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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377> 전자책

중앙일보 2011.11.01 00:06 경제 13면 지면보기
베네딕트 수도원 장서관의 밀실 속에 숨겨진 금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 이 책에 손댄 이는 하나씩 죽어 나갑니다. 손가락에 침을 발라 책장을 넘기다가 책에 묻혀 둔 독이 몸에 퍼지는 거죠.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의 내용입니다. 하지만 검지를 혀끝에 갖다 댈 일, 몇 년 내로 없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전자책 때문입니다. 대신 태블릿PC나 전용 단말기 화면을 가볍게 밀거나 ‘터치’하겠죠. 아직 전자책이 낯설게 느껴지신다고요. 하지만 전자책은 오래전부터 우리 삶에 들어와 있었는걸요. 전자책의 역사를 되짚으며 정을 붙여 볼까요.


게임·SNS 곁들인 『해리 포터 시리즈』도 한 손에 들고 보게 되죠

심서현 기자



71년 첫 전자책 프로젝트 쿠텐베르크



최초의 휴대용 독서단말기 소니DD-1.
캐나다의 미디어학자 마셜 매클루언은 1964년 저서 『미디어의 이해』에서 활자물의 시대가 가고 전자시대가 온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최초의 전자책 프로젝트는 활자의 아버지 구텐베르크의 이름으로 시작됐습니다. 71년 미국인 마이클 하트가 시작한 가상도서관 구축사업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입니다. 전자화된 문서를 인터넷에 저장해 놓고 누구나 무료로 책을 내려받아 읽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죠. 인류의 자료를 디지털 형태로 저장해 놓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프로젝트는 지금도 진행 중인데, 저작권이 만료된 고전이나 저작권자가 동의한 책 3만6000권이 보관돼 있습니다(www.gutenberg.org).



로켓e북(左), 국내 첫 전자책 단말기 ‘하이북’(右)
85년 CD-ROM의 등장으로 전자책은 대중의 삶에 한 발짝 다가섭니다. 소니와 필립스가 기존 오디오 CD에 ‘컴퓨터 데이터’ ‘영상 데이터’라는 두 개의 새 트랙 유형을 더해 만들었죠. 가장 먼저 도입된 분야는 백과사전이었습니다. 인쇄했을 때의 방대한 부피를 CD 한 장에 담을 수 있다니! 당시로선 혁신적이었죠. 85년 미국 그롤리어사는 최초의 CD-ROM 전자책인 『미국 학습대백과 사전(Academic american encyclopedia)』을 내놓습니다. 이후 텍스트뿐 아니라 동영상과 음향 정보가 수록된 CD-ROM 백과사전들이 등장했고 93년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2장의 CD-ROM 안에 들어갔습니다. DVD-ROM 백과사전은 99년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처음 내놓았습니다.



이때까지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봐야만 하는 한계가 있었죠. 그래서 등장한 것이 휴대용 전자책 단말기입니다. 소니는 90년 최초의 휴대용 독서단말기 ‘DD(Data Discman)-1’을 출시했습니다. CD-ROM과 작은 키보드, 커서 패드가 달렸고 3.4인치 LCD 창에서 한번에 30자씩 10줄을 볼 수 있었습니다. DD-1은 일본에서 출시 8개월 만에 9만 대나 팔렸고 소니는 이듬해 성능이 향상된 4.5인치 화면의 ‘북맨’을 내놓습니다. 이들 기기는 큰 관심을 끌었지만 대중화되지는 못했습니다. 디스크맨은 550달러, 북맨은 900달러로 가격도 비싼 데다 아직 이것으로 볼 수 있는 책이 많지 않았으니까요.



와이파이 연결 가능한 소니의 전자책 전용 단말기 리더(Reader).
인터넷의 확산으로 전자출판은 새로운 전기를 맞습니다. PC통신으로 연재되는 사이버소설, 인터넷에서 발행되는 잡지인 ‘웹진(webzine)’도 전자책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죠. 가장 중요한 변화는 인터넷망을 통해 전용 단말기로 전자책을 내려받는 게 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90년대 후반 미국 기업들을 필두로 인터넷 연결 기능을 담은 전자책 단말기를 경쟁적으로 내놓습니다. 98년 미국 벤처기업 누보미디어가 내놓은 ‘로켓e북’은 0.6㎏ 무게에 PC와 연결해 2~5분이면 책 한 권을 내려받을 수 있었고, 소프트북 프레스의 ‘소프트북’은 여기서 한 단계 나아가 PC를 거치지 않고 직접 전화선을 연결해 인터넷 접속이 가능했습니다. 뒤이어 리브리우스의 ‘밀레니엄 리더’, 에브리북사의 ‘에브리북’과 같은 기기들이 나왔고 2001년에는 국내에서도 첫 전자책 단말기 ‘하이북’이 출시돼 관심을 모았습니다.



아이리버 전자책 ‘스토리’.
이 당시 전자책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것은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이었습니다. 2000년 3월 14일 0시1분, 킹의 신작 소설 『총알차 타기』 전자책이 인터넷에 선보이자 200만 명이 동시 접속해 시스템이 마비됐습니다. 인기 작가가 인쇄본이 아닌 전자책으로 신작을 발표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이 책은 출간 24시간 만에 40만 건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합니다.



