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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시민봉기’가 서울을 살릴까 ?

중앙일보 2011.10.18 00:33 종합 39면 지면보기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1860년대 조선에 ‘민란의 시대’가 열렸다. 전국 70여 개 지역이 분노한 민중봉기에 휩싸였다. 그중 가장 규모가 컸던 진주민란엔 초군(나무꾼) 수백 명이 선발대로 나서 관료와 부패사족들의 집을 불태웠다. 안핵사로 파견된 박규수는 조정에 이렇게 보고했다. “난민의 준동이 이러한데, 만약 천재지변이나 비상사태가 닥치면 흙더미처럼 무너지는 형세가 순식간일 것입니다. 생각이 이에 미치면 두려워 떨립니다.”



 서울 시장선거를 앞둔 집권여당의 보고서에도 이런 말이 쓰여 있을까? 박원순 후보가 야인 모습으로 대중 앞에 나타났을 때만 해도 시민단체의 판촉행사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안철수가 불쏘시개를 자처하고, 민주당이 흥행사로 나서고, 군소 야당들이 임시제휴를 체결하자 판세가 달라졌다. 시민연합군이 결성된 것이다. 관군과 초군의 대결, 정당과 시민운동의 대결은 한국 정당사에서 유례없는 빅매치이자, 지금 세계 각 도시에서 점화되는 들불저항의 향방을 가늠하는 실험대이기도 하다. 마침 ‘선거의 여왕’ 박근혜가 안핵사로 나섰으므로, 나·박(羅·朴) 정규군이 시민연합군을 진압할 것인지 사뭇 궁금해진다.



 기존 정당들이 제구실을 못할 때 시민운동이 부상하는 것은 미국과 유럽에서 흔한 현상이다. 민주주의 활력소가 따로 없다. 한국의 대중정당이 시민을 대변하지 못했고, 서울의 10년 정치가 토건과 디자인으로 점철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박원순 후보를 앞세운 시민연합군의 공세는 ‘예상된 봉기’임에 틀림없다. 1000만 주민, 1000만 일자리, 한국경제의 40% 이상을 책임지는 ‘서울공화국’을 과연 시민운동가에게 맡길 것인가, 이 질문이 던져졌다는 것만으로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진일보했다.



 그러나 갈채는 거기까지다. 관군의 깃발이야 항상 구태의연해서 굳이 말할 것은 없겠지만, 시민연합군의 깃발도 그리 새로운 울림이 없다. 관군을 이끄는 당찬 여(女)장군은 퇴역수장의 실정(失政)을 의식해서인지 ‘생활공감정치’로 방향을 바꿨는데, 시민군 사령관은 ‘희망체감정치’로 맞받아쳤다. 생활특별시와 희망특별시, 대동소이하다. 서울을 LA, 혹은 베를린처럼 만들 것인지 등의 진취적 제안은 물론 서울시민이 지향할 시민윤리는 무엇이고, 지방 대도시에 대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책임성 발언도 없다. 보수와 진보를 대변하는 두 장수의 ‘서울 철학’이 애매하다. 10년 실정을 대체한다면, 그 핵심 개념은 무엇인가?



 대체 불평등과 공론 갈증을 해소할 ‘서울의 공공철학’은 무엇인가? 서러운 실직자와 갈 곳 없는 노인들, 아이를 맡기고 동동걸음을 치는 취업맘들이 희망의 눈물을 글썽이도록 만드는 폐정개혁안은 무엇인가? 세계 10대 도시 서울을 고달픈 서민들과 부유층의 공생도시로 만들 지혜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답이 없다면 시민연합군도 너무 고답적이지 않은가? 세계적 도시들은 모두 개방성을 통해 거점도시로 거듭났다. 탈이념의 시대에 진보연합은 피아구분의 그 거친 태도와, 외국에 빗장을 거는 수구적 대외기피증을 과연 버릴 수 있을까? 그 소소한 공약이야 누구든 다 낼 수 있다면 말이다. 2011년 서울, 그 ‘장쾌한 봉기’가 성공할 필수조건은 가교리더십(bridging leadership)이다. 강북과 강남의 균열을 잇는 시민정신의 교각, 서민과 부유층을 한데 묶는 공공선의 교각이 절실하다.



 이게 걱정이다. 박원순 참호에 겹겹이 진을 친 후원군은 일당백의 진보명사들과 진보단체의 화려한 무지개연합이다. 전략적 제휴를 통한 서울공화국 탈환이 이명박(MB)정권의 ‘탈시민정치’를 탄핵하고 진보운동에 교두보를 구축해줄 것이기에 그렇다. 그 명분은 충분히 좋으나, 피아를 호명하는 ‘배타적 결속(bonding)’에 더 집착하는 한국 시민운동의 치명적 약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시민운동은 계층포괄적 전국조직이 아니다. 환경운동처럼 그런 단체도 일부 있으나, 특수이익을 좇는 전문가 중심의 주창그룹이 대세다. 규모가 가장 큰 참여연대는 회원이 고작 1만 명이고, 소수 명사들의 판단에 주로 의존한다. 런던시장을 배출한 시민단체 ‘런던시민들(London Citizens)’은 교회, 모스크, 학교, 학생, 노조들을 포괄하는 계층횡단적 마을조직연합이다. 우리에겐 이런 조직이 없다.



 진보든 보수든, 이념적 선명성과 정치적 이해가 앞선다. 이들이 계층 간 가교를 놓기보다 ‘우리 집단’의 내부결속에 더 치중한다면 민주주의는 쇠퇴한다. 개방성을 향한 진화의 중간 단계쯤에 놓인 한국의 시민운동이 시정(市政)을 장악하면 지배구조는 어떻게 될까? 무엇보다 주창그룹들이 내세울 편향적 정책들, 임시 휴전한 야 4당 간 각축전, 시민단체의 무차별적 권리주장 등을 이 소탈한 초보 정치인이 감당할 수 있을까? 시민봉기에 대한 원론적 기대와 현실적 우려가 엇갈리는 가운데 그를 태운 호랑이는 질주하기 시작했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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