어린 김유정을 남자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매일 편지를 보내는 김유정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한번 만나보게 된다. 그 자리에서 김유정은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고 있으며,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다. 거의 막무가내였다.



 쫓아내듯 김유정을 돌려보낸 다음 날부터 박록주는 김유정의 협박조의 편지를 받게 된다. “나를 마치 어린애 취급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분하오. 그러나 나는 끝까지 당신을 사랑할 것이오. 당신이 이 사랑을 버린다면 내 손에 죽을 줄 아시오.”



 김유정의 집착은 나날이 심해져 편지와 선물을 보낼 뿐 아니라, 매일 찾아오고 ‘너를 죽이겠다’는 원한 서린 혈서(血書)를 보내거나, 급기야 칼을 들고 급습하여 그녀를 위협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나의 이력서’, 명창 박록주 공식 홈페이지 http://www.parkrokju.org).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김유정의 감정은 일방적인 것이었다. 이에 호응해주지 않는 상대에게 폭력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은 그의 모습은 당대의 동료 문인들이 했던 ‘실연(失戀)의 아픔’이나 ‘비련(悲戀)’과 같은 말로 포장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아무리 훌륭한 작가라 하더라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박록주가 견디다 못해 아는 경찰서 관계자에게 그를 구속시켜줄 것을 하소연했듯, 이는 ‘범죄’다.



 오늘날 치정(癡情) 폭력 사건들이 늘어날 뿐 아니라 살해, 방화 등 점점 강력 범죄화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연인 관계의 성폭력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한국 여성의 전화’ 상담건수에서 데이트나 치정 폭력이 차지하는 비중도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사랑에는 어떤 경우에도 폭력이 개입할 수 없다. ‘널 너무 사랑해서’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에 속아 폭력을 사랑으로 착각해선 안 된다.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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