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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이살 “아랍에 서구식 민주주의 어울리지 않아”

중앙일보 2011.10.18 00:37 종합 14면 지면보기
투르키 알파이살 사우디아라비아 왕자(왼쪽)가 1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김영희 대기자(오른쪽)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정보국장과 주미대사를 역임한 알파이살 왕자는 “민주주의가 최선은 아니며 각국의 전통과 역사에 걸맞은 체제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빈 기자]


사우디아라비아 왕자는 아랍의 재스민 혁명 같은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판에 박힌 말만 할 것이라는 게 상식이다. 투르키 알파이살(66) 사우디 왕자는 그런 편견을 단숨에 날려 버렸다.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주미·주영대사를 지낸 그는 “시리아 사태는 결국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퇴임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을 만큼 솔직했다. 사우디 왕실의 실세 중 한 사람인 그는 재스민 혁명, 이란의 위협, 팔레스타인 문제 등 까다로운 질문에 거침없이 응수했다. 그것도 아주 세련되고 부드러운 어조로. 자리를 함께한 문정인 연세대 교수도 같이 물었다.

김영희 대기자, 주미 대사 지낸 알파이살 사우디 왕자 인터뷰



 김영희 대기자=재스민 혁명이 아랍권에 민주주의의 씨를 뿌렸다면 앞으로 전면적 민주주의가 꽃필 것인가.



 알파이살 왕자=민주주의라는 용어에 나는 거부감을 느낀다. 아랍 상황에 맞는 용어가 아니다. 그보다는 공정한(equitable) 대의제도가 옳다. 미국·유럽은 민주주의를 성배(聖盃)처럼 신성시하며, 선하고 공정한 국가라도 민주주의를 믿지 않으면 따돌린다. 아랍국가들엔 대의제가 더 의미가 있다. 이집트인은 이집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김=재스민 혁명이 튀니지·이집트·리비아에서 독재자들을 추방하는 데 성공했다.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작업은 순조로운가.



 알파이살=혁명은 바로 안정과 안보를 가져오는 종착역이 아니다. 한국도 오늘의 성공이 있기까지 긴 투쟁의 역사를 거치지 않았는가. 재스민 혁명을 겪은 나라에서 새 질서가 자리 잡기까지 10~20년이 걸릴 수 있다.



 문정인 교수=사우디는 이웃의 재스민 혁명에 어떻게 대처하나.



 알파이살=사우디 체제는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상황을 개선하고 있다. 동시에 이슬람 원칙에 입각한 전통과 역사·사상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경제·사회 개혁을 하면서도 고유의 전통을 이어 가려 한다.



 김=현재 이집트에서 권력을 잡은 군부가 지금껏 누리던 권력을 민간에 넘길까.



 알파이살=역사적 경험에 비춰 특정한 기득권 세력이 특권을 포기하는 건 매우 어렵다.



 김=시리아 정부가 반정부 시위를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있다. 시리아 시민운동이 어떻게 될 걸로 보는가.



 알파이살=결국 시리아 정권이 바뀌고 알아사드 대통령이 사임할 것이다. 정권 교체가 빠를수록 유혈사태도 최소화된다. 압둘라 사우디 국왕은 지난 8월 “시리아 정부는 시위대 사살을 중단하고 국민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며 시리아 주재 사우디 대사를 소환했다. 그러자 걸프협력협의회(GCC) 국가들이 시리아 주재 대사를 소환하고 시리아 사태를 아랍연맹에 넘겼다. 시리아에 대한 집단압력의 행사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김=사우디가 국왕의 국정자문기구(슈라)가 아니라 의회를 통해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게 효과적이지 않은가.



 알파이살=다른 사람의 옷을 빌려 입으면 소매가 짧거나 허리가 맞지 않는 것 같은 문제가 생긴다. 민주주의는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의회제도도 사람들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미래에 책임을 지게 하는 수단이다. 우리는 다른 나라들로부터 좋은 제도를 도입하는 데 관심이 있지만 그것도 사우디의 몸에 맞아야 한다.



 문=이란의 핵 위협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알파이살=사우디는 아랍권의 비핵 지대화를 주창하고 있다. 이란뿐 아니라 이스라엘도 동참해야 한다. 지난해 핵확산금지조약(NPT) 검토회의에서도 NPT 서명국이 모두 중동의 비핵 지대화에 동의했다.



 김=미국의 이라크·아프가니스탄전쟁은 성공인가 실패인가.



 알파이살=지금까지 상황으로 보면 모두 실패다. 오늘날 이라크에는 혼란과 무질서가 횡행하며 전기 등 기본적 서비스도 부족하다. 아프간에서는 미국이 최근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을 때 승리를 선언하고 아프간에서 병력을 철수했어야 하는데 명예로운 철수 기회를 놓쳤다. 미군이 아프간에 오래 주둔할수록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다.



 김=사우디는 한국 석유 소비량의 3분의 1을 공급하는 최대 석유 수출국이자 한국의 최대 해외 건설시장이다. 두 나라가 협력관계를 더 강화할 여지는 있는가.



 알파이살= 경제적 협력뿐 아니다. 인적 교류 등 문화적 유대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나는 한국인들이 사우디에 더 많이 와서 사우디 사람과 우정을 나누기를 바란다. 특히 한국 학생들이 사우디 대학에 와서 공부하길 바란다. 현재 전 세계에서 12만 명의 학생이 사우디 정부의 장학금을 받고 사우디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한국 학생은 한 명도 없다. 많은 한국 학생이 사우디 정부의 장학금으로 사우디에서 공부하길 바란다.



정리=정재홍 기자, 손광균 jTBC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투르키 알파이살(66) 왕자=압둘라 사우디 국왕의 조카다. 1968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미국 조지타운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77년부터 25년 동안 사우디 정보국장을 지냈으며 이후 주영대사와 주미대사를 역임했다. 현재 ‘킹 파이살 센터’ 이사장으로 유력한 차기 외무장관 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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