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향기] 이퇴계의 교훈

중앙일보 2011.11.03 00:11 종합 37면 지면보기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일본학
10월 중순 이퇴계기념회와 국학진흥원이 주최한 이퇴계 관련 심포지엄이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필자는 ‘이퇴계가 일본에 미친 영향’에 대해 발표했다. 전에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라는 단행본을 출간했는데 그때 이퇴계 등 한국의 유학자에 관해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주최 측이 그 저서를 보고 지난 4월 이번 심포지엄에 참석할 것을 의뢰해왔다. 이퇴계에 대해 좀 더 깊이 공부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요청을 승낙했으나, 사정상 두 달쯤 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먼저 국회도서관과 중앙도서관, 대형서점 등을 중심으로 자료 수집을 했다. 아무리 자료를 찾아봐도 퇴계가 일본에 준 영향에 대해 한국인이 연구한 성과를 이번 작업에서는 찾지 못했다. 각 도서관이나 대형서점의 서적이나 논문 종류는 모두 일본 학자들에 의한 연구였다. 이번에 내가 참조한 가장 오래된 책은 1905년에 출간된 이노우에 데쓰지로(井上哲次郞) 저 『일본 주자학파의 철학』이었으나 이 책에는 퇴계에 대한 기술이 없었다.



 일본에서 퇴계가 주목 받게 된 계기는 1930년대 당시 경성제국대학 교수였던 아베 요시오(安部吉男)가 일본에 미친 이퇴계의 영향을 처음으로 연구한 결과물을 출간하면서부터다. 각 도서관에는 아베 요시오의 퇴계 연구에 관한 책들이 있었다. 현재는 전자도서화가 되어 컴퓨터 화면을 통해 아베 요시오의 저작물을 확인하여 많은 자료를 구했다. 그는 이퇴계를 가장 깊이 받아들인 일본 학파가 야마자키 안사이(山崎闇濟) 학파임을 여러 각도에서 증명했다. 이것은 퇴계의 연구자이면 다 아는 사실이다. 야마자키 안사이를 비롯하여 이 학파 사람들은 퇴계를 ‘주자의 제1제자’에 필적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퇴계가 수백 년 전의 주자가 펴낸 고전을 마치 저자인 주자에게서 직접 배운 듯 정확하게 이해했다는 사실에 놀라 퇴계처럼 주자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공자를 배우려면 주자를, 주자를 배우려면 이퇴계를 배워라’라고 매우 높이 퇴계를 칭송했다.



 야마자키 안사이는 마지막에 신도(神道) 학자가 되어 새로운 신도의 학파를 만들어 버렸다. 이 원인에 대해서는 일본 학자들이 최근에야 분석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필자도 이번 연구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야마자키 안사이가 신도에 매료된 이유 중 하나인 ‘일본서기’의 신대(神代)라는 소위 일본식 천지창조 이야기가 유교의 음양오행 사상을 근저에 깔고 전개된다는 사실이다. 이 점이 새로운 발견임을 그 심포지엄에 참가한 다른 발표자들도 인정해주었다. 그리고 야마자키 학파와 달리 이퇴계의 사상을 요약해서 메이지 시대 일본의 ‘교육칙어’로 발전시킨 학파도 있었다.



 그런데 이날 객석에서 이런 내 발표에 대해 이퇴계를 폄하했다며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언어를 사용하여 힐난하는 인물이 있었다. 필자는 퇴계를 폄하한 적이 없는데 오해를 많이 한 모양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 인물은 과거 군사정권의 실세 중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나는 그에게 냉정한 토론을 제의했고, 그는 나의 대답 토론을 들은 후 대회장 밖으로 나가더니 돌아오지 않았다. 이퇴계가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자신보다 25세나 젊은 학자와 ‘사단칠정’ 논쟁을 7년간이나 진행시켰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퇴계야말로 바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해 준 대학자였다고 마음에 새기면서 나도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그를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좋은 경험이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일본학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