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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재동초 아이들 죽음체험 “왕따시킨 것, 도둑질한 것 후회돼요”

중앙일보 2011.10.18 00:27 종합 20면 지면보기
서울 가회동 닭문화관이 열고 있는 특별전 ‘나의 장례식’에 참여한 서울 재동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들이 손수 꾸민 상여 위에 올라탔다. 아이들에게 죽음이란 마냥 어두운 게 아니다. 아이들이 스티로폼에 그린 현대판 상여장식이 다채롭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내가 죽거든 태우지 말고 묻어 주오. (…) 상자 안에 물 먹는 하마랑 향기제 좀. 내 관에 곰팡이 슬면 안 되니깐. 내 개도 넣어 주오. 사료 한 포대도.”

입관식·유언장·상여 장식 …
자신 되돌아보는 기회로



 서울 가회동 닭문화관에서 열리고 있는 ‘공공미술-나의 장례식’ 특별전. 입관 체험(관에 들어가보는 의식)을 마친 한 초등학생이 남긴 유언장이다. 전시 프로젝트에는 가회동 아네스공부방 방과후 수업에 다니는 초등 4학년~중학 2학년생 19명이 참여했다. 교육 과정 전체가 하나의 전시가 된 보기 드문 사례다.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 뭘 알겠느냐는 편견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전시장에서 흘러나오는 영상물. 죽음 뒤엔 무엇이 있을 것 같으냐는 학예사의 질문에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이렇게 답한다.



전시장에서 입관 체험 중인 관람객.
 “사람의 영혼 안엔 영혼이 있고, 죽음 뒤엔 죽음의 죽음이 있어요. 그렇게 가다 보면 언젠가 끝도 있겠죠. 존재가 없는 상태요.”



 유치원생 때 자동차 사고로 엄마를 잃은 아이는 “죽은 뒤 사후세계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해 대학까지 나오면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전시에 앞서 아이들은 9차례에 걸쳐 ‘지금의 나’ ‘미래의 나’ ‘상여 스케치’ ‘꼭두(상여 장식 조각) 만들기’ ‘입관식’ 등 자신을 돌아보고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밟았다. 평범한 아이들이 대번에 철학자요 예술가가 됐다.



 현재의 자신을 복잡한 미로로 표현한 작품, 20년 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을 상상한 그림은 아이들의 불안한 정체성을 보여줬다. 속 깊은 아이는 “하늘나라 갈 때 누구든 부담 갖지 않고 편안히 갈 수 있도록” 초가집 모양 상여를 그리기도 했다. 직접 만든 꼭두로 상여를 꾸민 아이들은 입관 의식을 치렀다. 3분간 죽음을 경험한 뒤 각자 유언장을 남겼다.



 “왕따시킨 것, 왕따당한 것, 도둑질한 것…. 안 좋은 일은 모두 잊어버리고 새롭게 태어날 것. 친구들아, 다음 생에 만나자!”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한 학예사 유성이(47·문화예술교육활동가)씨는 “교육 과정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물을 전시하면 교육 효과가 배가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낙서조차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 박물관 문을 늦게까지 열어놔 아이들이 수시로 드나들게 했다. 덕분에 박물관은 아이들의 사랑방이 됐다.



 아네스공부방 클라리나 수녀는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기 안의 예술성을 발견하는 등 여러 아이들이 기대 이상의 도움을 얻었다. 왕따 경험이 있던 아이의 생활 태도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말했다.



 이 모든 프로젝트는 서울시교육청 지원금 160만원을 포함해 300여만원으로 진행했다. 입장료 수입으론 운영비도 못 대는 사립박물관의 열악한 재정 탓에 학예사가 기획·교육·인터뷰·촬영·재료준비·전시까지 도맡았다. 전시는 이달 말까지. 02-763-9995.



글=이경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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