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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포·쌍육 … 사라진 옛 놀이, 다시 우리 곁으로 오다

중앙일보 2011.11.01 03:21 2면
지난달 19일 충청남도평생교육원 예절실에 모인 전통놀이연구회 회원들이 ‘쌍육놀이’를 즐기고 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전통놀이

선조의 놀이 전파하는 천안전통놀이연구회



김시습의 ‘금오신화’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집으로 알려져 있다.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등 5편이 전해 내려온다. 이 중 ‘만복사저포기’의 줄거리는 이렇다. 전라도 남원에 양생이라는 사내가 살았다. 부모를 일찍 잃고 만복사에서 혼자 지냈다. 배필이 없음을 슬퍼하던 그는 부처와 저포놀이를 한다. 만약 자신이 이기면 배필을 구해달라 부탁한다. 그는 놀이에서 이겼다. 얼마 후 만복사를 찾은 한 여인을 만난다.



 이 소설에서 나오는 ‘저포’는 백제시대 때부터 즐기던 놀이다. 조선시대에도 소설에 나올 만큼 유행했다. 정사각형 판에 총 324개의 칸이 그려져 있다. 칸은 오방색(황·청·백·적·흑)으로 채워져 있다. 5개의 목편(윷가락)과 6개의 말을 가지고 한다. 놀이판에 놓여진 말을 모두 빼내면 이기는 놀이다.



목편을 굴려 나온 사위(점수)에 따라, 말을 앞으로 움직일 수 있고 제자리, 2·3칸 뒤로, 처음으로 되돌릴 수 있다. 놀이판의 모서리 칸에 말이 놓이면 사선으로 그어진 선을 따라 중앙의 황색 구역 칸으로 갈 수도 있다. 저포놀이는 윷놀이와 비슷하지만 사위에 따라 변수가 많아 승부를 쉽게 예측할 수 없다. 그만큼 박진감이 넘친다.



 저포놀이와 함께 유행했던 놀이에는 ‘쌍육(악삭)’이 있다. 놀이 말이 마치 서양의 체스 말을 연상시키지만 놀이방법은 전혀 다르다. 두 개의 주사위와 흑·백 각각 15개의 말을 가지고 하는 놀이다. 방법에 따라 참쌍육과 여기쌍육으로 나뉜다.



 이외에도 170여 개의 조선시대 관직을 배울 수 있는 ‘승경도’, 시조를 외우며 노는 화가투, 고누, 윷점, 장치기 등의 놀이가 있다.



 그러나 요즘 이러한 놀이를 즐기는 사람은 흔치 않다. 우리의 전통놀이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고 있다.



전통놀이는 따분하다?



천안시 쌍용동에 사는 황준오(11)군은 새로운 놀이를 배웠다. 지난 여름방학 때 충남학생교육문화원에서 열린 ‘가족 전통놀이 특강’에서다. 함께 참여한 황군의 어머니 이경희(39)씨도 처음 하는 놀이였다.



 황군은 하루 2시간씩 총 8회 열린 수업에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배우는 놀이마다 새로웠고 재밌었단다. 학교에서도 배우지 못했던 놀이였다. 평소 독서를 좋아하는 황군이 책에서만 봤을 뿐 이다. 그가 수업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간은 솟대만들기, 고누, 쌍육 놀이를 할 때였다고 한다. 황군은 “TV를 보는 것보다 전통놀이가 더 재밌다”며 “학교에서 이러한 전통놀이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몰랐던 놀이를 배웠다는 게 뿌듯하다”며 “친구들에게 놀이를 가르쳐 주고 싶다”고 자랑했다.



왼쪽부터 우리나라 전통놀이 기구인 쌍육?화가투?저포. [사진=천안전통놀이연구회 제공]


전통놀이의 소중함 이어가는 사람들



사라졌던 전통놀이가 지금의 학생들에게 전파될 수 있었던 건 ‘천안전통놀이연구회’의 노력 때문이다. 이 연구회는 지난해 12월에 생겼다. 지난해 충남평생교육원 가을학기에 개설된 ‘전통놀이강사 자격증반’ 수강생들이 만들었다. 회원 15명이 활동 중이다. 이들은 직업도 다르다. 레크리에이션 강사, 보험설계사, 시인, 주부 등이다. 강의를 듣기 전까지만 해도 전통놀이에 대해선 잘 알지 못했다. 비석치기, 연날리기, 팽이치기 등이 전부인 줄 알았다고 한다.



 레크리에이션 강사인 황윤신(43)씨는 “레크리에이션 활동에 전통놀이를 접목시키려고 강의를 들었다. 그런데 재미는 물론 전통문화와 예절을 배울 수 있는 전통놀이의 매력에 푹 빠졌다. 연구회까지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연구회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있다. ‘자격증반’ 강사였던 임영수(45) 연기향토박물관장이다. 임 관장은 7년여 간 전통놀이에 대해 연구했다. ‘오주연문장전산고’ ‘용재총화’ ‘경도잡지’ 등의 고서에서 전통놀이 기록을 찾았다. 현재 10가지의 놀이를 재연해냈다.



 임 관장은 “우리가 아는 연날리기, 팽이치기, 윷놀이 등은 낮은 계층에서 즐기던 놀이다. 양반들이 즐기던 승경도, 저포 등은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단절됐다. 일부 놀이는 일본 본국에 전파되기도 했다. 우수한 우리의 전통놀이를 없애려는 의도였다”고 밝혔다.



 인설현(39) 천안전통놀이연구회장은 “초등학생 딸이 학교에서 배우는 놀이는 비석치기, 연날리기 정도다. 어른들도 전통놀이를 잘 모른다. 나이 드신 분 중 일부만 알고 있다”며 “아쉬운 마음이 든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연구회는 전통놀이 전파 활동에 적극적이다. 지역아동센터, 충남학생교육문화원 등에서 부모와 자녀를 상대로 특강을 연다. 각종 모임에서 원하면, 찾아가 교육을 시켜준다. 학교에서 이뤄지는 방과후 학교(특별수업) 신청도 받는다.



연구회 회원이 되고 싶다면 누구나 환영한다. 단 정회원으로서 놀이 전파 활동을 하려면 ‘전통놀이강사 자격증반’을 수강해야 한다.



 ▶문의=인설현 회장 010-4190-8890 cafe.daum.net/jeon-tong



 글·사진=조한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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