전용 단말기의 성능은 꾸준히 개선됐습니다. 2006년 소니가 내놓은 전자책 PRS-500은 PDF나 JPG 파일, MP3 형식의 오디오 파일 재생 기능까지 갖췄죠. 그럼에도 2000년대 중반 들어 전자책 시장은 침체기를 맞습니다. ‘닷컴 버블’ 붕괴 영향도 있었지만 핵심은 ‘볼 만한 책이 없다’는 거였습니다. 기존 출판업체들이 인쇄시장을 깎아 먹을까 우려해 전자책 출판에 아무래도 소극적이었던 거죠.



2007년 아마존 ‘킨들’ 등장으로 일대 혁명



2007년 출시된 아마존의 전자책 리더기 ‘킨들’은 이후 펭귄과 랜덤하우스 같은 대형 출판사들이 종이책과 전자책을 동시에 출간하게 만들었다. 사진은 지난 9월 선보인 아마존의 ‘킨들 파이어’. [중앙포토]
2007년 일대 혁명이 일어납니다. 세계 최대 인터넷서점 아마존이 전자책 리더기 ‘킨들’을 내놓았습니다. 아마존이 보유한 8만8000권의 전자책과 신문·잡지를 간편하게 내려받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강력한 유통력과 방대한 회원을 보유한 아마존 발(發) 독서 혁명이 시작된 거죠. 그러자 펭귄과 랜덤하우스 같은 대형 출판사들이 2009년부터 모든 신작을 종이책과 전자책으로 동시에 출판하기로 결정합니다. 2009년 아마존의 경쟁사 반스앤노블이 전용 단말기 ‘누크’를 내놓았고 국내 업체 아이리버도 ‘스토리’를 출시했습니다. 이후 애플이 아이패드와 전자책 장터 ‘아이북스’를 내놓고 구글도 ‘구글 e북’ 스토어를 개설하면서 전자책 시장은 글로벌 정보기술(IT) 공룡들의 불꽃 튀는 전쟁터가 됩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전자책을 접할 창구가 PC·스마트폰·태블릿PC·전용 단말기로 다양해졌습니다. 전자책 전용 단말기의 장점은 가볍고 작으며 태블릿PC보다 값이 저렴하고 배터리 사용시간이 길다는 겁니다. 인터넷으로 동영상과 음악을 즐기고 통신 기능도 겸하고 싶다면 물론 태블릿PC를 이용해야겠죠.



혼자 기획·집필·편집·인쇄 … 100만 부 팔기도



전자책 시대는 작가에게도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기획·집필·편집·인쇄를 혼자서 해내는 ‘1인 출판’이 가능해졌죠. 종이책을 단 한 권도 내지 않고 밀리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 이도 있습니다. 미국 범죄소설 작가인 존 로크는 아마존 킨들의 ‘직접 출판서비스’를 통해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전자책을 냈고 100만 부 이상의 판매액을 올렸습니다. 출판사에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은 덕에 책값을 단돈 99센트로 책정할 수 있었죠. 26세 미국 시골 처녀 어맨다 호킹은 자신이 쓴 소설을 들고 출판사를 찾아갔지만 가는 곳마다 퇴짜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아마존을 통해 8권의 전자책을 내고 19만 권을 판매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죠.



국내에서도 김성민씨가 1인 출판사 ‘아이웰콘텐츠’를 세워 출간한 소설 『장미와 찔레』는 스마트폰에서만 48만 건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했습니다.



기존 인터넷서점을 통한 1인 출판도 가능합니다. 예스24와 알라딘, 리브로와 같은 서점들이 제공하는 1인 출판용 전자책 유통 서비스를 이용하면 됩니다. 유페이퍼(www.upaper.net) 사이트에 회원 가입한 뒤 이곳의 전자책 제작 툴을 사용해 콘텐트를 등록하면 해당 업체가 검수를 거쳐 유통과 판매까지 맡아 해 줍니다. 교보문고도 최근 1인 출판 시스템인 ‘펍플(PUBPLE)’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개인 저자가 교보문고 시스템에 등록한 뒤 전자책을 직접 만들어 유통할 수 있고, 원하면 종이책 출판도 해 줍니다.



1인 출판은 소수나 비주류의 몫이 아닙니다. 전 세계에서 4억5000만 부 이상이 팔린 판타지 소설 『해리 포터』 시리즈가 내년에 전자책으로 출간됩니다. 게다가 시리즈 전권은 ‘포터모어(www.pottermore.com)’라는 웹사이트(사진)에서만 독점 판매된다는군요. 아마존이나 애플 아이북스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유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것이죠. 사이트에서는 전자책뿐 아니라 디지털 영상, 롤플레잉 게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까지 결합한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겠다는 것이 저자 조앤 K 롤링의 포부입니다. 지난 7월 31일 사이트를 열어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이미 5억5000만 건이 넘는 페이지뷰를 기록했습니다. 내년에 정식 출간되면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통해서도 볼 수 있게 하겠다고 합니다. ‘나만의 콘텐트’를 가진 이에게 전자책이 열어 줄 기회의 장이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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