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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삶과 경영 (17) 60대 목표 ‘회사 물려주기’ 이미 시작

중앙일보 2011.11.03 00:05 경제 2면 지면보기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 홈페이지(http://www.softbank.co.jp/academia)에 게시된 입교생 모집 광고. 소프트뱅크 그룹의 후계자 양성을 위해 개원한 아카데미아엔 직원뿐 아니라 누구라도 지원 가능하다. 국적·성별은 물론 소속 조직도 따지지 않는다. 이미 여러 명의 경쟁사 직원, 외국인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손정의 회장의 직강은 종종 인터넷 개인화 방송 서비스인 ‘유스트림’을 통해 온라인 생중계된다.


손정의 회장이 본지 연재를 기념해 써 보내온 좌우명 ‘뜻을 높게(志高く·고코로자시타카쿠)!’
지난해 6월 25일 제30회 정기 주주총회 자리에서 ‘소프트뱅크 신(新)30년 비전’을 발표했다. 예상대로 이런저런 의문과 비아냥이 쏟아졌다. 요지는 “30년 뒤 세계 톱10 기업이 되겠다, 계열사를 5000개로 늘리겠다면서 왜 구체적인 실행계획은 없느냐”는 거였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실은 그런 질문이 외려 좀 답답하게 여겨졌다. 30년 비전을 통해 나는 소프트뱅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했다. 우리 본업은 마이크로칩 제조도, 소프트웨어 판매도 아니다. 정보혁명을 추진하는 것이다. 미래에 도달해야 할 이미지도 확실히 그려 놨다. 그를 위한 전술, 즉 구체적 방법론은 시대와 더불어 변하며 도구도 달라진다. 사업상 라이벌도 현재와는 다를 것이라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러니 방법론이란 건 큰 원칙 정도만 제시해 두면 된다. 물론 확실히 준비해야 할 것도 있다. 새 시대에 맞는 이른바 ‘웹(Web)형 조직’이다. 구성체들이 자율·분산·협조의 원칙에 따라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이다. 각 구성체는 적재적소에서 자기 역할을 하며 타 조직들과 연대한다. 특정 브랜드·기술·사업모델에 매이지 않는 ‘멀티형 조직’이기도 하다. 이런 구상의 핵심에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가 있다.

손정의 후계자 찾기 … 젊다면 보너스 100억 엔쯤 요구할 배포 있어야



30년 비전을 발표한 한 달 뒤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를 개원했다.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를 본뜬 이 학교의 제1 목표는 ‘손정의 2.0’을 만드는 것이다. 나 대신 소프트뱅크를 이끌어갈 차세대 최고경영자(CEO)를 배출하려는 것이다. 이는 내가 열아홉 살 때부터 계획한 일이다. ‘인생 50년 계획’ 중 60대의 목표가 바로 ‘다음 세대에 사업을 물려준다’는 거였다. 당시 어린 나이였지만 ‘돈이나 명예보다 사람을 남기고 싶다. 누군가를 통해 내 뜻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 나이 올해 쉰 넷, 35년을 숙성시킨 목표를 이루려면 이제쯤엔 발동을 걸어야 한다. 그런 비상한 각오로 문을 연 것이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다.



#‘소프트뱅크 DNA’는 피보다 진하다



 내겐 두 딸이 있다. 모두 맞벌이 주부다. 성실한 배우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 사랑하는 딸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준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인류 역사상 300년 이상 존속한 국가는 의외로 드물다. 동로마제국, 중국의 청나라를 포함해 11개국 정도다. 이들은 하나같이 장자 상속을 포기했다. 능력과 상관없이 큰아들이라, 혹은 내 핏줄이란 이유로 후계자로 삼는 건 매우 위험하다.



 그렇다고 내가 ‘오너십’을 가벼이 여기는 건 아니다. 대기업 샐러리맨 사장의 임기는 기껏해야 4~5년이다. 이래서야 자기 임기 동안 책임질 수 있는 정도의 계획밖에 세우지 않는다. 큰 시야로 사업을 펼 수도 없다. 대업을 이루려면 역시 20~30년의 시간 축으로 생각해야 한다.



#회장보다 ‘교장 선생님’으로 남고 싶어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는 바로 그런 큰 스케일로 미래를 그려갈 후계자를 기르는 곳이다. 무슨 사업부장 같은 리더를 키우기 위한, 일반 회사에서 시행하는 사원 교육 프로그램 같은 것이 아니다. 정원은 일단 300명. 그중 200명은 소프트뱅크 그룹 내에서, 나머지 100명은 외부에서 선발했다. 트위터를 통해서도 신청을 받았다. 무려 100대 1의 경쟁을 뚫고 패기 만만한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개중엔 우리 경쟁사 직원도 있고 외국인도 있다. 후계자가 꼭 사내에서 나올 필요는 없다. 30년 뒤 소프트뱅크를 지금의 100배 규모로 키우려면 보통의 생각으론 불가능하다. 밖에 큰 인물이 있다면 당연히 데려와야 한다.



