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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공공건축, 시민의 품격이다

중앙일보 2011.10.18 00:46 종합 37면 지면보기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건축학
몇 년 전 직항로가 열리면서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는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의 관문이 되었다. 시벨리우스가 작곡한 ‘핀란디아’의 배경이었던 호수와 숲,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장악했던 노키아가 떠오를 뿐 발트해 끝자락에 있는 핀란드는 우리에게 아주 먼 나라였다. 그런데 핀란드에는 시벨리우스와 노키아 못지않게 온 국민이 자랑하는 알바 알토라는 건축가가 있었다. 길거리 누구에게 물어도 알고 있는,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쯤 되는 사람이다. 알토를 국제적 반열에 올린 작품은 시청사·도서관·공립병원·공립대학·음악당·연금공단·노동조합과 같은 공공건축이다. 핀란드처럼 높은 수준의 공공건축이 있는 곳에서는 시민의 삶의 질도 그만큼 높다.



 우리나라의 공공건축도 권위의 옷을 벗고 시민에게 열리고 있다. 건물 앞에 있던 주차장이 시민 마당으로 바뀌고, 현관 바로 앞까지 들어가던 귀빈 차도도 사라지고 있다. 육중한 화강석 기둥과 벽으로 에워싸였던 1층도 개방되고 있다. 하지만 시민을 끌어당기는 고품질·고품격 공공건축은 아직 드물다. 특히 크고 번드르르한 건물일수록 막상 가까이 가보면 실망하기 일쑤다. 정부는 민간건축의 평균치보다 높은 예산을 공공건축에 책정한다. 입찰·계약·공사과정에서 책정된 예산의 10% 이상을 줄이지만 면적당 최종 공사비는 일반 민간건축보다 높다. 하지만 비슷한 공사비를 들인 민간건축보다 품질은 떨어진다. 투자 대비 결과가 초라한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나의 건물은 기획·계획·설계·시공·관리라는 길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세워진다. 공공건축의 품질이 낮은 원인을 밝히려면 단계별 분석이 필요하지만 결론을 먼저 내리면 이렇다. 우리나라에는 공공건축의 총체적 품질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책임을 묻는 시스템이 없다. 첫째, 건축을 설계하는 건축사사무소와 이를 시공하는 건설사를 ‘질’보다는 ‘양’으로 평가하고 선정한다. 둘째, 건축사사무소의 설계안이 시공 현장으로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거나 차단된다. 셋째, 잘 만들어도 포상이 없고, 못 만들어도 책임이 없다. 공무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규정과 절차를 잘 지키는 것이다. 고품질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공무원은 오히려 감사에서 의심과 지적을 받을 수 있다. 나는 좋은 건축을 만들려고 불합리한 제도 앞에서 분노하다가 결국 두 손을 들어버리는 건축가를 많이 보았다.



 2000년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공공건축의 수준을 높일 것을 모든 정부 부처에 주문했다. 그 후 디자인, 생애주기(生涯週期) 동안의 경제성, 지속가능성, 사용자의 만족도를 평가해 매년 ‘좋은 공공건축상’을 주고 있다. 국가의 수반이 왜 지방의 작은 건물에까지 관심을 둘까. 좋은 건축은 도시에 생기를 불어 넣고 시민의 삶을 풍부하게 하기 때문이다.



 외국 건축가가 서울에 올 때 내가 추천하는 곳은 폐기된 정수장을 재생한 ‘선유도 공원’이다. 담쟁이덩굴이 골조가 드러난 콘크리트 기둥을 타면서 자라고 그 사이로 물이 흐른다. 펌프실은 근사한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좋은 공공건축과 공원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던 서울시의 정책결정자, 조경가, 건축가의 합작품이다.



 건축은 한번 세워지면 사람의 수명보다 긴 세월을 버티며 삶의 그릇이 된다. 얼핏 보기엔 무덤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품격이 우러나오는 그런 공공건축을 시민은 기다리고 있다.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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