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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금보다 못한 수익률 … 17년 부은 개인연금 이게 뭡니까

중앙일보 2011.11.01 00:20 경제 1면 지면보기


#1 회사원 강인규(45)씨는 얼마 전 신한은행에서 날아온 ‘신탁재산운용보고서’를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노후 대비와 절세를 위해 2005년부터 월 25만원씩 넣고 있는 안정형 연금신탁의 올 수익률이 1.13%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강씨는 “은행 정기예금에 들어도 4% 안팎의 금리를 주는데 어떻게 운용했길래 수익률이 이런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만기가 10여 년 남았는데 지금이라도 보험사나 자산운용사 상품으로 갈아타야겠다”고 말했다.

노후 갉아먹는 은행 연금의 불편한 진실



 #2 1994년 한 시중은행 개인연금신탁에 가입한 이경자(56)씨는 지난 7월 첫 연금을 받아보고 눈앞이 막막해졌다. 10년간 나눠받는 월 연금액이 102만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은행에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가 지속돼 최근 4년간 수익률이 연 3%대에 머물렀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남은 금액을 앞당겨 찾아 타 금융권의 상품에 넣을 계획이다.



 대표적인 노후대비 상품인 은행 연금상품이 오히려 고객의 노후를 갉아먹고 있다. 수익률이 형편 없고, 그마저 연도별로 편차가 극심하다. 운용실력이 없거나 운용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은행들은 채권형 펀드와 비슷한 수수료를 꼬박꼬박 떼가고 있다.



은행 연금상품은 연말정산 때 연 72만원의 소득공제 혜택을 주고 수익에 대해 전액 비과세하는 ‘개인연금신탁(구 개인연금)’과 연 400만원을 소득공제 해주되 수익의 일부에 과세하는 ‘연금저축신탁(신 개인연금)’ 등 두 가지다. 구 개인연금은 2000년 이후 판매가 중단됐고 현재는 신 개인연금만 가입할 수 있다.



 연금상품의 수익률은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가장 많이 판매된 국공채형을 기준으로 한 최근 3년 수익률은 연평균 3%대에 불과하다. 9월 말을 기준으로 기업은행과 국민은행·신한은행 정도만 4%를 겨우 넘겼다. 산업은행(2.06%)·SC제일은행(2.52%)·씨티은행(3.31%)·하나은행(3.4%) 등은 정기예금의 세후 수익률(약 3.6%)에도 못 미치는 성적을 내고 있다. 신 개인연금은 사정이 더 나쁘다. 올해 국공채형 평균 수익률이 2.77%에 머물렀다. 한 시중은행의 연금팀장은 이에 대해 “연금형 신탁상품은 90% 이상을 채권에 주로 투자하는데 시장 금리 자체가 낮아 운용을 아무리 잘해도 수익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채권수익률(KIS채권종합지수)은 은행의 운용 수익률보다 한참 높다. <그래픽 참조>



 은행들은 수익률이 낮은 대신 ‘안정적’이라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채권으로 주로 운용하다 보니 고수익보다는 꾸준한 수익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을 믿기엔 수익이 너무 들쭉날쭉하다. 올해 성과가 가장 좋은 기업은행의 구 개인연금은 2008~2009년엔 업계에서 가장 저조한 연2%의 실적을 기록했다. 반대로 산업은행의 구 개인연금 평균배당률은 2008년 4.5%에서 2010년 2.1%로 반 토막이 났다. “투자한 채권을 발행한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손실을 입었다”는 게 은행 측의 해명이다.



신 개인연금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은행의 국공채형 1호의 수익률은 2008년 7%대에서 2009년 2%대, 지난해 4%, 올해 2%로 오락가락하고 있다. 신 개인연금에 가입한 회사원 서진원(49)씨는 “작은 차이에도 연금수령액에는 상당한 차이가 나지 않겠느냐”며 “더 운용을 잘하는 곳으로 옮기고 싶어도 은행마다 수익률이 들쭉날쭉해 선택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고객이 답답해도 은행은 느긋하다. 수익이 아니라 신탁자산의 일정 비율을 떼는 수수료(신탁보수율) 구조 때문이다. 현재 은행들은 상품의 수익률과 관계없이 해마다 원금의 1% 가량을 챙겨가고 있다.



고객의 일반 채권형 펀드의 신탁보수와 똑같은 수준이다. 이런 구조에선 고객의 수익률이 1% 높아져도 은행이 추가로 얻을 수 있는 수수료 수입은 0.1%에 불과하다. 은행으로선 열심히 운용할 필요를 굳이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부회장은 “위험이 전혀 없는 정기예금 금리에도 못 미치는 실적을 내면서 꼬박꼬박 수수료를 챙기는 건 은행의 도덕적 해이”라고 지적했다. 이장혁(경영학) 고려대 교수도 “낮은 수익성과 높은 수수료는 국가가 세금 혜택을 통해 국민에게 보장하려는 노후를 중간에서 가로채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이렇다 보니 은행 개인연금의 인기도 떨어지고 있다. 개인연금 시장은 2006년 이후 해마다 평균 12%가량의 고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 개인연금은 같은 기간 중 11조560억원에서 11조3200억원으로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다. 보험과 자산운용사의 개인연금이 두세 배 커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의 연금상품은 원금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게 됐다”며 “은행이 노력하지 않아도 수수료는 챙길 수 있는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나현철·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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