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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134) 박철언·이회창·박근혜

중앙일보 2011.11.01 00:30 종합 25면 지면보기
1991년 12월 서울의 한 모임에서 신성일(오른쪽)과 박철언 전 의원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1996년 4월 15대 총선을 앞두고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대구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나를 선택했다. 나는 이원종 정무수석으로부터 구체적인 계획을 들었다. 그가 준 봉투를 받아 들고 대구로 내려갔다. 설혹 떨어지더라도 다음 번에는 당선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YS는 95년 12월 민자당을 신한국당으로 개명했다. 대구 터줏대감 박철언은 정덕진·덕일 형제의 ‘슬롯머신 사건’에 얽혀 세가 약화된 상황이었다. 이 수석은 대구에서 박철언과 맞붙으라고 권유했지만 경북고 후배인 박철언과 대결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었다.


15대 총선, 노태우 처남 김복동과 맞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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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출생지인 대구 중구에서 출마하고 싶었다. 그 곳은 신한국당 유승환 의원이 비례대표로 지키고 있었다. YS의 부인인 손명순 여사의 연줄이 든든한 유 의원은 내가 중구 출마 의사를 비쳤더니 펄펄 뛰었다. 이 수석이 “유 의원의 반발이 심해 중구는 어렵겠다”고 난감해했다. 결국 대구 동구 갑에서 자민련 김복동 의원과 맞붙었다. 노태우 대통령의 부인인 김옥숙 여사의 오빠인 김 의원은 차기 대통령 평을 듣던 인물이다. 선거 당시 포항 큰형님이 베풀어준 은혜는 잊을 수 없다. 돈가방을 들고 와 나를 힘껏 도왔다. 큰형님의 장남인 강석호 한나라당 의원(18대)이 2008년 고향 영덕에 출마했을 때, 나 역시 사력을 다해 뛰었다.



 15대 총선에서 패배했지만 얻은 게 많았다. 차기 선거를 바라보면서 한나라당 대구 동구 지구당 위원장을 맡았다. 분위기는 대선 체제로 접어들었다. 97년 11월 신한국당과 민주당이 통합한 한나라당이 창당됐고, 그 다음 달 국민회의 후보 DJ(김대중 전 대통령)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맞붙는 등 숨가쁜 정치일정이 계속 됐다.



  어느 날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측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우리 부부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5층 양식당에서 이 총재, 한인옥 여사와 함께 식사했다. 청와대가 굽어 보이는 자리였다. 이후 이 총재 특보가 돼 두 차례 대선에서 거의 10년에 걸쳐 선거운동을 도왔다. 천주교인인 한 여사는 경상도에 내려올 때면 불자인 엄앵란을 꼭 동반했다.



 15대 대선이 끝난 후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만나게 됐다. 98년 4월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에 박 대표가 한나라당 후보로 나왔다. 박 대표는 아무 연고가 없는 달성으로 내려오며 내게 도움을 청했다. 결혼식 때 김소월 시집을 선물해주신 육영수 여사를 떠올렸다. “어머님·아버님을 생각해서라도 전력을 다해 도와드리겠다”고 했다. 선거운동 17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박 대표와 함께 유세장을 누볐다. 박 대표가 정계에 발을 내디딘 순간이었다.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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