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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스페셜 - 화요칸중궈(看中國)] “남 일에 신경 꺼라” 열린 곳은 천정뿐 … 숨구멍만 남겼다

중앙일보 2011.11.01 00:45 종합 8면 지면보기
멀리서 바라본 주택의 모습이다. 사방이 높은 담벼락으로 둘러싸여 있다. 대문은 작지만 견고하다. 창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매진차이나]


장소가 다르고, 살았던 사람도 다르다. 그러나 중국인의 집은 어디선가 이미 본 듯한 기시감(旣視感)에 사로잡히도록 만든다. 겉은 전혀 다르지만 중국인의 집은 대개 두꺼운 벽에 둘러싸인 내향적 구조다. 한결같은 그 구조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중국인의 집 ③ 하늘마저 격리된 안후이성 후이저우 민거
유광종의 중국 뒤집어보기



한 여인이 있었다. 백년해로(百年偕老)의 가연(佳緣)을 맺은 지 한 달여, 그러나 신랑은 곁을 떠났다. 먼 곳에 나가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해를 넘기고-. 돈을 벌기 위해 나간 신랑은 돌아오지 않았다.



 여인은 자수를 두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차가운 겨울의 마지막 해를 넘기면서 여인은 구슬을 샀다. 없는 형편이었으나 돌아올 기약 없는 사람을 기다리며 넘기는 한 해를 마음에 새기기 위해서였다.



상공에서 내려다 본 후이저우 전통 주택의 천정 모습이다. 외부로 둘러싸인 벽, 철저한 내향성 구조의 가옥 중심에 만들어져 있다. [이매진차이나]
 하나, 둘, 셋…. 구슬은 계속 늘어만 갔다. 그러나 남편의 소식은 없었다. 서랍 안에 들어찬 구슬은 20여 개. 여인은 사무치는 그리움을 가슴에 안고 그만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 돌아온 신랑은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아내의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 담긴 구슬은 자신을 기다리며 20여 성상(星霜)을 보내온 아내의 원망(怨望)을 말해주고 있었다.



 저무는 해를 마음에 새기기 위한 구슬, ‘기세주(紀歲珠)’의 스토리다. 그 배경을 이룬 곳, 중국 동남부 후이저우(徽州)에 실재했던 내용을 그 지역 출신 시인이 적었다. 그 여인이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한없이 기다리며 앉아 세월을 보냈던 곳, 후이저우 일대의 흰색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집이 오늘의 주제다.



 ‘후이저우 민거(民居)’라고 적는 이 주택의 특징은 높은 벽, 깊은 뜨락, 거듭 이어지는 문(重門), 작은 창 등이다. 흰색 담벼락은 아예 성채처럼 보일 정도다. 깊은 뜨락은 외부인의 출입을 반기지 않는 구조다. 거듭 이어지는 문의 구조는 내부로의 지향(指向), 작은 창문은 바깥 세계에 대한 조심스러운 관망(觀望)을 나타낸다.



 이 집의 또 다른 특징은 천정(天井)이다. 높은 담, 이어지는 문, 깊은 뜰, 작은 창은 외부와의 단절(斷絶) 또는 격리(隔離)를 나타낸다. 이 집의 사람들이 외부 세계와 진정으로 소통하는 창은 하늘의 우물, 천정이라는 곳이다. 집의 상공에서 볼 때 영락없는 우물의 모습을 띠고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깊은 뜰 머리 위로 크게 뚫린 곳이 천정이다. 한국 사회에서 천정은 실내 공간을 하늘과 막은 부분, 건물의 꼭대기라는 의미로 쓰인다. 그나마 천장(天障)을 잘못 적은 경우라고 풀이한다. 그러나 중국의 예에서 보이는 것처럼 천정은 그대로 천정이다. 이곳을 통해 이 집의 사람들은 햇빛을 받고, 밤하늘의 달과 별을 봤다.



 이 천정은 또한 후이저우 일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소박한 성격을 잘 보여준다. ‘좋은 물은 남의 논에 흘려보내지 않는다(肥水不流外人田)’식의 심리다. 하늘에서 날아드는 빗물, 그것은 과거 하늘만 바라보며 농사를 지어야 했던 지역의 주민에게는 재물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 귀중한 빗물을 모두 자신의 집으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농민으로서의 소박한 마음 작용이 이런 천정을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부에서 바라본 천정. 채광과 통풍, 빗물을 모으는 역할을 한다. [이매진차이나]
 천정 밑에는 조상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 등을 거행하는 당(堂)이 들어서 있다. 그래서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이 당으로 모여든다는 뜻의 ‘사수귀당(四水歸堂)’이라는 말이 생겼고, 이는 결국 후이저우를 포함한 장강(長江) 이남 강남 지역의 일반 민가에서 흔히 채택하는 건축 구조로 자리를 잡았다.



