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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나 이렇게 잘났소’보다는 …

중앙일보 2011.10.17 00:46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종윤
내셔널 데스크
뜨겁다. 모든 선거가 다 그렇지만 이번은 특히 더하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접전이다. 말의 성찬으로 무장한 공약은 춤을 춘다. 공약은 화려할 수밖에 없다. 표를 얻기 위한 격렬한 몸부림이다. 가가호호 프로젝트, 알뜰살림 프로젝트, 북새통 프로젝트…(나경원 후보). 희망둥지 프로젝트, 배움터 프로젝트, 열린시정 2.0…(박원순 후보).



 이들 공약, 공통점이 있다. 찬찬히 보면 서울의 품질을 오세훈 전 시장 때보다 개선하겠다는 얘기다. 고품질 혁신의 선언이다. 그런데 넘친다. 새 시장의 남은 임기는 2년8개월. 이 기간에 다 뜯어고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공약은 ‘품질 과잉’이란 얘기가 나온다.



 혁신에는 딜레마가 따른다. 우수한 제품을 개발한 기업이 품질 향상에만 매달리다 보면 고객의 수요를 맞추지 못해 시장에서 도태될 때가 있다. 1980년대 D램 반도체는 주로 대형 전화 교환기나 컴퓨터에 쓰였다. 일본 기업들은 고도 기술로 D램을 만들어 미국 기업을 제치고 반도체 대국이 됐다. 이후 D램 수요처가 대형 컴퓨터에서 개인용 컴퓨터(PC)로 바뀌었다. 시장에서는 과잉 품질·고가격의 제품보다는 적당한 품질·싼 가격의 D램이 필요했다. 그런데도 일본 기업들의 기업문화는 변하지 않았다. 품질 좋고 비싼 제품만 고집했다. 일본 업체들이 경쟁력을 잃은 이유다. 그 자리를 한국과 대만 업체가 파고들었다.



 오세훈 전 시장도 화려한 정책만 내세웠다. 디자인 서울, 맑은 서울. 우아했다. 하지만 정작 시민들의 한숨을 덜지 못했다. 살기 팍팍한 현실 말이다. 이럴 때 필요한 건 거창한 게 아니다. 시민이 원하는 걸 간단히 표현하면 2050이다. 20대에 일자리를, 50대 이후에 노후대책을 마련하는 거다. 거의 모든 가정에(설령 같이 살지는 않더라도 친인척 중에) 20대 실업자(또는 88세대)나, 고령자들이 있다. 이들의 일자리와 고령화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이 사회는 첨예한 계층 갈등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나경원·박원순 후보는 혁신의 딜레마를 모르는가 보다. 화려한 것만 좇는다. 나 후보는 자신이 똑똑하다는 걸 강조한다. TV토론을 보면 박 후보를 몰아치면서 ‘나 이렇게 잘났다’고 과시한다. 박 후보는 두루뭉술하다. 의혹에 대한 해명이 시원하지 않다. 새로운 서울을 만들겠다는 그의 설명은 철학교수의 강연처럼 현학적이다. 나는 기존 정치인과는 다르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지금 서울에 필요한 건 ‘과잉 품질’의 공약이나, 저만 ‘잘난’ 시장이 아니다. 청년들의 일자리를 해결하고, 황혼의 걱정을 덜 해법에 시민들은 목말라 하고 있다. 표심은 갈증을 해소하는 쪽으로 흘러갈 것이다.



김종윤 내셔널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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