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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 복지논쟁에 ‘가족’은 없다

중앙일보 2011.10.18 00:47 종합 37면 지면보기
고선주
한국건강가정진흥원장
무상급식에서 시작된 복지논쟁이 정가의 화두로 자리 잡은 듯하다. 그런데 이 논쟁에 그동안 1차적 복지를 담당해온 가족이 보이지 않는다. 저소득층 중심의 복지정책을 중산층으로 대상을 단순히 확장하는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된다. 대상 확대 논쟁의 출발점은 지난 8월 무상급식 논쟁이다. 그 이후 불붙듯이 ‘무상’ 혹은 ‘반값’ 등으로 늘어나면서 고민과 합의보다는 재정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가 부각됐다. 최저 수준의 삶을 어디까지 보장하고 어떻게 향상할 것인지 사회적 책임에 대한 합의를 하기 이전에 재정부담 문제로 직행해버린 것이다.



 복지논쟁의 핵심은 보육·의료·교육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가족이 담당해오던 것을 사회가 나누겠다는 것이어서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범위와 수준 차이가 있을 뿐 여야 구분 없이 거의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인간은 가족 울타리 안에서 일상의 삶을 영위하고 성장해 성인이 돼 다음 세대를 생산해 노동력을 제공한다. 지금까지 사회의 지원을 받지 않고 가족이 재생산 기능을 독자적으로 수행해왔다. 최근의 저출산·고령화 현상은 가족의 돌봄 기능에 과부하(過負荷)를 야기했고 나아가 국가 존속에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도 복지논쟁에는 그동안 주체적 기능을 담당해온 가족 문제가 빠져 있다. 자녀 양육이 너무 힘들다고 호소했더니 가족의 양육 지원 방안을 내놓지 않고 어린이집 보육료만 내놨다. 가족 울타리 밖에서 애를 키우라는 소리다. 아동의 성장에서 생후 1년은 기본적 신뢰감이 형성되는 시기로 주양육자(부모)와 애착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만약 부모가 직접 자녀를 양육한다면 직장의 여건과 상관없이 그렇게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게 아니면 아이와 부모의 입장에서 가장 나은 차선책을 보장해야 한다. 가령 전문 돌보미가 집을 방문해 영아를 돌봐주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어린이집 중심의 지원 확대에 그쳐서는 곤란하다. 자녀 양육 지원을 위한 하나의 서비스로 획일화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다양화하고 이들 간의 연계와 혼합이 가능해야만 한다.



 가족은 단순히 개인의 집합체가 아니다. 무조건적인 투자와 헌신 그 자체다. 다른 어떤 집단과도 차별화되는 사회의 기본단위가 바로 가족이다. 개인에 대한 직접 지원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의 역량을 강화하는 간접 지원이 먼저 가는 게 맞다. 개인에 초점을 맞춘 복지 급여와 서비스는 서구식이다. 가족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긴 했지만 아직 한국에서 가족의 가치는 높은 편이다. 사회가 책임을 분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의 1차적 기능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과 상담을 통해 가족의 역량 자체를 강화하고, 개별 가족들이 연대하여 다른 가족을 함께 돌보고 책임질 수 있는 지역 돌봄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만 복지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고선주 한국건강가정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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