 이들은 말 그대로 ‘통치자가 되기 위한 실전 교육’을 받는다. 수강생 각자는 ‘내가 소프트뱅크 CEO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항상 생각하도록 훈련받는다. 매주 수요일 오후 5시부터 4~5시간 진행하는 교육은 힘 닿는 한 내가 직접 수행한다. 말하자면 내가 교장인 셈이다. 사실 교장 선생님이 되는 건 내 오랜 꿈이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의 교장으로 죽고 싶다. ‘사장’이나 ‘회장’이라 불리며 죽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수강생의 긴장도는 상당하다. 6개월마다 한 번씩 프레젠테이션 경연을 한다. 일종의 ‘물갈이 전쟁’이다. 소프트뱅크 CEO로서 사업 전략과 성장 전략, 투자 전략을 공개한다. 수강생들이 직접 채점한다. 이를 통해 하위 10%를 솎아낸다. 빈자리는 다시 새 수강생으로 채운다. 밀려난 사람이라도 원하면 언제든 재도전할 수 있다.



#소프트뱅크, 웹형 조직으로 거듭나야



 이 학교에 대해 내가 그리는 이미지는 ‘도장(道場)’이다. 검도에서 되받아치기를 하듯 그렇게 치열한 경쟁을 통해 강한 미래 경영자로 거듭난다. 물론 내가 사범이다. 전성기에 접어든 검도 선수의 근육은 점차 약해진다. 하지만 경험은 그대로 남는다. 그러니까 젊은 검도 선수들의 솜씨를 보며 ‘근육이 좋군’ 하고 읊조리는 위치에 서는 거다. 멋지지 않나.



 물론 내 후임이 될 사람은 한 명뿐이다. 그렇더라도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후보군은 여러 명 둘 생각이다. 그 외 인재들도 모두 소중하다. 소프트뱅크가 진정한 웹형 조직으로 자리 잡으려면 각 소조직의 리더가 될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들 또한 나와 소프트뱅크의 DNA를 품고 있기를 희망한다. 30년 뒤 소프트뱅크 5000개 자회사의 CEO 중 상당수는 바로 여기서 탄생하지 않을까.



 참고로 내 후계자, 소프트뱅크그룹의 CEO가 될 사람에게는 스톡옵션으로 100억 엔 정도를 줄 생각이다. 그러니 지금 당신이 20대, 30대 젊은이라면 배포를 크게 가졌으면 한다. ‘보너스로 한 100억 엔(약 1430억원) 정도 받아볼까?’ 하는 정도가 딱 좋다.



정리=이나리 기자



◆손정의가 생각하는 ‘기업 지배권’ =손정의 회장은 세계적인 인수합병(M&A) 전문가다. 이런 그가 기업 지배권 확보에 집착하지 않는 건 뜻밖의 일이다. 손 회장은 “흔히 기업을 인수할 때 소유 지분을 51%로 하니 마니 하는 얘기들을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51%를 가지면 본업이고 그 이하면 본업이 아닌 건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지배권에 집착하는 건 일방적·이기적 판단이며 상하관계를 고집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보면) ‘머릿속이 봉건사회에서 못 빠져나온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소유 지분이 50% 이하라도 파트너십으로 맺어진 조직이라면 문제 없다는 것. 요컨대 “내 안에는 지배권 운운하는 정의 따윈 아예 없다”는 게 그의 공언이다.



◆아카데메이아(Akademeia)=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기원전 400년께 만든 교육기관. 왕·장군 같은 차세대 통치자를 육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주로 철학을 가르쳤다. 진정한 통치자가 되려면 수학·과학을 배우는 이상으로 철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선구자인 메디치가에서 이를 ‘플라톤 아카데미’란 이름으로 부활시킨 적이 있다. 손정의 회장 또한 이를 본떠 후계자 양성기관인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를 열었다. 고대 아카데메이아 입구에는 ‘기하학을 모르는 자, 이 문을 지나지 말라’는 문구가 있었다고 한다. 손 회장은 이에 착안해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의 문에는 ‘디지털 정보혁명에 뜻이 없는 자, 이 문을 지나지 말라’는 문구를 쓰고 싶다”는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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