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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천고마비의 계절에 말(馬) 대신 살찌는 정치인들 … 말(言)을 많이 먹으니 그럴 수밖에

중앙일보 2011.11.03 00:04 종합 39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바야흐로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하늘 높은 건 맞는데 말 대신 살찌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인들이다. 이유를 설명하자면 장소를 옮기고 시간을 거꾸로 돌려야 한다.



 중일전쟁 때인 1943년 마오쩌둥은 장제스에게 “말을 먹고 살이 쪘다(食言而肥)”고 호되게 비난한 적이 있다. 국공합작(國共合作)해 항일전쟁을 수행하기로 약속해놓고 45만 대군을 풀어 공산당군을 포위했다는 게 이유였다. 이 ‘식언이비’란 말이 마오의 창작품은 아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춘추전국시대다. 노나라 애공은 맹무백이라는 대신이 영 못마땅했다. 자신이 한 말에 책임지는 법 없이 늘 흰소리만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애공이 연회를 베풀었고 맹무백과 함께 곽중이라는 대신도 참석했다. 곽중은 매우 뚱뚱했는데 애공의 총애를 받았기 때문에 맹무백은 그를 몹시 시기했다. 맹은 곽을 모욕 줄 생각으로 물었다. “무얼 먹고 그리 살이 찌셨소.” 곽중 대신 애공이 대답했다. “말을 많이 먹으니(食言) 어찌 살이 찌지 않겠소.” 식언은 잘해도 맹무백이 아주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었나 보다. 애공이 자신을 비꼬아서 한 말임을 알아채고 식은 땀을 흘렸다고 『좌씨전』은 전한다.



 이 땅의 정치인들도 이런 식언을 일삼으니 자신들은 살찌지만 백성들은 혼란스럽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중대사를 놓고도 그런다. 양당의 대표란 사람들부터가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얘기가 다르다. 정권을 잡았나 놓쳤나에 따라 한 입에서 국가 생존전략에서부터 매국협상으로까지 널을 뛴다. 당리당략이 국가이익이라는 싸구려 포장지에 싸인 결과다.



 그 틈을 불순한 유언비어가 파고든다. ‘멕시코는 FTA로 상수도가 민영화된 뒤 수도요금이 네 배 이상 올라 빈민들이 빗물을 받아먹으려 하는데 그것마저 법으로 금지시켜 목말라 죽을 지경’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얘기가 사실처럼 떠돈다. 백성들은 불안하다.



 애공 또한 선인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식언’이란 은나라 탕왕이 포악무도한 하나라 걸왕을 정벌할 때 한 말이다. “백성들이여 나를 도우라. 그러면 공은 그대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나는 절대로 식언하지 않겠다.” 그리고 탕왕은 그 약속을 지켰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탕왕의 말을 현대적 버전으로 바꿔놓는다. “사회적 자본은 사람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정치인들의 식언은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사회적 자본을 허문다. 광우병 파동 때 경험했듯 많은 비용을 치르게 한다. 이 정도론 그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터다. 하지만 지난 선거를 보고도 못 배우는 그들이 딱하다. 자신의 식언이 결국 자기의 정치생명까지 먹어 치울 것이란 사실 말이다.



이훈범 j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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