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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저야 일본인이니까 징용 피해자 돈 주기 아깝지요 … 한국 보훈처는 왜 그랬나요?

중앙일보 2011.10.18 00:34 종합 39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안녕하시무니까. 국가보훈처장님. 저는 일본의 사회보험청 장관입니다. 연금 업무 담당이죠.



 한국의 보훈처장은 차관급이라고 들었습니다. 저와 급도 같고 해서 실례를 무릅쓰고 글월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느닷없이 웬 편지질이냐고요? 실은 어제 아침자 한국 신문을 보고 한참 웃었답니다. 공무원들은 어디든 어쩜 그리 똑같은지.



 한국의 보훈처에서 6·25전쟁 전사자 유족에게 보상금으로 단돈 5000원을 주기로 했다면서요. 그것도 원래는 시효가 지나서 안 줘도 될 것을 그놈의 행정소송에서 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면서요. 사병은 옛날 화폐로 5만환이니까 10환당 1원, 그렇게 5000원이 됐다고요.



 그런 계산은 나도 많이 해봤걸랑요. 특히 한국인에게 말입니다. 사회보험청은 전국에 ‘보험사무소’ 조직을 두고 있습니다. 1996년인가요. 나가사키 보험사무소에서 한국인 징용 피해자 김순길 할머니에게 후생연금보험 탈퇴금으로 35엔을 주기로 결정했지요. 엔화 가치가 천정부지로 오른 지금 환율로 쳐도 530원이네요. 그래도 초코파이 두 개는 사 드실 수 있겠죠? 할머니가 일제시대 미쓰비시 중공(重工)의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일할 때의 봉급을 곧이곧대로 반영했기 때문이랍니다. 사실 저도 내심 미안하긴 하더군요.



 하지만 어쩝니까. 전 일본인입니다. 김 할머니 뒤에 수많은 징용 피해자가 있는데 한 사람만 생각할 수는 없지요. 저도 처음에는 연금 수령 자격 상실 후 5년 이내여야 돈을 준다는 후생연금법을 방패 삼아 단 1엔도 안 주려 했어요. 근데 95년 말에 청구일 기준으로 법 해석이 바뀌면서 몇 푼이나마 지급할 길이 열린 거지요. 게다가 외무성에선 “한·일협정으로 모든 보상은 끝났다”며 얼마나 눈치를 주던지…. 35엔도 다행으로 아셔야 해요. 근데 처장님. 한국 보훈처도 처음엔 “전사한 지 5년 넘었으니 못 주겠다”고 했다면서요? 그것 땜에 제가 어제 혼자서 한참 웃었답니다. 닮았어요. 우린!



 물론 저희 문제는 35엔으로 끝나지 않았죠. 김순길 할머니는 35엔이 말도 안 된다고 불복했어요. 히로시마 보험사무소가 같은 시비에 휘말려 한국인 46명에게 각각 30엔~96엔씩 드렸고요. 도야마 보험사무소도 16엔, 18엔을 각각 지급했어요. 재작년엔 7명에게 99엔씩 드렸고요. 근데 처장님. 일본인인 저는 그렇다 치고, 한 치 건너 두 치라는데, 한국 보훈처는 왜 그랬어요?



 진작 말씀 드려야 했지만, 일본엔 지금 사회보험청이 없답니다. 일을 데데하게 처리하다 조직이 통째로 날아갔어요. 5095만 건의 연금기록을 분실하는 바람에 자민당 정권까지 무너지게 만들었지요. 작년 1월 공무원을 뺀 특수법인 ‘일본연금기구’로 바뀌었답니다. 그러니까 저는 유령장관인 셈입니다. 몸조심하셔야겠어요. 남의 일 같지가 않아요.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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