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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이 준비하는 스타 도시락

중앙일보 2011.10.18 00:11
팬들이 연예인에게 보내는 조공 도시락은 이제 연예계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사진은 탤런트 박시후를 위해 일본 팬들이 드라마 ‘공주의 남자’ 촬영장으로 보낸 도시락과 영화 ‘만추’의 주연 탕웨이가 시사회장에서 언급한 도시락.



맛 좋은 영양식 곱게 싸 가요, 우리 ‘오빠’가 먹을 거니까요

조공은 옛말? 아니다. 21세기에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나라와 나라 대신 연예인과 팬들로 대상이 바뀌고 돈이나 보석이 아닌 도시락으로 변했다. 내로라하는 아이돌그룹이 출연하는 날이면 음악 방송 대기실은 도시락 조공 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팬들은 “엄마가 자녀에게 좋은 것만 먹이고 싶듯 우리도 스타에게 좋고 예쁜 것만 먹이고 싶다”고 말한다.



연예계 문화로 자리잡은 조공 도시락



 조공(서포트)은 팬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보내는 선물을 말하는데 도시락이 가장 대표적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 뿐 아니라 촬영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제작진과 동료 연예인의 것까지 준비하는 것이 보통이다. 최근에는 얼만큼 조공 도시락을 받는가가 스타들의 인기 척도로 여겨질 정도로 도시락 선물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방송 관계자들은 “도시락을 받지 못하면 인기가 없다고 느끼는 연예인이 있는가 하면, 연예인들 사이에 도시락 받기를 두고 묘한 경쟁 심리까지 생겨났다”고 귀띔한다.



 라디오와 음악방송 현장은 조공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장소다. MBC라디오 프로그램 ‘윤하의 별이 빛나는 밤에’의 강수희 작가는 “지난해 슈퍼스타K2의 TOP11이 출연한 날에는 TOP11의 팬들이 모두 도시락을 보내 마치 뷔페를 보는 것 같았다”고 떠올렸다.



 계속되는 촬영으로 지친 연예인과 제작진에게 팬들이 보낸 도시락은 활력소다. 도시락을 받은 연예인은 이것으로 동료 연예인과 제작진을 대접할 수 있다. MBC드라마 ‘불굴의 며느리’에 출연 중인 신애라는 며칠 전, 도시락을 받고 팬들에게 직접 감사의 문자를 보냈다. 현빈과 함께 영화 ‘만추’에 출연한 탕웨이는 영화 시사회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을 묻는 질문에 ‘팬들의 도시락’을 꼽았다.

 

도시락 받은 연예인과 보낸 팬 모두 만족



 팬들은 평소 만나기 어려운 연예인을 직접 보고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배우 엄태웅의 팬 이수경(21)씨는 “오빠가 출연한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과 드라마 ‘닥터 챔프’ 촬영장에 도시락을 가지고 방문했는데 오빠 기도 살려줄 수 있고 오빠와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 좋았다”고 말한다. 이씨는 최근에도 다른 팬들과 함께 영화 ‘네버엔딩스토리’의 촬영장을 방문했다. 밤샘 촬영으로 지쳐있던 엄태웅은 “평소 잘 챙겨주지도 못하는데 이렇게 찾아와 좋은 선물을 줘 고맙다”며 웃어 보였다.



 한류 열풍으로 일본이나 중국, 대만, 홍콩 등 다른 나라 팬들도 조공 도시락을 보낸다. 지난 7월, KBS드라마 ‘공주의 남자’ 촬영 현장에는 100명 분의 도시락이 배달됐는데 일본 팬 2명이 주인공 박시후를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주먹밥과 과일칩 등 영양식으로 채워진 도시락은 그가 사극에 출연 중이라는 사실까지 고려한 듯 예쁜 한복천에 포장되어 있었다. 세심한 배려에 감동한 박시후는 일본 팬들과 사진을 찍고 악수를 나누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3년 넘게 박시후를 좋아하며 여러번 선물을 보냈다는 일본 팬 타무라 츠아키(가명)는 "이렇게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는 것이 꿈만 같다”며 눈물을 보였다.



인스턴트 대신 좋은 재료로 만든 집밥 인기



 조공 문화가 정착되면서 도시락도 진화하고 있다. 재료는 무조건 최상급을 요청한다.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기본, 인스턴트 식품보다는 집에서 만든 메뉴, 샐러드와 빵 같은 양식보다는 한식 메뉴가 인기다. 영화 ‘만추’ 시사회 도시락과 박시후의 도시락을 맡은 ‘팬심짱’의 정라영(사진)씨는 “바깥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긴 만큼 집에서 만든 밥을 선호하는 분들이 많다”며 “직접 만든 식혜와 양갱, 이동할 때 먹을 수 있는 말린 과일칩, 수박이나 자몽으로 만든 슬러시가 반응이 좋다”고 전했다. 일부 연예인들은 정씨의 식혜를 먼저 알아볼 정도다.



 연예인의 일정이나 건강 상태에 따라 메뉴가 달라지기도 한다. 아이돌그룹 팬 사이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나무그늘 PARK’의 박현정 대표는 “팬들은 공연이 있는 연예인에게는 스테미너 메뉴, 가수들에게는 목에 좋은 음료, 리허설이나 연습 때는 든든한 식사가 될 수 있는 메뉴를 제공하고 싶어한다”고 설명한다. 연예인이 방송에서 좋아하는 음식을 말한 다음 날부터는 해당 메뉴가 계속 배달되기도 한다.



<송정 기자 asitwere@joongang.co.kr/사진=황정옥 기자/촬영 협조=팬심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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