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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욱의 과학 산책] 70억 명째 아기의 희망

중앙일보 2011.11.01 00:13 종합 33면 지면보기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
코메디닷컴 미디어본부장
“모든 문명은 식량 부족이라는 치명적 재앙을 맞이하고 있다.” 1898년 윌리엄 크룩스 경이 영국화학협회 회장에 취임하면서 연설한 내용이다. 제목은 ‘밀 문제’, 주제는 비료 부족이었다.



 그는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하는 모종의 화학적 공정이 개발되지 않는다면 “위대한 백인종은 세계의 선두 자리를 지킬 수 없을 것이며 빵을 주식으로 삼지 않는 인종에 밀려 멸종하게 될 것”이라고 개탄했다.



 그가 제시한 과제는 15년도 지나지 않아 해결됐다. 증기와 메탄과 공기를 원료로 대량의 질소 비료를 만드는 방법이 발명된 것이다. 우리 몸에 있는 질소 원자의 절반은 이 같은 암모니아 공장에서 나온 것이다. 크룩스는 기근이 닥쳐올 시기를 1931년으로 예측했지만 그해 세계 밀 생산량은 수요를 크게 넘어섰다.



 “인류는 스스로를 먹여 살리려는 전쟁에서 이미 패배했다. 향후 10년 내에 닥칠 대규모 기근을 막을 방법이 없을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1968년 환경주의자 파울 에를리히가 『인구 폭탄』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그의 주장은 틀렸다. 미국인 농학자 노먼 볼로그가 60년대 개발한 ‘멕시코 난쟁이 밀’이 ‘녹색혁명’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2009년 세계의 ‘일인당’ 식량 생산량은 61년보다 41% 늘었다.



 지구촌 인구는 1927년 20억 명, 60년 30억 명, 99년 60억 명, 2011년 10월 31일 70억 명을 기록했다.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인류는 식량 공급이 늘어나는데도 자발적으로 출산율을 낮추는 유일한 생물종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 인구 증가율은 60년대(2%)의 절반에 불과하다. 100억 명을 돌파하는 2080년께엔 증가율 0%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식량 수급과는 별도로 9억여 명이 굶주리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하지만 추세는 점점 좋아지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에서 하루 1.25달러 이하로 사는 사람의 비율은 1981년 50%에서 2005년 25%로 줄었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의 가장 가난한 나라들에서도 80년대 이래 빈곤층은 줄어들고 교육 수준은 높아지고 일인당 식량 생산이 느는 추세가 계속되고 있다. 60년 인도에서 태어난 여자아이는 3명 중 한 명만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90년엔 4명 중 3명이 졸업했다. 어제 태어났다는 70억 명째 아기에게는 희망이 있다. 과거보다 나은 세상에서 살게 되리란 희망 말이다.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코메디닷컴 미디어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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