 멀리서 보면 이 후이저우 민가의 모습은 역시 영락없는 성채다.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위에 조그만 창들만 보이는 구조는 앞에서 소개한 광둥의 토치카식 주택, 푸젠 일대의 객가 집단 거주 주택인 투러우(土樓)와 같다. 바깥의 세계와는 철저하게 격리된 내부 지향 구조, 배타적 격식 또한 그들과 동일하다.



 지금은 황산(黃山)시로 이름이 바뀐 후이저우 일대의 전통가옥은 모두 7000여 채, 명(明)대와 청(淸)대의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전통 촌락이 100여 곳이다. 이곳은 또 중국의 비즈니스 세계를 지난 500여 년 동안 장악했던 휘상(徽商)의 근거지다.



 풍수가 뛰어나고 햇볕도 밝은 곳이기는 하지만, 이 지역은 산간지대다. 토양이 척박해 곡식 심을 땅이 많지 않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이곳에 거주한 사람들은 산비탈을 경작해 생산한 차(茶)와 목재를 팔며 살았다. 찻잎을 잘 재배해 판매하면서 돈을 벌기 시작한 사람들이 휘상이다. 한편으로는 공부에 열중해 과거에 급제, 과거 왕조 시절 높은 벼슬자리를 꿰찬 사람이 많은 것도 이 지역의 자랑이다. 한쪽은 찻잎 등으로 막대한 부를 쌓고, 한쪽은 중앙의 높은 벼슬자리에 오른 사람들이 세력을 구축해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다. 이 지역 상인인 휘상은 마침내 그런 분위기에 올라타 중국 최대 상인그룹으로 부상하기도 했다.



 명대와 청대를 거치면서 자금을 휘어잡기 시작한 휘상들은 막대한 재력을 바탕으로 더 화려하게 집을 지었다. 한결같이 담을 더 높게 쌓고 뜰을 더 깊게 만들었다. 중첩의 방벽(防壁) 구조는 더 발달해 이제는 아예 ‘휘파(徽派) 민가’라고도 불린다.



  후이저우 주택은 앞서 소개한 토치카식 주택과 투러우처럼 공격에 대한 방어를 상정해 지은 가옥들이다.



 지난달 13일 중국 남부 광둥의 포산(佛山)에서는 두 살짜리 꼬마가 두 대의 차량에 세 번 치여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아이가 차에 치여 거리에 누워 있던 15분 동안 지나가는 18명의 행인은 아무도 구하려 들지 않았다. 비정(非情), 그리고 냉혈(冷血)의 중국인이라는 말이 중국의 언론에 등장했다. 도덕의 붕괴라는 말까지 나온다.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남의 일에 신경쓰지 말라(別管閑事兒)”는 말을 듣고 자라는 중국인들, 아마 그 심리적 구조의 원형(原型)은 높은 담벼락과 깊은 뜨락, 중첩하며 이어지는 출입문에 담겨 있을 것이다. 전란과 재난의 비바람이 늘 지나다니는 곳에서 사람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그런 집을 짓게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는 섣불리 중국인의 인성(人性)을 말할 필요는 없다. 이어지는 전란과 재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던 중국인을 이해하는 게 더 옳은 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인의 집을 더 깊숙이 들어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음은 걸음을 북방 지역으로 옮겨본다.



유광종 선임기자



◆휘상(徽商)=과거 명대와 청대 때 휘주부(徽州府) 지역 일대에서 태어나 중국의 가장 강력한 비즈니스 그룹으로 부상한 사람들이다. 신안(新安)상인이라고도 부른다. 지금의 안후이(安徽)성 남부가 근거지다. 진(晋)대에 형성되기 시작해 명대에 들어와 가장 왕성한 비즈니스를 벌였다. 찻잎과 먹, 목재 등을 다루다가 나중에는 소금 판매에 나서면서 거대한 부를 형성했다. 현재 중국 권력서열 1위인 후진타오가 이곳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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